[聖地巡禮(성지순례)] (11) 「야곱의 우물」 찾아
福地面貌 찾을 길 없고
발행일1963-04-28 [제372호, 3면]
오후 야곱의 우물을 찾아 「사마리아」 지방 「시칼」로 향했다. (요앙 4장 참조) 「에루살렘」성을 벗어나 차는 신나게 북으로 달렸다. 길에 포장은 잘 되어 있으나 여전히 꾸불꾸불하고 돌자갈 섞긴 땅은 그지없이 메마르기만 하다. 가다가 간혹 「올리브」나무 밭이 있을뿐 풀조차 드믄드믄 나 있는 산골짝이에 여윈 몇마리양이 헤매고 있다. 꿀과 젓이 흐른다는 복지의 면모란 아무리 엿볼래야 볼 수 없다.
도중 차가 멎기에 내렸더니 멀리 「베텔」 지방의 평화로운 능선이 부드럽게 보인다.
「베텔」이라면 그 옛날 야곱이 늙어 눈이먼 자기 부친 이사악을 속여 장자의 상속권을 사취한 후 그 형 에사우의 보복이 두려워 「하란」으로 도망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여로에 지쳐 돌을 베고 잠이 들었을 때 따우에서부터 하늘 꼭대기까지 닿은 사다리로부터 천신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또 자기를 보호해주시겠다는 천주의 약속을 듣고 일어나 제단을 모으고 기름을 쏟아 맹세하기를 장차 자기가 재산을 모을 때마다 그 재산의 10분의 1은 천주께 드리겠다고 허원했던 곳이다. (창세기 27장부터 28장 참조)
거기서 떠나 한참 달리니 「실로」분지가 나온다. 「실로」라면 저 유명한 사무엘의 태생지다. 메마른 이런 곳에서도 인간들은 역사를 창조해냈으니 놀랍다.
해거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시칼」에 닿았다. 당시 그곳에 상당히 큰 성당을 짓고 있었다.
돌로 울타리를 한 「올리브」밭도 잘 가꾸어져 있고 싱싱하게 푸른 잎사이에 두런 유자가 달려 있는 것이 탐스럽다. 내 고향에는 없는 나무이기에 한층 신기하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야곱의 우물은 큰 돌에 구멍을 파서 우리를 해덮었는데 깊이는 32「미터」니, 48「미터」니 한다. 안내인이 돌을 주어 정심(井心)에서 조심스럽게 떨어뜨리니 한참 후에야 「퐁」하는 소리가 들린다. 깊은 셈임에는 틀림없다. 물 맛은 약간 기분 나쁠 정도로 덤덤하다. 수천년 묵은 샘인데 자주 청소도 할 수 없도록 깊고보니 그럴 수밖에. 또 샘이 이만치 깊고보니 샘 파기도 힘들었을 것이어니와 물이 마를리도 없을 것이니,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자랑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으리라. (요왕 4장 참조)
거기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도중 길을 돌려 「엠마우스」로 향했다. 루가복음 24장 13절을 읽으신 분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튿날 그 문도중 두사람에게 나타나시와 면병을 축성하시와 먹으라고 주신 곳이다. 말하자면 예수 구세후(救世後) 첫번째 미사를 올리신 곳이다.
예수 성체대례를 세우신 것은 수난 전날이요 이날이 첫 미사였으나 그것은 수난과 부활 전의 일이나 「엠마우스」에서는 수고수난하시고 부활하신 후 제일 처음으로 거행된 미사다.
우리가 여기를 방문한 것도 여기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할 때는 일락서산(日落西山)한지 이미 오래여서 어둑컴컴한 때이건만 성당 종이 울리고 도열(堵列)해 있던 신학생들이 박수로서 환영해주어 여로에 지친 몸이지만 외롭지 않았다. 성당은 크고 깨끗했다. 예수께서 두 문제들과 저녁 잡수시는 상이 제대 뒤에 조각되었다. 「예루살렘」도 만일 가톨릭이 점령해 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답게 꾸며졌을까라는 생각이 새삼 일어난다. 우리는 「라우다·예루살렘」과 「레지나·챌리」를 합창했다. 식당에 들어가 다과를 대접받고 저녁 늦게 「예루살렘」에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