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月◎
1일(1839년)
▲복녀 김누시아는 별명으로 꼽댕이 누시아라 하였는데, 겸손과 인내와 순직을 겸한 신덕으로 우리 79위 복자들 중에 유명한 표본이다. 그는 서울 옥중에서 순교
2일(1622년)
▲일본 나가사끼에서 한국인 악네스, 안도니, 마리아, 요안, 베드루 등 한 가족이 순교.
2일(1866년)
▲원요셉 서울에서 순교.
3일(1839년)
▲복녀 김아네스 동정(孝珠)은 이달 26일에 순교한 복녀 김골로바의 아우인데 함께 잡혀 나체로 「학춤」 형벌과 나무 창에 찔러 서소문 밖에서 이하 다섯분과 함께 참수되었다.
▲복녀 이발바라(貞喜) 동정은 복녀 허막다레나의 언니요, 복녀 이발바라의 이모로서 서소문 밖에서 참수.
▲복녀 김발바라(喜)는 복자 이아오스딩(光獻)의 아내요, 복녀 이아가다의 어머니요, 복자 이요안(光烈)의 형수로서 서소문 밖에서 참수
▲ 복녀 이마리아(連熙)는 복자 남다미아노(明赫)의 아내로서 서소문 밖에서 참수.
▲복녀 박마리아(大阿只) 동정은 복녀 박누시아의 언니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
▲복자 박요안(厚載)은 1801년 순교한 박노렌죠의 아들로서 서소문 밖에서 참수.
4일(1662년)
▲일본 나가사끼에서 한국인 식스도와 가다리나 부부 순교.
5일(1662년)
▲같은 곳에서 한국인 가요 순교.
8일(1868년)
▲허야고버 · 이베드루 · 김누까 경남 울산에서 참수.
9일(1831년)
로마에서 조선교구를 설정
12일(1839년)
▲복자 최방지거(永煥=京煥)는 최도마 신부의 부친으로서 서울 옥중에서 순교.
12일(1868년)
▲조야고버(18세) 이아가다(17세) 부부가 서울 옥중에서 순교.
16일(1846년)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大建) 신부 새남터에서 참수
19일(1846년)
▲복자 현가오로(玄錫文)는 1801년에 순교한 현베드루(啓欽)의 아들로서 주교신부들의 복사로 있었으며 김대건 신부의 연루로 새남터에서 참수되었다. 그의 누이 복녀 분다(敬連)와 아들은 1839년에 순교하였다.
20일(1846년)
▲복자 남베드루(景文)와 복자 한노렌죠(履亨)는 서솝문 밖에서 참수.
▲복자 임요셉(林致百)은 서울 사거리에서 참수.
▲복녀 김데레사(任伊) ▲복녀 이아가다(干蘭) ▲복녀 우수산나(述任) ▲복녀 정가다리나(鐵艶) 등이 당고개에서 참수.
21일(1839년)
▲복자 노렌죠 엥베르(范主敎)는 조선교구의 제2대 감목이요 ▲복자 베드루 모방(羅神父)은 불국인 선교사중 제일 먼저 입국하였고 ▲복자 야고버 쏴스당(鄭神父)은 나신부 다음 입국하여 세분이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받았다.
22일(1839년)
▲복자 정바오로(丁夏祥)는 1801년에 순교한 아오스딩(若鍾)의 아들이요, 그 부친과 함께 순교한 가롤로(哲祥)의 아우로서 조선교구 설정과 주교 신부 입국운동에 전력을 다하였고, 그는 신학생으로서 열심공부하다가 어머니 복녀 유세시리아와 누이 엘리사벳 동정과 함께 잡혀,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는데, 한국 순교가정의 표본이 되었다.
▲복자 유아오스딩(劉進吉)은 역관으로서 정하상의 권유로 입교하여, 함께 북경을 드나들며 주교 신부 입국안내에 유공하였고, 우리 소년 순교 복자 유베드루(大喆)의 아버지로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
23일(1866년)
▲박방지거, 오말가리다 부부가 충청도 죽산(竹山)에서 순교.
26일(1839년)
▲복자 조가오로(趙信哲) ▲복자 남세바스디아노(南履灌) ▲복자 김이나시오(濟俊=大建 신부의 父) ▲복녀 김골롬바(孝任) ▲복녀 허막다레나(秀任) ▲복녀 김유리다 ▲복녀 전아가다(全敬俠) ▲복녀 박막다레나(鳳孫) ▲복녀 홍베르베두아(洪令珠) 이상 아홉분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26일(1925년)
이날은 한국순교사에 제일 많이 순교자를 낸 날이라고 해서 교황청에서 한국 79위 복자 축일로 정하였다.
30일(1839년)
▲복녀 이가다리나는 그 딸 조막다레나와 집주인 3인과 함께 잡혀 같이 신덕을 증거하다가 혹형을 받고 옥중에서 순교하였는데 그날짜는 9월말이나 10월초인지 미상이다.
志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