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神學(평신신학)] (1) 그리스도와 행복 (1)
발행일1962-10-07 [제345호, 2면]
머릿말
천주성부께서 우리의 삶의 의의(意義)와 목적을 계시하여 주셨다.
또 그는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가 그에 의해 천주의 자녀고 살게되는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당신 성자를 우리에게 보내셨다.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는 것이라야만 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을 아는 것만으로 천주의 자녀로 살게되지 못한다. 우리주 그리스도 그 자신을 알고 그를 사랑하고 그의 가르침과 표양에 따라 삶으로써 점차로 더욱 더 그를 닮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천주 성부께서 즐거워히시는 자가 되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와 일치됨으로썸나 이기 때문이다. 교리공부도 이것을 목표하여야 할 것이다. 얼마전까지는 교리공부는 어떻게 하여야 효과적으로 학습자를 이해시킬 수 있는가란 방법론에 많은 정신을 썼었다.
그 이전에는 이렇게 하면 체계화 되고 신학용어로 정의(定義)된 교의(敎義)를 요약하고 쉬운 말로 옮겨 신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가가 문제였다. 또 그 이전에 올라가면 신학의 관념을 정의하고 교의를 체계화하는 것이 신학자들에게 당면한 문제였다. 더 이전으로 올라가면 무엇이 정통신앙이며 무엇이 오류신앙(誤謬信仰)인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었다.
또 그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종도와 그들의 제자들이 하신 말씀과 글을 주석하여 신앙의 행동을 자아내게 하는데 가르치는 자들의 목표가 있었다.
예수와 그의 종도들의 시대에는 그들의 가르침은 곧 복음이었다. 이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천주의 성총과 새로운 생명을 부어넣어주고 모든 것을 버리고 천국의 시민이 되게 하였다.
오늘에 있어서도 교리공부는 우리에게 천주의 생명을 주거나 이것을 더 건장케 하는 생명있는 것이라야만 하였다. 신학의 관념의 정확한 파악과 교의의 체계화된 교리공부도 현대인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된 가톨릭에게 그의 성서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가공된 것이 아니고 「오리지날」한 오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종도들의 가르침을 듣는 것도 대단히 필요하다.
이 『평신신학』(교리강의)는 이러한 이념에서 시작한 것이다.
오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와 생활에 신학교과서에 내용과 같은 체계가 서 있지 않았던 것과 같이 이 강의도 그러한 면이 있고 위에 말한 이념하에 성서의 말씀이 많이 인용된다.
독자는 항상 신약성서를 가까이 두어 참고하기 바라며 인용된 구전과 언급되는 교리에 관련이 밝게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여러번 반복하여 읽어주기 바란다.
교리공부는 그리스도를 닮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동안에 오주 예수 그리스도께 잘 알아 듣게 해주시기를 기구하며 그의 비추심으로 알아듣게된 진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도록 극력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산으로 들로 그를 따라 다녔다.
그는 오늘도 교회 안에 교회의 전례생활 안에서 살고 계시다. 만일 교회의 전례생활과 기구생활에 들어가지 않고 그리스도의 진리만을 듣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무런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성서의 말씀) 『천주 옛적에는 많은 방법과 여러가지 모양으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서조들에게 말씀하셨으니 최근에 이르러서는 성자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나니(천주) 저(=성사)를 이미 만물의 상속자로 정하셨으며 또한 저로 말미암아 세상을 창조하셨나니라. 저(=성자)는 (천주의) 영광이 반영이시요 그 본질의 초상(肖像)이시며 또한 저를 당신 전능하신 말씀으로서 만물을 지지(支持)하시나니라. 저 사람의 죄를 속량하신 후에 높은데에서 지엄하신(천주) 우편에 좌정하시나니라.』 (레브레아 전 11,3)
약2천년전에 인류역사에 있어서 이세상에 독특한 영향을 준 사람이 살았다. 그는 그 당시의 세계의 문명의 큰 중심지에 산 것이 아니고 세상에 있어서 가장 어수룩한 구석에 살았다. 그는 부(富)와 사회적 지위가 줄 수 있는 물질의 혜택을 받고 출생한 것이 아니고 마굿간에서 났었다. 그는 오래동안 직업을 가졌었기나 여러나라에 돌아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의 일생은 33년이란 짧은 것이었고 그의 활동의 지역적 범위는 불과 수백리 밖에 안되는 좁디좁은 것이었다. 그의 일생의 종막은 현저한 승리와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심자가 위에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