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邱(대구) 坪廣洞(평광동)
全洞民 가톨릭 잔치에 나온 坪廣
公所서면 많이 豫備할듯
발행일1963-05-05 [제373호, 3면]
【大邱 東村】 『글쎄요 우씨부인이 대세받은 것이 동기입니다』
대구 동촌서 약 20리 대구시 평광(坪廣)동은 마을이 대주교님이나 부주교님이 오신다고 지난 사백주일(4월21일) 신자도 아닌 동리사람 수백명까지 참석한 가톨릭 잔치가 벌어진 이유를 동촌주임 방지거.정행만 신부는 말한다.
부인이 중병에서 위독하여 대세를 받게되자 가톨릭을 안 우재천씨가 서자까지 있는 소가(小家)를 버리고 베드루로 영세한지 4년 사백주일 영세자로 86명이 입교를 했다.
이태조에 항거하여 5백년 전 이곳으로 낙향한 우씨 대소가의 약 1천명 동민들은 근면해진 우재천씨의 표양에 감탄하고 「교회당」만 서게되면 우리 모두가 가톨릭을 배우겠다고 한다.
『지금 예비자가 약 60명인데 이상하게도 거의 호주(戶主)들이 영세를 준비합니다』고 이야기하는 정신부는 『공소를 지어줄 독지가를 「시보」에서 한 분 얻어 주시요』라고 호소한다.
매주일 부지런히 평화운동을 나다닌 최마리아회장 전회장도 『네 산신제나 고사다 무당이다 하던 동리가 그렇게 바뀔 수 있었으니』하고 감탄한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마루에나 임시제대를 차리고 첫미사를 지냈다는 정신부는 전동리에서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는 집은 불과 셋 집 뿐이라면서 또 공소 지을 걱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