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여 법률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크오니까? 예수 가라사대 『네 주 천주를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온전한 뜻으로 사랑하라 하였으니 이는 가장 크고 제일 으뜸 계명이요 제이는 이와같으니 곧 남을 네몸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 모든 교법과 선지자의 글이 두 계명에 달렸나니라.』
사랑은 말보다도 행동에 있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서로 선(善)을 교환하는데 있다.
우리가 하는 찬미 감탄 약속 열성어린 말들은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적어도 시초에는 어느정도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말뿐으로서는 자애심(自愛心)과 이기심이 조금도 섞이지 않는 순수한 천주의 사랑과 사람이 사랑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영혼이 』 주여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내숨쉼의 많음 같이 하나이다.』하더라도 만일 어떤 조그마한 희생을 바쳐야할 기회가 닥쳐올 때 그 희생을 바치기를 거절한다면 입으로 하는 그 사랑은 순전히 빈말이고 헛소리라 할 것이다.
천주님은 이러한 빈말에는 큰 증오감을 가지시고 『이 백성이 입시울로만 나를 공경하고 그마음은 내게서 멀리 있도다』(마두 15장8절) 하시며 노하신 것이다.
우리 「모델」이 되신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오직 성부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약속하셨고 또 성부의 성의를 실행하는 사람만이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 하셨음을 보더라도 참 사랑은 행동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다.
내 알을 듣고 실천하는 자는 바위 위에 집 지은 지혜로운 자와 같고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래위에 집 지은 어리석은 자와 같다 하셨고 또 성부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는 이유를 증명하실 때에도 내가 항상 그의 좋아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라고 짤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실천이 없는 사람이란 헛된 것이며 빈말이란 것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문제다.
빈말과는 반대로 사람이 어떤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죄다 바치고 자신의 마지막 애착까지 죄다 버린다면 그 사람은 의심없이 참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심(全心)으로 누군가를 자기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자신이 제일 애착하는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참사랑은 남김없이 바치는 것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자신을 위하여 보류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나 취미를 그보다 더 사랑하는 셈이 되므로 참사랑이라 할 수 없다. 참 사랑은 한번 바친 것을 도로 찾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도로 찾는 것은 이기심의 재연이다 『사랑은 무례하지 아니하며』(고린토전서 13장5절) 참 사랑은 힘들지 않은 희생을 원치 않는다.
그러면 참사랑이란 말에나 감격에나 약속에나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희생에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사랑하고자 하는 자는 또한 희생을 필연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법이다.
참 사랑은 고통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참 사랑은 이기심에 죽고 사욕에 죽고 자아심에 죽고 자신에 온전히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죽는다는 것은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참 사랑에 살고자 하는 자는 이 고통을 거절해서는 안되며 도리어 고통을 원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결론이 된다.
나날이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성주(聖主)의 말씀이 이 진리를 증명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네 온전한 영신과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뜻으로 네 천주를 사랑하라 하신 계명은 우리가 대죄나 소죄를 피함으로써만 만족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천주님이 원하시는 희생을 하나도 거절하지 말고 전심전력으로 실천함으로써 천주께 무례하지 않고 사익을 도모하지 않는 순구하고도 참된 사랑을 바치라는 의미다.
다음은 천주께 대한 사랑은 남에게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미소한 형제에게 베푼 것이 죄다 내게 베푼 것이다 하셨고 성심의 종도 요왕은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버리신 여기에 우리는 천주의 사랑을 인식하였나니 우리도 이와같이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버려야 하리로다.』(요안 일서 3장16절) 이는 『우리가 저(天主)에게로 부터 계명으로 받은 것이니라』(요안 일서 4장20절)하시고 천주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으로서 증명해야 한다고 결론하신다. 그러면 천주의 사랑을 재는 척도와 양은 사람사람의 척도와 양의 정비례라 결론 할 수 있다.
陳聖萬 神父(대건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