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13) 聖書(성서) 歷史性(역사성) 考證地(고증지) 예리코
뻘물 속 욜단江에 旅情풀어
발행일1963-05-12 [제374호, 3면]
19세기 소위 현대니 유리(唯理)니 하는 것을 구호로 학계를 휩쓸던 일부 인사들이 구약성서의 역사성을 부인할 때 구약의 여러 부분을 지적하고 그런 사실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할 때 이 「예리코」도 문제가 되었던 것이니 저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즉 『「예리코」는 분지요 사막이다. 수천년 전 요수에 당시 허다한 좋은 땅도 많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겠으며 또 바위도 귀한 이곳에 어떻게 많잖은 사람의 힘으로 큰 성을 쌓았겠느냐? 이것은 순전히 요수에들 영웅화 시키기 위한 수작이다』라고 했다. 저들의 주장으로는 성경에 말하는 성이 있었다는 것은 이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억지다. 역사의 사실을 일일이 이론에 맞추려는 것은 무리한 옹고집이려니와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오늘의 이 발굴작업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 이름을 잊어버려 독자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당시 불란서에 훌륭한 고고학자가 있어 왈 『북위 X도와 남경 X도를 중심으로 해서 땅을 깊이 파해쳐 봐라. 그러면 거기에 정 맞은 바위가 열을 지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요수에기(記)에 말하는 「예리코」 성터니라』했다.
그의 말대로 1925년경부터 발굴했더니 과연 성지(城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유리론자(唯理論者)들과 현대주의자들의 참월한 억설이 보기 좋게 거꿀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었다. 모이세가 홍해(紅海)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이 「스에즈」운하를 팔 때 입증되었다는 사실과 맞먹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과학이 발달될수록 인지(人智)가 개발될수록 성경의 역사성은 자꾸만 빛을 받아 확실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학자들의 위대한 힘은 비록 그들이 단간방에서 외계에 출입없이 일생(一生)을 보냈어도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 오늘 우주탄이 날고 인공위성이 지구를 도는 것도 학자들이 거기를 가본 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붓과 먹과 종이와 책만 가지고 발명해 낸 것이다. 해왕성(海王星)이 발견된 경위도 「예리코」 성지 발견과 닮은 점이 있다고 옆에 섰던 윤 빅토리노 신부님이 가르쳐주셨다. 역학적으로 보아 반드시 위성 한 개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천문학자가 있었는데 과연 망원경이 발달된 후 그 학자의 말대로 해왕성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만큼 인간은 초월한 지혜를 가졌거늘 그 지혜는 인간 개유(個有)의 영혼의 기능이거늘 그 불사불멸하는 영혼을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이 가엾다.
「엘리세오」의 샘에서 떠나 예수님의 세 받으신 「욜단」강으로 갔다. 예수님 세 받은 자리라 하여 두 길 가량 되어 보이는 탑을 세워 두었다.
그림엽서에서 본 것과는 달리 강의 폭은 매우 좁고 물도 흙탕물이다. 강 옆으로는 잡초가 우거지고 나무가 서 있다. 지형에 비해 물살은 빠르다고 느꼈다. 예수님 세 받으신 곳이라 그래도 마음이 달라 뻘에 구두를 더럽히면서까지 물가에 내려가 손을 담구어 보았다. 물론 다른 뻘물과 다를 바 없다.
「욜단」강은 예수께서 세를 받으신 것으로도 유서있는 곳이지만 구약에는 나아만이 나창 고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순례온 두 수녀가 예수님이 세 받으셨다는 강가에서 신공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