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성경은 성신의 감도하심을 따라 기록된 천주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마테오 복음에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 네게 일곱번까지라 아니하고 오직 일곱번씩 일흔번까지라도 용서해 주라』하셧읍니다. 천주께서는 어찌 원조 아담의 단 한 번 범한 죄를 용서 않으셨을까요? (평택 吉 데레사)
【답】 『아담이 죄를 범하여 천주를 거스렸다. 그래서 천주께서 조금도 아니 단 한 번의 용서도 없이 벌 주시고 마침내 죽음으로 벌주셨다. 그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시고 아담의 후손에게까지 그 벌을 주시고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 시키고자 하셨다. 이것은 인자하신 천주로서 너무하다. 더욱 후손에게까지 벌이 미치게 하신 것은, 왜 몇 세기 후에 벌이 끄치지 아니하는가? 왜 대사라고 하는 것이 없는가?』 이러한 뜻의 질문이라 봅니다.
그러나 천주의 계시와 교회에서 가르치는 입장에서 볼 때 사실은 좀 다릅니다. 천주가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의 행복한 상태는 초자연적이었다는 것 이러한 특권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상존성총과 모든 고로움과 죽음에서 해방 그리고 죄에의 무궤도한 경향에서 면제되었읍니다.
이러한 은혜는 대대로 전인류에게 전해지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이 있었다해서 아담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자유 선택의 힘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도리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었읍니다. 사실 아담은 죄를 범하였읍니다.
그는 상존성총과 과성은혜를 잃어버렸고 그것을 후손에게도 전해줄 수 없었읍니다.
원조로서 인간은 「꼭 가져야만 하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것은 천주로부터 공으로 받은 것 뿐이었읍니다. 아담의 죄에 대하여 천주께서 무슨 특수한 벌을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상태에 놓여진 것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천주께서 인류역사의 어떤 시점(時点)에서 벌을 취소하시고 대사를 베푸신다는 것은 뜻이 없읍니다. 그것은 그 어떤 시점에서 인간 본성이 중단되고 아담의 죄 이전의 특권적인 상태에 놓여진다는 것이 됩니다. 설령 천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그 시점 이전에 죽은 사람에게는 어굴하지 아니하겠읍니까. 또 천주께서는 대사 이상의 것을 인간에게 주셨읍니다. 즉 아담 범죄 후 즉시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구세주를 허락하시고 그 구세주는 우리 형제가 우리게 죄를 지었을 때 일곱번씩 일흔번까지라도 하라하셨읍니다. 계산하면 490번이 됩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숫자이지 계산의 필요가 없읍니다. 이 주님의 말씀의 교훈은 첫째 우리가 용서를 받기 위해 남을 용서하는 것, 둘째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는 한 천주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시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申相祚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