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 疑惑(의혹)의 出生(출생) ①
발행일1963-05-12 [제374호, 4면]
R여중에 입학했던 봄 열네살적에 내 출생에 관해서 어렴풋이 의심이 생겼다. 그 전에도 의심이 안 간 것은 아니다. 동급생들에게 비하면 목 하나는 큰 키, 깊숙히 그늘진 큰 눈, 수정같이 투명하면서, 황색이 끼지 않은 희고도 불그스름한 피부색!
국민학교 삼학년 때부터 보는 사람의 눈들은 나를 「양키」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연히 양친이 집에 있고, 대학에 다니는 오빠도 있었다.
『어머니 사람들이 나보고 「양키」같데…』
나는 약간 불안을 느끼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너의 아버지가 「양키」 비슷하잖니?』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나와는 정반대로 시골사람 모양 까마작한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지?』
『물론 내가 낳지 누가 낳았니!』
어머니는 자신있게 말한다.
나는 그날 저녁에 직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여느때보다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돈을 허피쓴다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신경질은 노상 있는 일이라 나는 또 시작이다 하는 생각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당신한테 돈을 안 맡길테다. 쌀값이고 연료 값이고 반찬값이고 일일히 내가 따져서 줄테니 그런 줄 알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일어난 일보다는 아버지가 과연 나를 닮았는가 그 점만을 두 눈으로 살피었다. 과연 아버지의 살결은 남보다 희다. 키도 대단히 길지는 않지만 후리후리한 편이다. 눈은 나모양 그늘이 깊다.
『나 순이 「세타」를 하나 사 주게 돈 주어요. 작년에 입던 것은 작아서 못 입어요.』
어머니는 툭명스럽게 말한다.
이 때 아버지는 소매 짧은 「세타」를 입은 나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도 않고, 돈을 꺼내 방바닥에 내 던진다.
(틀림 없는 우리 아버지일꺼야)
나는 이때 혼자 스스로 내 마음을 여몄다.
이것은 국민학교 사학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 후,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별로 부모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한 해, 두 해 장성함에 따라 어쩌다 그런 의혹이 다시 싹틀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국민교의 성적은 항상 일석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이석 한 아이의 평균 점수는 나보다 훨씬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운동회 때의 백「미터」 경주에는 둘째로 따르는 아이가 삼십「미터」나 뒤에 쳐졌었다. 그만큼 나의 「콤파스」는 길었고 아마 머리의 「콤파스」도 긴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째 벌써 중학생들이 읽는 위인전과 세계명작 단행본을 열몇권이나 방학 때 읽어 치웠었다.
그 때 벌써 나는 짧막한 동화에는 흥미가 없었다.
R 여중은 입학 경쟁율이 대단히 높았으나 다른 아이들 모양 가정교사니 과외공부니 하지 않고 놀 때 놀면서 슬슬 공부하다가 들어갔다.
중학에 들어와 보아도 나는 닭장 속에 들어간 학(鶴) 한 마리같이 체격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나보다 한 오「센치」 가량 작은 큰 아이가 뒷줄에 나하고 나란히 섰었는데, 두어 달이 지나니, 그 아이도 내 목덜미에 떨어지고 말았다.
똑같이 김치 깍두기를 먹고 똑같이 놀고 공부하는데, 나만 유달리 혼자 자라는 것 같았다. 키만 커진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허리로 향한 발육도 빨랐다. 신록이 한창인 오월 어느 주일, 몇몇 학우와 교외로 소풍을 갔더니, 대학생들이 고교 상급생 쯤 알고 나에게 희롱을 걸었다.
『야아, 예쁘다. 멋있게 생겼는데』
한 남학생이 동행한 친구보고 말한다.
『체격이 「양키」같지?』
『튀긴가 보다!』
이렇게 저희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가 나의 귀에 들렸다.
세 명의 대학생은 우이동 골짜기로 우리가 가는대로 쫓아왔다. 우연히 방향이 같은지 우정 우리 가는 곳으로 따라 오는지 그건 어떻든간에 그들이 나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는 거만은 사실이었다.
손가락들을 입 가장자리에 집어넣고 귀가 따가울 정도의 된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얘기나 좀 합시다…』
하고 십「미터」 쯤 뒤에서 엉거주춤한 목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강숙, 춘자 이렇게 세명인데 물가의 바위에 자리를 잡고, 과자 봇다리를 폈다. 강숙과 춘자는 훨씬 손위의 오빠와 같은 그들에게 댓구할 염도 못먹고 부끄러움보다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나는 남자대학생들을 똑바로 내 커다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맞받자 남자들의 시선은 오히려 숙으러졌다.
나는 길을 가다가도 간혹 큰 남학생들의 눈과 마주치는데 내 눈에 맞서지 못하고 대개는 저쪽에서 먼저 까불어지고 만다. 일부러 쏘아보는 것도 아닌데 어딘지 날카로운 데가 있는 모양이다. 좀 짓궂은듯한 그 대학생들의 시선도 내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니 나는 나도 이미 어린아이는 아니라는 자존심이 생겼다. 사실 중학생이나 고교생 따위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내 기분도 대학생 쯤이 알맞았다.
세 명의 대학생은 우리의 위치에서 약 오「미터」 거리의 딴 바위에 자리를 잡아 사이다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사이다 드릴까요?』
여드름이 지져분한 키가 작달만한 대학생이 말을 건닌다.
『오 케이!』
나는 어물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어마 얘 좀 봐!』
두 나의 친구는 깜짝 놀란다. 학교서는 겨우 「디스 이즈 아_」을 배우던 때인데, 「오 케이」 했으니 아이들이 놀랐는지 혹은 남자 대학생과 맞서는 숙성한 태도에 놀랐는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들 앞으로 가서 사이다를 한 병 얻어 가지고 왔다. 그 때 보니 모두 S대학생들이었다.
춘자는 딴 데로 가자고 하고 강숙이는 내 눈치를 바라본다.
『대학생이 호랑이냐 그들 무서워 자리를 피하게!』
정강이까지 교복바지를 걷고 나는 이렇게 말하며 땀 난 발도 씻고 콧노래도 읊었다.
『얘 좀 보아!』
구식 집안에서 자란 춘자는 살을 보이지 말라고 걷어 올린 내 바지 자락을 잡아 다린다.
『얘, 그냥 두어라. 난 시원하다』
나는 그들 대학생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빼긴 싫었다.
남학생 중에 얼굴이 단정하게 생긴 청년이 바로 물장난을 하고 있는 나를 「캬메라」로 찍으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면 허락을 맡아야죠!』
나는 그 청년을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찍어도 좋습니까?』
생김새와 같이 말솜씨도 단정했다.
『사진을 우리에게 보내 주겠다는 약속이라면!』
나는 남자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틀림 없이 보내드리죠』
춘자는 싫다고 고개를 가슴팍에 묻고 수선을 떨더니 그래도 찍을 때는 얼굴을 쳐들고 앞머리도 가꾸고 「포즈」를 취했다.
『절컥!』
「미스터」 단정은 얼굴을 붉히며 내 옆으로 오더니
『학교로 사진을 부쳐 드리죠. 이름을 가르쳐 주세요!』한다.
『양나순…』
『R 고교죠?』
『R 중이야요!』
『바른데로 말해주세요』
『정말이야요.』
『아직 중학생이세요. 몇학년인데요!』
『일학년…』
『일학년이요?』
「미스터」단정은 석고같이 표정이 굳어진다.
『거짓말이야…』
「미스터」 여드름이 쉰 목소리로 소리친다.
또 한 명 「미스터」 키다리가 쓱 나서더니, 『부모가 다 한국 사람 아니죠?』하고, 꺼리김 없이 묻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미스터」 키다리와 같은 한국 사람이야요!』
「미스터」 키다리라는 말에 두 다른 「미스터」가 깔깔 웃었다.
키다리는 웃지도 않고 길다란 목을 기웃둥 한다.
『정말, 중일이요?』
『얘들 보고 무어보세요. 한 반 아이들이니까?』
「미스터」 여드름은 춘자와 강숙에게는 반말로 묻는다.
『정말 그래?』
춘자와 강숙은 벙어리 모양 고개를 끄덕 끄덕.
『근데 영어도 잘 하는데…』
『내가 언제 영어 했어요. 「오케이」하고 「미스터」도 모를까바!』
사실 나는 일학년 「리-다」는 입학하기 전 보름 동안에 오빠한테 조금 지도를 받고 나혼자 자습하여 거반 외우다시피 깨쳤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영어시간에는 영어 책 뒤에다가 잡지 책을 감추어두고 그걸 읽었다.
『그럼, 학교를 늦게 들어갔나 보군요?』
「미스터」 단정이 묻는다.
『노-. 남과 같이 들어갔어요.』
「미스터」 단정은 내 얼굴을 뚫어지라고 바라본다. 나도 바라보았다.
「미스터」 단정의 시선이 수굴어진다.
『미스 양만 혼자 찍었으면 좋겠는데!』
「미스터」 단정이 말한다.
『맘대로 하세요.』
『난 사진에 취미가 있어. 예술 사진을 한 장 찍어보려고 하는데 아까 모양 바지를 거두고 물에 발을 잠군 「포즈」를 취해보세요』
「미스터」 단정의 말은 진실해 보였기에 나는 다시 무릎까지 바지를 거두었다.
『얘, 못써 그러면…』
춘자가 이맛살에 사람 인자를 박고 눈을 흘긴다.
『어떠니?』
나는 문제시 안 하고 「미스터」 단정이 원하는대로 「포즈」를 취했다.
「미스터」 단정은 정면에서 한 장, 옆으로, 한 장 두 장을 찍었다.
결국 이 날 찍은 사진들이 내 마음에 새로운 의혹의 구름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며칠 후 「미스터」 단정은 약속대로 그 사진들을 내 앞으로 우송해 왔다. 춘자와 강숙에게는 셋이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는데 오후의 분명한 햇살을 받고 찍은 그 사진의 얼굴들은 눈코의 음영이 유달리 뚜렸했다.
『얘. 아무리 보아도 튀기지 뭐니?』
춘자가 여러 학우들과 함께 담모퉁이에 _켜 앉아서 내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뒤에서 가까이 가고 있는걸 모르고 있었다.
『양나순 게는 부모가 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만 거짓말이야! 생긴건만 그런게 아니고 행동도 「양키」야. 글세 남자 대학생 앞에서 무릎을 걷고 넙적다리까지 내놓지 않니! 태연하게』
『아니 내가 넙적 다리까지 내 놓았던!』
나는 덤을 붙여 말하는 춘자에게 항의했다.
춘자는 홀연 나타난 나를 보자 금방 얼굴이 노래졌다.
『아니야. 넙적다리가 가까이 나왔단 말야!』
『우리 부모가 엄연히 한국 사람인데 왜 너, 사람을 모함하니!.』
『……………』
춘자는 말이 없다.
나를 보는 다른 시선들도.
(너는 퇴기다.)
하는듯 하다.
『또 한 번만 누구든지 그 따위 소리 해 봐!』
나는 춘자를 쏘아보았다.
『퇴긴지 뭔지 알게 뭐야!』
춘자는 입술을 야무지게 모두고 짐짓 정면으로 화살을 던진다.
『뭐라구?』
나는 춘자 앞으로 가서 두 말 않고 따귀를 쳤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교실로 들어가면서 의혹의 구름은 하염없이 치민다.
사실, 내가 보아도, 나의 얼굴은 이질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