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제)2次(차) 바티깐 公議會(공의회) 開會(개회)
史上最大(사상최대) 最高潮(최고조) 이룩
再新(재신) · 再一致(재일치)의 關鍵(관건)을 쥐고
물려받은 敎導權(교도권)을 行使(행사)
15萬 群衆 歡呼裡에
【바티깐=RNS】 성교회의 2천년 역사상 『최대의 공의회』라고 요안 23세 교황이 말한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개회를 경축하는 태양빛이 이곳 구름기인 하늘을 뚫었다. 성교회의 내부 생활에만 발효하는데 그치지 않고 또한 전 그리스도교도의 일치를 전진시킬 만큼 깊고 원대한 역사적 토의를 위해 전세게의 모든 지역에서 모인 추기경, 총주교, 대주교, 대수도원장, 수도회장으로 구성된 2천6백의 교부들을 환영하고자 먼나라에서 온 다수의 순례자들을 합한 15만 군중의 들끓는 환호는 길조(吉兆(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교界의 일치가 이번 공의회의 최고 관심사의 하나임은 앙그리칸 및 프로테스탄트 측 참관대의원들과 공식 내빈 30여명이 성베드루 대성전의 개회식에 참석한 사실에 반영되었다.
그뿐아니라 교부들에게 대한 요안 교황은 개회사에서 성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일치응 위한 적극적 노력을 자신의 최대 의무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대성전의 중앙 내진(內陳)에서 거행된 중대한 식적에 미국을 비롯한 85개국가의 대표들의 참석은 이번 공의회에 대한 관심이 종교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 인류적인 것을 보인다. 이러한 세계적 관심은 세계 각국의 주요한 신문의 특파원들을 비롯한 1천명 이상의 통신원들이 모인 사실이 증명한다. 이에 보태어 교황 무류성을 선포한 1869-1870년의 제1차 공의회 이래 제1차 바티깐 공의회로서 알려진 이 장관(壯觀)을 방송하고 방영(放映)할 만단의 시설이 구비되었다.
둘째로 2백40명으로 구성된 최대의 대표단장인 미국의 스펠만 추기경은 교황에게 순명의 예절에서 중공에서 추방된 티엔(田) 추기경의 바로 앞에 있었다.
개회사의 끝에 교황은 『자기의 신앙 때문에 감금을 당하고 또는 다른 장애로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여러 공산 국가에서 극히 다수의 주교들이 이번 공의회 출석이 불가능한』 사실에 대한 『극심한 비애』를 표명했다.
그러나 폴란드 체코스로바키아 불가리아 항가리 동독 리투아니아 유고스라비아 등 7개국에서 최소수의 대표가 출국 허가를 받았다. 그중에서 최대다수가 위진스키 추기경을 단장으로 한 폴란드의 17명이었다.
교황은 또한 3년반의 준비를 마친 이번 공의회는 천지의 모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시작된 것을 주의했다.
『우리시대의 오류 요구 및 기회를 참작하는』 성교회의 교도권을 『전세계의 만인에게 예외의 형식으로 나타내기』위해 이번 공의회가 열리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교황은 공산주의와 세속주의를 분명히 언급하여 『막아내야하고 또 흩혀버려야 할 그릇된 가르침과 사상및 위험한 관념이 확실히 없지 않다.』라고 교부들에게 말했다.
『그러나』라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한 그릇된 관념은 올바른 정직한 관념과 극히 명백한 대조를 이루어 이제와서는 인간들 자신이 그 그릇된 관념들 특히 천주와 천주의 법을 멸시하는 그 모든 방법을 단죄하기에 기울여질 만큼 치명적 결과를 냈다.』
방대한 군중은 대성전에 들어가서 그 장엄한 예절에 참석할 수 없었기 대문에 이날의 큰 구경은 바티깐 궁에서 대성전까지 걸어가는 교부들의 행렬이었다.
공의회의 첫날은 가는 비로 시작되었으나 그 장엄한 행렬을 보고자 대성전 광장과 거리에 운집한 수천 군중을 막지는 못했다.
군중의 대다수는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자 광장에서 하루밤을 세운 외국인 순례자들이었다.
2千6百 主敎 行列
아침 7시에 공의회의 개회를 알리는 종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시간 후에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낮은 구름을 뚫고 가게끔 내려비칠 때 대성전의 타원형 주랑(柱廊)에 둘러싸인 분수가 뿜어올리는 물기둥은 빛을 띠고 푸른 하늘의 조각들이 이어졌다.
수천의 검은 수단을 입은 로마의 신학생들 수녀들 신부들 수도회원들이 좌우에 줄지어 선 길로 그 행렬이 움직이는 동안 약 1만2천의 이타리 경관들이 질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8시30분에 전 로마의 그리고 이타리전국의 모든 성당 종이 공의회의 예절 시작을 알리면서 울리기 시작했다 이 위대한 행사를 경축하여 이타리 정부는 이날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第(제)1日(일)은 莊嚴大禮節(장엄대예절)만
행렬은 교부들이 바티깐 궁에 집합한 후에 시작되었다. 추기경들은 강복당 및 「보르지아」관에, 주교들은 기념당에 모였고 교황은 제의당에 대기했다. 요안 교황은 예식 만또를 걸치고 자수된 백색의 보석박힌 「미트라」관을 쓰고 추기경 주교들은 갑바를, 추기경 사제들은 소매 없는 전복을, 주교들은 백색 갑바를 각각 입고 있었다. 동방 전례의 수장들은 「콘스탄틴」왕관을 본딴 둥근 왕관을 쓰고 있었다.
전원이 예복을 갖춘 다음 교황과 추기경들은 성체가 현시된 바오로 경당에로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복되신 동정녀를 찬양하여 『바다의 별이여 네게 하례하나이다.』를 대송하고 이어서 공의회 기구문을 합송했다.
그리고나서 행렬이 시작되었다. 행렬이 중앙계단을 내려설 때 선두에는 짙은 청색 군복을 차린 「팔레스틴」위병이 서고 그다음에 교황궁정(宮廷)의 옥쇄시종, 명예시종 그리고 교황의 청죄사(聽罪師) 백색 목도리가 달린 검은 우단 예복의 시종들,공소원 판사들, 「시스틴」 합청대원들 흑 홍 자 백색의 예복을 입은 바티깐 법정의 판사들 삼층관을 봉지한 교황의 전속사제, 교황의 평상 미트라관을 봉지한 다른 전속 사제의 순서였다. 그 뒤에 하품(下品) 시자들 불켜진 촛대를 좌우에 거느리고 교황 십자가를 봉지한 바티간 관원이 따랐다.
그 다음에야 의부들이 따랐다. 수도회장들 대수도원장들 주교들 대주교들 총주교들 추기경들의 순서로 그들은 모두 미트라관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2명의 공의회 관리원 -아스프레노콜로나 공작 및 알렛산드로토롤로나 공작 그리고 교황궁정의 수장들이 여좌(與座) 위에 높이 앉은 교황의 바로 앞장을 섰다.
그들은 로마의 성직자들이 두줄로 느러선 가운데를 서서히 걸어 대성전 안에로 들어가면서 복되신 동정녀를 찬미하는 옛날의 성가를 봉창했다. 행렬을 갈채하는 환호의 소리결(聲波)에 이어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면서 쉴 새 없는 강복을 보내는 교황이 나타나자 『교황 만세』의 소리가 우뢰처럼 광장을 진동했다. 교황의 손이 교황찬가를 정지시키자 터지는 새로운 갈채와 환호의 소리가 온 광장에 메이리 쳤다.
한시간에 걸친 행렬은 교부들의 지정좌석에로 전진하는 대성전의 입구에서 끝났다. 행렬에 참가할 수 없는 소수의 회부들은 미리 참석했다.
교황의 여좌가 이번 공의회의 기념으로 대성전의 현관에 설치한 대리석 위를 넘어 지나갔다.
교황의 여좌는 성전 안 중앙지점에서부터 한층 더 느리게 거동하여 성베드루의 묘소 위의 커다란 제대 앞에 도착할 때까지 성가단은 「떼 데움」을 합창했다.
교황이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다음에 미트라관을 벗고 성신을 불러내리는 전통적 기도문 「베니 끄레아뚤」을 영창했다. 그러는 동안 행렬의 나머지 사람들이 대성전에 들어와 지정석에 착석했다. 공의회의 공용어인 라틴어에 능통한 「로마」의 신학생들로 구성된 공의회의 공식 속기사들도 착석했다.
교황은 교황 제대로 걸어가서 청동의 천개로 덮이고 홍녹(紅綠)색 융단이 깔린 단위에 놓인 옥좌 위에 앉았다. 이것은 공의회의 특별제대에서 성신을 찬양하는 미사를 시작하라는 추기경단장 프랑스 출신의 띠세랑 추기경에의 신호였다.
교황은 친히 이 미사의 마지막 강복을 보냈다.
公議會(공의회) 成功(성공)에 祈禱(기도)로 支援(지원)하자
聖母讚歌(성모찬가) 먼저 불러
추기경은 한분씩 교황의 앞에 나아가 순명이 예절을 바쳤다.
해당 계급을 대표하는 다른 수장들 가운데서 두분의 대주교와 두분의 주교가 선발되어 옥좌 앞에 나아가 교황이ㅡ 가락지에 친구했다. 교황은 미소를 띠우고 수장들 마다 한두마디의 말로 인사를 주었다.
이 예절에서 교부들 전체가 공동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성인열품도문을 영창했다. 복음성경은 두분의 추기경이 한분은 라틴어로 또한분은 그리시아어로 영창했다. 이 예절의 일부로서 이번 공의회에서 결정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신덕의 진리에 위반되지 말라는 표지로 제대의 중앙에 성경을 「등극」(登極)시키는 절차가 있었다.
이 장엄한 예절이 시작되기 전에 비가톨릭참관인들도 교황에게 경례를 바친바 의정서에 따라 한사람씩 교황좌 앞에 나아가 머리만을 숙였다. 참관인들 가운데는 WCC 및 기타의 비가톨릭 교파들의 대표들이 포함되었다.
各國政府代表(각국정부대표)
參觀代議員(참관대의원)들도 始終參席(시종참석)
공식 국가 대표들은 국가원수가 2명인데 애란의 시안 레마스 수상과 이타리의 아민토레 판파니 수상이었다.
교황은 연설을 마치고 일동에게 강복을 주었다. 여좌 위에 앉아 퇴장하는 동안 교부들은 교황에게 머리를 숙이고 성호를 그었다. 거대한 「올간」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이 방대한 대성전을 채우는 동안 교황은 거듭 거듭 손을 들어 강복했다. 그는 가을 볕에 젖어 광장 밖에서 환호하는 군중을 뚫고 자기 거실로 돌아갔다.
잠시후에 요안 교황은 자기 거실의 「발코니」에 나타나 광장을 내려다 보며 8천명의 사람들에게 강복을 보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각각 숙소로 돌아가기가 바쁜 교부들이었다. 교황이 보내는 『자, 저녁에는 평안들 하시오』라는 말 한마디는 군중 가운데 즐거움의 잔물결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