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 2次會期(2차회기) 展望(전망) - 「제노아」 大主敎(대주교) 시리 樞機卿(추기경) 會見記(회견기)
啓示問題는 用語差異 같아
敎會 테두리 잘 지켜야
다음 會期 成功하자면
眞理엔 變함 없다
議題 줄이고 過剩批評 삼가야
발행일1963-05-19 [제375호, 2면]
「제노아」의 대주교 요셉.시리 추기경을 대했을 때, 그는 침착한 사색가(思索家)의 면모를 열심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이태리 신문들을 펼치면서 『이것 봐, 내가 주지도 않은 강연 원고를 어떻게 싣고 있을까. 필자가 강연 원고 없이는 이렇게 써놓을 수 없었을텐데. 누가 갖다준게 분명하단 말이야』 공의회 교부들까지도, 누구의 강연을 끄집어서 논평을 단다는 것은 못마땅하다고 틀어 놓았다.
추기경은 「제노아」의 성로렌조대성당에 줄비하게 걸려있는 귀족들의 초상화와 닮은데가 있었다. 그의 연설하는 풍모가 더욱 그러했다. 사실은 그는 노동자 양친간에 태어났다.
헌출하게 큰 키에 57세의 추기경은 백발 한 올 없고 날카로운 지성(知性)에 심각한 표정과 또 건강한 몸가짐을 발산하고 있다. 22세에 서품되고 다음해 「그레고리오」대학의 전과목 합격의 오직 한 사람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획득했다. 24세에 신학교수 37세에 주교, 46세에 추기경으로 승진하면서 그간 신학교과서 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에 관한 저서를 내놓았다. 그는 노동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단(全斷)이 아니라 좋은 조정에 성공했음을 듣고있다.
그의 명쾌한 발언, 그리고 범할 수 없는 위엄(威嚴)마저 섞인 「유모어」 그런 것을 들을만 하다고 여겨왔었다.
언젠가 공의회 교부들의 좌석들에 걸터앉아 즐기고 있는 「제노아」 출신 신학생들을 가리키면서 동행하던 한 추기경에게 『저것 보십시요 제3차 바티깐공의회 장래 교부들입니다』라고.
교회가 바치는 진리(眞理) 그것은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열매일 것이다. 공의회를 진정 이해하는 사람은 공의회 교부들이 상이(相異)한 의견을 내건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그것은 진리에 대한 강조(强調)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공의회 다음 회기(會期)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본질적인 것이겠읍니까?
답=첫째 의제(議題) 수효를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년 걸려야 종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의회에 관한 글을 쓸 때 앞선 판단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다. 만일 다음 회기를 원만히 활동하고 수락되게하자면 공의회는 어떠해야 한다는 소리를 너무 하지말고 책이나 글로서 공박하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 그런 종류의 저술로 기대를 잔뜩 세워놓고 그것이 달성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공의회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거나 잘 안 된줄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공의회에 관한 논설들에 관해서, 나는 건전한 학문적 원칙에 비추어 너무나 생소한 취급을 하고 있는 많은 책들을 지적할 수 있다. 나는 다년간 신학교수였짐나 약간의 현대 저작자들에게는 역사적 연구의 정확한 원칙에서의 과정을 밝힐 필요가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현행 성서에 관한 약간의 저서에 나는 고려할 것이 있다. 오직 내재적(內在的) 원칙들과 외적 비평을 알고 그들의 한계(限界)를 아는 사람들만이 그런 문제를 정확히 써나갈 수 있는줄 알고있다. 약간 현대 저작자들이 바탕도 없이 단지 가설(假說)을 앞세우고 어떤 결론을 진행시켜 「테마」를 내놓는다면 그런 일은 교회 활동에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공의회를 성공시키는데는 우리들이 초자연적(超自然的) 견해를 가짐이 매우 요긴하다. 천주성신은 공의회에 작용하고 있다. 나는 많은 기회들에 『천주 성신의 활동이 있다』고 해왔었다. 그 기회들이 무엇이었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다. 공의회 기밀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본대로 공의회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이 집에서 완성하여 내놓겠다. 교황께서도 그런 기록을 요청하셨다.
문=전하, 전하께서는 공의회 관칙에 어떤 특별한 것을 가지고 계십니까?
답=물론 공의회가 그 활동을 완성할 것을 크게 바라고 있다. 나는 특별히 이 공의회에 제1차 공의회의 의제였던 문제가 나온데 흥미를 가졌으며 그것들이 명백히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주교들의 직무, 권한에 언급하겠다. 나는 왜 이 문제가 공의회에서 취급되기를 바라는가? 진리같은 것은 분명한 진리이야 하겠는데 주교들은 종도단(團)이요 교황은 그 종도단의 으뜸인 것이며 그러나 교황은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가령 주 교단이 없어도 여전히 그러하겠다(그리스도의 대리자)는 것이다. 이 이치(理致)는 이 문제에 있어서 모든 의문과 막연한 것(多義槪念)을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이것은 주교들이 교황과의 어떤 관계를 맺음에 있어 그것을 명백히 하겠고 그리하여 교황과 함게 그들은 공의회의 발표 법률 등을 낼 수 있겠는데 그러나 교황은 주교들에 관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상대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뜻 編註)
또한 나는 결정적인 성명으로서의 계시(啓示) 문제의 결론을 보고자 한다. 이지음 「계시의 두 원천」에 대해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성서와 성전(聖傳)을 계시의 통로(通路)라는 생각을 더욱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다만 「계시」란 술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나의 견해로는 이런 것은 모두 전문용어상의 문제를 두고 입씨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교회 안에 보존된 신적(神的) 계시의 사실을 알아야 할 일인 줄 알고있다. 나는 또한 교회의 복잡한 오의(奧義)가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만 제의되어야 하겠음을 간절히 바란다. (아메리카 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