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네 죄가 사해졌다.』 이 말씀을 믿지 않는 유대아인들은 이 자가 독성을 범했다고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원망하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사명에 정면으로 공격하고 부인하려고 하고 있었다. 죄사(罪赦)함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사람은 구원과 멸망의 두 갈래 가름길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류를 영원한 죽음과 그 원인이 되는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죄사함을 믿지 않을 때 구세주의 사명은 전적으로 부인되고 인류의 희망은 완전히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천주의 성성(聖性)만 본다면 천주는 죄인에게 대해서 무한한 증오만 가지신다는 생각을 하게될 것이다.
다라서 죄인에게 마지막 한푼까지 갚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시는 엄한 천주만 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정의의 때(死後)와 자비의 때(生存中)를 구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그릇된 생각이다. 죄인의 엄한 심판자는 도리어 죄인자신이며 죄인을 용허사기를 원하시고 또 사실로 용서하시는 이는 도리어 능욕을 당하신 천주님이 아니신가?
사실 나를 무에서 불러내사 나를 양자로 삼으시고 내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당신 친아들을 십자가상에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천주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베드루 후서 3,9 참조 )
천주는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권고 외부의 사건들을 죄다 이용하신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신 예수님은 아무리 비참한 죄인이라고 결코 버리시지 않으신다. 사람이 완전한 승락으로 범한 대죄는 지옥신고를 받게된다.
이러한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천주님이 엄한 큰 보속을 다하고 나서 그 영벌을 용서하시더라도 고마운 사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천주님은 얼마나 적고 쉬운 조건으로 용서하시고 계시는가!
놀라운 일은 천주님은 다만 죄인의 오만에 대해서 겸손의 희생 굳은 결심 굳은 신뢰만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죄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신부 앞에 겸손으로 고백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이 고백만으로 부족하다. 죄인은 진심으로 죄를 끊고 범죄할 기회를 피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물론 인간의 나약함에서 재범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죄를 피하기로 적당한 수단을 쓴다면 넉넉한 정개가 된다. 그러나 이 결심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하다.
죄인은 천주의 자비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사실 어떤 죄인도 용서를 믿지 않으면 용서를 청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곧 실망이라는 죄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대해서 천주님은 유다스에게와 같이 『그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마는』하실 것이다. 비참한 죄인일수록 더 큰 신뢰가 필요하며 따라서 더 큰 공로가 될 것이다.
『네 신덕이 너를 구하였다. 평안히 가라』하시면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양보하신다.
천주님은 고백을 도우면서 죄인을 용서하신다. 고해성사때 죄인은 두려워하고 주저하면서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간신히 입을 열자마자 성총의 도움으로 쉽게 고백하게된다. 죄인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고백할 수 있었는가 놀랜다. 그 영혼에 충만한 위로로서 죄인은 천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고 기뻐한다.
천주님은 잃었던 공로를 회복시키면서 죄인을 용서하신다. 고해성사로서 잃었던 공로를 도로 찾고 완전한 고해는 죄다 회복하고 우정과 친밀을 도로 찾는다.
이리하여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고 천주께서 당신 사랑을 더으신다.
죄인이 자신의 오만에 승리하고 용감한 희생을 하고 큰 신뢰로써 어려운 용서를 믿었고 예수 성신을 바로 이애함으로써 자신이 천주의 아들임을 표시한다.
이러한 행위는 천주의 관후하심을 강요하기 때문에 천주님은 상존성총을 더으시고 영혼과의 일치를 더 높이신다. 더우기 죄인이 하는 상등통회와 힘든 고백은 죄인을 더 겸손하게 만든다.
천주님은 많은 충실한 자녀들이 드리는 정성도 잊으실 정도로 회개하는 한사람의 죄인을 기뻐하신다.
천주께서는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을 회개를 요하지 않는 99명의 의인보다 더 기뻐하신다.
억만 자녀를 가지시면서 한 아들의 멸망을 두려워 하시고 슬퍼하시는 처주의 자비를 어떻게 표현해야 되겠는가? 이러한 사실은 천주님이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대해서 마치 나 하나 뿐인 것처럼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죄다 쏟아주신다는 생생한 증거가 아니면 무엇일까?
주여 나는 죄사함을 믿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의 약함을 도우소서!
陳聖萬 神父(예수회 회원 · 광주 대건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