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訪(탐방)] ⑨ 張大翼(장대익) 神父(신부)
信用組合(신용조합) 運動(운동) 開拓者(개척자)
누구나 도와야 마음 편해
발행일1962-10-21 [제347호, 3면]
현대는 성직자가 신자들의 경제생활까지 걱정하며 착하고 아름다운 영위를 지도하는데 사목효과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현대 성직자들의 포교사업이 옛날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발을 뻗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서울 경향신문 5층에 자리잡고 있는 중앙신용조합의 장신부는 카나다 「노바스꼬샤」에서만 일년동안 신용조합, 나아가서는 협동조합 운영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돌아와서 곧 한국에도 실현을 보게되었다.
장신부는 현재 신용조합의 일뿐만 아니라 성모수녀원의 지도신부로 그리고 대신학교에서 사회학을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미7사단에 나가는데 정식 미군 보조군목으로 대우를 받으면서 활약하고 있다. 거기에서는 국제결혼문제를 위시해서 미사 강론 고해성사 등을 맡고 있다.
잠시도 일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것이 장신부의 생리인 것처럼.
한국에서도 신용조합의 움직임을 보게된지 2년이 되어 오는데 그동안 눈에 뜨일만큼의 큰 성과는 없었으나 한발자국 한발자국 위를 향해서 올라가고 있는 단계임을 지적한다.
신용조합의 일은 어디까지나 경제문제이기 때문에 천천히 시작해서 천천히 효과를 보려고 하는 장기전에 임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성급하게 그 성과를 노렸다가는 역효과를 거두기가 쉽다고 한다. 앞으로 5·6년후에는 놀랄만큼의 큰 성과를 볼 수 있다면서 낙관하는 태도이다.
평북 신의주 출신인 장신부는 올해 신부된지 12년. 덕원신학교때에는 축구선수로 항상 반을 대표했고 좋은 성과를 올렸다는 것 축구뿐이 아니라 운동경기라면 무엇이나 즐기며 또한 특기를 가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장신부는 능동적인 활동가다. 그러나 인상은 매우 조용하고 정(靜)적이다. 그것은 성직자로서 쉬지 않는 영적추구(靈的追求)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장신부는 보좌신부로 장호원에 4년동안 있었다. 그때 장호원 신자들간에 대단한 인기를 차지했다는 소문!
『신부님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읍니까』 『비결은 무슨 비결,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이들과 잘 놀았다는 것 뿐입니다.』
장신부는 본당을 한번 맡아서 일해보기가 소원이었다.
사실 본당을 맡는 신부는 성격이 급하지 않고 편견됨이 없이 누구라도 또 어떤 경우에도 영신적 아버지로서 의논 상대가 되어줄 수 있고 자기 탓으로 남에게 불쾌한 인상을 잠시라도 주는 일이 없는 인생의 즐거운 면보다 많은 고통을 몸소 겪은 완전에 가까운 인격을 소유한 성직자라야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본당을 맡아도 장신부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미국인 신부들과 함께 일하면서 운전을 배운 장신부는 지금 손수 운전하는 차를 갖고 있는데 길을 가다가 차를 멈추고 안면이 있는 신자들의 편리를 보아준다.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기회있는대로 주려고 하는 장신부는 신학교 운동선수로 활약할 때 이미 몸에서 젖어버린 습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