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2) 疑惑(의혹)의 出生(출생) ②
발행일1963-05-19 [제375호, 4면]
수업이 끝난 뒤, 교무실로 나는 불리워 왔다. 때린 손매가 매웠던지 혹은 순자의 얄삭한 코가 삭았는지, 순자는 코피를 쏟았다고 한다. 마침 교정을 순시하던 훈육주임 C선생이 이를 목격했었다.
『학우간에 비록 잘못이 있기로, 말로 할 일이지 피가 나도록 때리는 법이 어디있느냐?』
『……………』
나는 묵묵히 훈육주임의 보라색 뉴똥치마폭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허리가 굵은 C선생의 치마는 아래로 퍼지지 못하고, 거꾸로 위로 퍼진 것같이 보인다.
『너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디룩디룩한 몸집에 반하여 그의 훈계하는 목소리는 낡은 바이올린의 고음줄을 키는듯이 씨그덩거렸다. 아이들은 이 훈육주임을 상당히 두려워하였지만, 씨그덩거리는 그 비음악적인 음성에 나는 아무런 권위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의 입에서는 연거푸 훈계와 기합이 쏟아져 나왔건만 나는 거의 코끝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담임인 K선생도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는 훈육주임이 말하는 동안, 떠불로 된 턱을 쓰다듬다가, 나중에는 코털을 뽑고있었다.
『…여학생은 여자다운 데가 있어야 한다. 못된 사내 아이들 모양 손짓하는 버릇은 고약한 짓야!』
말꼬리에 일부러 힘을 주고있다.
『…부드러운 것이 여자의 생명이다. 아니?』
『아니』의 발음이 또 되게 치올라간다.
나는 이때 C선생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도 여자면서 왜 부드럽지 못해요?)
입속에서 항변했다. 두 볼의 양 옆구리가 축늘어지고 이마의 근육이 벌덕거리는 것이 일그러진 깡통같다고 생각했다.
『너, 반성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선생님을 쳐다보는 그 눈초리가 뭐냐?』
C선생은 내가 쳐다본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나는 옆에 앉은 K선생 무릎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래된 양복인양 색이 발하고 군데군데 기름때가 번적거린다.
『가만이 있지만 말고 뭐라고 대답해 봐라!』
나는 K선생의 무릎에 시선을 둔채 입을 열었다.
『코피를 나게한 것만은 미안했어요.』
『그럼 코피가 안 나게 때렸다면, 잘했구나?』
『네에』
『인제보니 얘가 보통이 아닐세!』
나는 훈육주임의 날카로운 시선을 이마에 느끼면서 퇴색한 K선생의 바지 무릎만 바라보았다.
『양키같이 생겼으니까 같다고 한건데 그게 무슨 큰 잘못이며 그까짓 일로 사람을 친단 말이냐?』
『전 싫어요』
『나는 양키같다면 의례 좋겠다. 싫을 것도 많다?』
『같다고만 한 줄 아세요? 이단자에게 침이나 밸듯이 퇴기퇴기 했거던요』
『……』
속사포 같던 훈육주임의 입도 잠시 다물어졌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이단자라는 어려운 말이 불쑥 적절하게 잘나왔다고 여겨졌다. C선생도 그 한마디로서 나에게 대한 태도가 조금 달라진듯 했다.
『김순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남이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만 떳떳하면 되는거야. 김순자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같이 잘 놀도록 해라.』
이번의 말꼬리는 아까 같이 억세지는 않았다.
『아뭏든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폭행 행위는 못써. 알았지』
훈육 주임은 다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간다.
『누구든지 날더러 퇴기라고 또 놀리면 때려 줄테야요!』
나는 입술을 지끈 씹으며 말했다. 훈육주임도 아무말을 못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일인지 눈물이 나와다. 나를 퇴기라고 불르는 것이 그처럼 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출생에 어떤 비밀이 있는듯한 것이 슬펐다.
『양나순!』
이때 K선생이 넌즈시 나를 부른다.
나는 눈물을 닦고 처다보았다.
『양나순 내가 보아도 서양사람같이 생겼다. 키 작은 사람 보고 키다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설마 퇴기면 어떠냐? 그게 무슨 흉이냐? 지금의 미국 사람들은 그 구십퍼센트가 이민족의 결합에서 생긴 퇴기들이다. 걱정할 건 없어!』
훈육 주임의 백마디보다 코털을 뽑고 있던 K선생의 한 마디가 나의 가슴에 안기었다.
교무실을 나와서 나는 현관 앞에 있는, 전신을 비추는 큰 거울 앞에 섰다. 남달리 안눈섭이 길다랗게 뻗은 내 눈을 바라보았다.
특히 동공을 주시했다. 눈알은 까맣듯도 하고 어찌보면 자색이 묘하게 어리어있다.
방과 후 책가방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행인들의 시선이 유난히 내 얼굴에 쏠리는듯 했다.
(퇴기면 어때)
스스로 이렇게 타일으기도 했다. 우리 집과 학교 사이의 약 삼십분의 도정을 나는 늘 걸어다녔는데 이 날은 일부러 뻐스를 타고 일분이라도 집에 빨리 가려고 했다.
(퇴기라도 좋아!)
하는 체념이 있는 반면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캐내야겠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쳐든다.
『어머니!』
대문 밖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들어서니 어머니는 없고, 오빠만 자기 방인 사랑에 엎드려서 노트정리를 하고 있었다.
『오빠, 얘기할게 있어?』
『뭐?』
오빠는 귀찮은듯이 펜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오빠의 눈동자만 한참 나는 들여다 보았다. 그의 눈은 큰 편이지만, 나에게 비하면 어디까지나, 동양적이었다. 그리고 색갈은 까맣다.
『오빠…』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날 보고 퇴기라고 하는데 오빠 사실을 애기해주어! 오빠는 알지?』
오빠는 큰 눈을 멍하니 뜨고 잠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에 신경쓸 거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노트 위에 시선을 떨어뜨린다. 이때 오빠의 이마살 주름에 나는 무엇인가 난처한 기색이 숨겨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빠 난 인제 어린애가 아니니 감추지 말고 다 얘기해주어….』
오빠는 고개를 들지 않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나는 속으로 이때 빌었다.
(제발 고아원에서 줏어오지만 안했으면!)
오빠가 고개를 쳐들기를 전에 무엇인지 두렵기도 했다. 무슨 선언이 오빠의 입에서 나올지 몰랐다. 그는 아버지에게도 선듯 선듯 곧은 말을 할적이 많다.
나는 오빠의 말을 기다렸다.
『의심하는 네가 바보다. 아버지 닮았는데 무슨 걱정이냐. 너는 내 동생이야!』
나는 맘이 놓이기는 하였으나 오빠의 입도 그 비밀만은 닫고 열지 않고 있다는 의심은 아직도 남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나 나나 어머니가 꼭같이 낳았지』
『물론…』
나는, 닫시 무슨 말이 나올까봐 기다렸으나, 오빠는 노트에 펜을 놀리기 시작한다.
그날밤 아버지는 열한시가 넘어 돌아왔는데,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안방에 있었다. 그날 학교서 순자를 때린 이야기를 하고,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이때 어머니는 내 무릎을 잡아끌어 꼭 껴안고 볼을 부벼대며
『우리 딸을 누가 그 따위로 놀려. 네가 바로 요 배 안에서 생겨서 세상에 나오자 앵앵 울었단 말야?』하고 웃으며 말한다. 어머니의 애무에는 아무런 그늘도 없이 보인다.
『너 앨범 보았지? 백일때 사진 돌 때 사진 다 있는데 애이 바보!』
어머니 앞에 오면 의심의 구름은 어쩐지 깨끗이 씻어진다. 나는 엘범 속에서 본 나의 어릴적 사진을 회상했다. 고아원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엘범이 증명하고 남았다.
(혹시 그럼…)
나는 이 때 또 다른 의심이 생겼다.
무심코 혹시란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혹시 뭐니?』
『나 그 말은 안할테….』
『해라. 어머니한테 무슨 말을 못하니?.』
『화 내지 않기로.』
『너하고 나하고 단 둘이 얘긴데 어때.』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말어.』
『안 하구 말구. 뭐니?』
『혹시… 어머니가 서양사람하고 부부가 된 일이 있어서 나를 낳은거 아니유?』
『호호호…』
어머니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어머니는 23년 전에 열여덟살 때 너의 아버지하고 결혼해서 이제것 살고있는거야. 딴 사람한테 시집간 일 없다!』
『난 어머니만은 누가 뭐래도 우리 어머닌 줄 알고 있어』
『암 이 세상에 너의 어머니는 나 하나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