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角圈(시각권)] 26位(위) 諡福運動(시복운동)에의 關心(관심)
殉敎者 顯揚會의 進路
한 精神運動으로서
全國의 聲援 얻을 수 있어야
발행일1963-05-26 [제376호, 1면]
순교자현양회에서 전국 신자들에게 보내는 호소의 말을 낸적이 있다.(5월5일 가톨릭시보) 오는 1966년은 병인년(1866년)으로부터 백주년이 되므로 그 때까지는 적어도 우리 순교자들에 대한 기념사업의 외모를 갖추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 보도를 읽고, 어떤 분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베껴 보낸 분도 있고 혹은 본당에서의 현양사업 추진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부진(不振)하지 않느냐는 열성을 표명해 온 분들도 있었다. 그 후 순교자 현양회측에서 새로 전한 소식은 입수하지 못했다. 그 당시 ①열복조사(列福調査) 수속을 마친 26위의 열복식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일. ②가톨릭박물관의 설치 ③교회 문화재의 전시 ④교회 고전(古典)의 출판 등 당면한 목표를 내걸고 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전국적인 성원을 호소했었다.
우선 26위의 열복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보자. 원칙적으로 말하면 열복운동은 본인이 사망한 당해 지역 주교가 일으켜야 하는 법이다. 이런 원칙보다 이 땅 우리의 순교선열들이라는 견지에서 가능하면 거족적인 관심을 모으게 하는 것이 더욱 그들의 숭고한 순교정신 및 이 민족에 끼친 찬연한 공적을 선양하는 길이겠다. 이미 순교자 현양회가 존립에 있으므로 항상 그곳이 주동을 잡아가게 성원해 가야할 줄 안다. 열복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신적 뒷받침이요 열성있는 신심운동일 것이다. 복자 위에 오르게 될 그 분들의 탁월한 덕행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위에 두 가지 영적이 있어야 한다.
「로마」에서 누가 복자위에 올랐다고 한 때는 대개는 그들의 훌륭한 생애를 소개하고 또 면밀한 조사과정을 통과한 두 개의 영적을 발표한다. 또 복자위에 오르기 전에 「_부스·데이」라 하여 복자보다 한 층계 얕은 가경자(可敬者)의 칭호를 받기도 한다. 순교자 현양회가 이미 시복조사를 완료했다고 하는 우리의 26복자 후보자들은 앞으로 일정한 수속과정을 밟게 되겠지만 현단계에서는 먼저 그 분들의 열복을 열렬히 갈망하는 전국적인 정신적 지원(支援)이 선행(先行)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정신적 지원을 자아내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모든 정신운동에서 보는거와 같이 안의하게 되는 일은 아니다. 물론 역사상의 다른 어떤 정신운동의 양상 및 그 「테크닉」같은 것과 비겨서 하는 말은 아니겠으나 거기 쏟아야할 노력과 인내 그리고 그 곤란성같은 것은 대동소이한 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이 운동은 어디서보다 각 남녀 수도원의 강력한 영성적 협력을 받아야 할 것이며 또 모든 열심한 신자들의 기구의 아낌 없는 협조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퍼져나가 조직력을 구비한 항구한 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박물관을 설치하고 전시 출판을 병행해간다는 것도 필요하겠다. 이런 일은 결코 하나의 고전(古典) 취미같이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은 대단한 인식 부족이다. 순교자 현양사업이 단지 사료(史料)를 수집해 정리하거나 전문가의 서제에 갇혀진 연구활동에 그친 일이 아니다. 역사적 자료를 정비하고 그것을 깊히 연구해 간다는 것은 현양사업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그것만이 현양사업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런 뜻으로 박물관, 전시 및 출판 사업 등은 순교사 연구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서 더욱 순교의 갸륵한 정신을 현양하고 또 그것이 신심생활에 많은 자극이 되게 하자는데 같은 비중의 뜻이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동 호소에서 전국 신자들의 협조를 바란 것은 이 사업이 전국적인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는데 있고 사실 순교자 현양회는 그간 전국적인 일을 해 온 것인줄 알고있다. 장차는 이런 일은 한국 주교회의(主敎會議)의 한 결의기관 또는 그 한 위원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長)은 주교 한 분이 취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때 더욱 힘있는 호소문을 내고 또 전국의 정성을 으기에 편의를 얻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느 교구의 한 소속단체가 전국적인 협조를 얻을 수 없다는 이치는 서지 않는다. 가령 어떤 출판물은 타교구 것이니 원고를 써주지 않겠다는 태도를 표명하고, 또 어떤 분은 전국적인 일을 한다면서 선청(先請)이 있은 곳의 원고청탁은 무시하고 자기 소속 교구의 것에 대한 의리(義理?)라도 세우는듯 하는 수가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전국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경험과 안식을 가지지 못한 소승적(小乘的)인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섭리가 일하는데까지 작용한다면 남의 협조를 바라는 PR같은 것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한국 순교자 현양대회를 명실공히 우리의 순교자현양운동의 「센타」로 잘 도와가야 한다. 먼저 발표된 그러한 「프로젝트」들도 기어코 달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순교자 현양회 자체가 모든 사업에 정성과 인재를 동원할만한 권위를 세우고 또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태세를 갖추어갈 수 있어야 한다.
순교자 현양회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가톨릭시보에 보내준 전국 독자 각위와 함께 그 앞날의 융성발전을 빌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