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訪(탐방)] (10) 作曲(작곡)도 하는 李宇哲(이우철) 神父(신부)
不遇少年(불우소년)의 아버지
少年本堂(소년본당) 세우기가 所願(소원)
발행일1962-10-28 [제348호, 3면]
경기도 시흥군 잠실리성당의 본당신부이면서 또한 성심원의 원장이기도 한 이우철 신부는 15년이란 긴 세월을 조금도 지루한 감 없이 오 천주께서 명하시는 복된 사업추진에 온 정열을 바치고 있었다.
현재 잠실리성당의 교우는 일천오백명. 도저히 지금의 성당으로서는 주일미사나 첨례미사때의 혼잡을 피할 길 없어 커다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계획해오던 소년본당으로 지금 교회를 사용하고 일반교우를 위해서는 새로이 성당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단계에 왔다는 것.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그들 성당을 찾을 때 방황하는 아이들은 이끌어주는 손 없어도 찾아들 수 있는 그들의 본당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하며 오늘날 긴급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 성심원에는 일백삼십이명의 어린이가 있는데 모두 남자 아이들 뿐이다.
4세부터 17세까지의 완전히 의지할 곳 없는 고아를 양육하고 있다. 만 21세가 되면 정식으로 졸업한다.
이신부가 이러한 사업에 착수하게된 동기는 해방 이듬해의 일이었다. 모두 해방이 되어서 기뻐하는데 의지할 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어린남자 아이들을 볼 때 측은히 생각하게 되었으며 소년은 악하지 않다는 번개불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데에서 출발을 보게되었다. 물론 빈손으로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피아노」를 팔고 또 그밖의 것을 팔아서 우선 다섯명의 고아만을 지도할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몰려드는 어린이의 엄청난 숫자에 그만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던 이신부이다.
부여가 고향인 이신부는 막내둥이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어릴때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은 이신부가 일평생을 가는데 크게 힘이 되었으며 살아서는 교훈으로 인생관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몹시 덤비고 설치던 어린 시절 바가지를 깨뜨린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어머니에게 호된 매를 맞고 몹시 어머니를 원망했으나 그날밤 어머니는 잠든 아들을 힘있게 끌어 안으며 쓰다듬던 그 기억 사실은 잠든체 했으나 자지않았기 때문에 그제서야 어머니의 진정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신부의 생활신조는 진정한 사랑은 반듯이 나타나고야 만다는 철측을 몸소 맛보았고 실천하는데 게을하지 않고 있으며 -백명이나 넘는 아이들의 좋은 아버지로서 오늘의 성심원을 지키는 믿음직한 신부가 되고 있다.
허나 아직 현상유지가 되지 않는 형편이어서 고달픔이 쉬지 않고 있었다. 정부와 NCWC 그리고 벨기에에서 벨기어린이들이 거둔 성금으로 구호품이 오고 있다. 현재 성심원어린이는 중학교까지는 의무적으로 갈 수 있는데 고등학교로 진학못한 애처럽게 여겨 앞으로 반드시 고등기술학교를 세워보겠다고 한다. 허나 언제일지…
이신부는 무척 음악을 좋아한다. 좋아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작곡을 하는데 『리베라메』 같은 작품은 격찬을 받은 바 있다. 음악 속에서 생활하며 조용히 인생을 생각케 하는 잠실의 자연분위기가 명랑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또한 관대한 이신부의 성품에 「푸라스」 를 가져온 것 같다. 손세이 없는 성직자의 한사람으로서 좋은 후배를 낳을 것이 틀림없다. 기대되는 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