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도파 꼭대기에서 명동거리를 내려다보면 개미떼같이 사람들이 미려 다닙니다. 저 많은 무리가 대저 무엇을 찾아 다니는 것일까요? 결론은 하나에 귀결되고 맙니다. 한 마디로 『좀 더 나아질까 하고…』 결국은 불행을 고의로 찾아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설사 도적질을 하러 나섰다치더라도 그가 우선은 행복을 가져올 줄로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행복을 향하여 끌려다니는 존재인가 봅니다. 이는 천주께서 모든 이의 마음 속에 박아주신 갈증으로서 인간은 행복을 위하여 조성된 존재요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행복으로 초청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으로 주소만 바로 찾아 갈 줄 안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천주께서 거두지 못할 것을 씨 뿌리실 이가 만무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찾고있는 주소는 국한된 행복이 아니고 무한히 크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동물의 만족감과 인간의 불만을 비교함으로써 증명됩니다. 짐승은 음식을 취할 때 자기 건강에 맞을 정도 안에서만 자동적으로 그치는데 반하여 탐욕적으로 과식 과음하여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라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동물의 성생활도 놀라울만치 규율적이고 좀 더 우습게 말한다면 동물이야 말로 참으로 성(性) 방면에 철저한 정덕을 지킨다고 할 수 있음에 반하여 부부생활에 있어서까지 무제한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 할 수 있으니 수란기 여부를 막론하고 도수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도 인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와같이 감각세계에 있어서까지 자기의 기능이 국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인지 더잇아 것을 찾고 있읍니다.
사냥군이 총을 들고 나설 때도 그 목적은 저녁 끼니를 만들기 위한 몇 마리의 짐승이라기보다 그 사냥이 가져오는 쾌감이라는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결코 인간은 이 지상의 보화에 만족할 수도 없으며 그들에게 고정될 수도 없는 존재요 무한한 선(善)을 행하고 있고 그 안에 고정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인간 자유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참다운 의미의 자유란 뭣이냐?
이는 바로 이들 국한된 선에 고정되지 않고 영원한 선으로 자기의 욕망을 바로 이끌 수 있는 의지의 힘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읍니다. 뼈다귀를 눈앞에 둔 개가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희생하자』고 자제할 수 있는 개는 한 마리도 없음에 비하여 인간만은 지상보화(국한된 신)에 대한 애착을 스스로 끊을 수 있는 자제력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 자유의 소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동물과의 차이점에서 인간은 그 자체가 모험적인 존재라 함을 깨달을 수 있읍니다. 돈, 권력, 쾌락 이들 국한된 행복에 고착되고 그를 최고목적으로 하느냐(우상숭배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들을 방법으로서는 사용하되, 그를 초월하여 무한선인 천주께로 즉 인간 본래의 주소를 찾아가느냐?는 각자의 내적 자유에 달린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돈에 속고 사랑에 속고 권력에 속는다는 말의 깊은 뜻은 바로 이들 국한선을 우상숭배한 자에 따라오는 양심적 내출혈(內出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두 갈래로 찢어진 상태, 한편으론 천주께로 가야겠다는 끈덕진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타면으로는 고정되지 못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불행한 양심상태,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자유의지의 훈련이란 문제가 중요시됩니다. 성총의 힘을 빌어 자기 원욕을 제재하하는데 훈련되고 최종 목적을 향하여 돌진하는데 성공하는 사람의 내적 평화란 범인이 상상조차 못할 천상적인 것임에 반하여 순간적인 기분, 전제 없는 육욕에 자기 몸을 맡긴 인간은 이 내적 출혈상태(이를 육욕의 노예라 함)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하며 얼마 아니가서 그의 생활이 만사에 지루해지고 모든 것에 허무를 느끼다가 결국은 지상의 보화를 한 손에 잡았던 마리린.몬로와 같은 결말을 짖게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자유란 선과 악을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간단히 해치우기보다는 무한설에 고정된 인간의 방향, 노선을 쟁취하기 위하여 국한선에 대한 애착을 조절할 수 있는 노력이라함이 적절할 것입니다.
원죄로부터 상처받은 인간 본성에 부과된 이 힘은 노력은 성총의 힘으로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미 승리의 가능성을 증거하셨고 그를 따르는 우리에게도 세상을 이기는 힘을 물려주셨읍니다.
朴成鍾 神父(전국 JOC 지도, 종군신부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