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바마 事件 경위
미국의 흑·백 분규는 백인들이 버리지 못하는 차별의식의 발동인 것으로 감출 수 없는 추문을 던지고 있다. 「알바마」에서 뒤끓고있는 이 분규속에 그리스도의 인류애와 깐디의 비폭력저항주의 방법으로 선전(善戰)하고 있는 한 목사의 장한 기록을 소개한다. (더·싸인 誌)
1955년 12월 어느날, 성탄이 임박한 피복공장 노동에서 피곤한 몸을 뻐스 흑인칸에 실은 파크부인(물론 흑인)은 그대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 때 운전사가 와서 앞줄 넷칸은 백인에게 양보하라고 했다. 셋 흑인은 일으나 자리를 옮겼지만, 파크 부인은 피곤에 못이겨 잠든척하고 있었다. 단지 이 정도의 사건으로 동시(同市)의 흑백분리규칙위반 구실을 달아 체포하였다.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 학대 불법체포가 없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흑인 사회를 자극시키고 굉장한 항거운동의 동기를 장만했다. 여기 27세의 흑인목사 말틴.루터.킹 박사가 오늘은 거의 세계적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
■ 理念을 세우기까지
「보스톤」대학의 교육을 받은 그가 이곳 목사직을 맡아 왔을 때는 감옥 출입을 밥먹듯이 해야하는 혁명가의 기센 생활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內面) 생활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는 오늘을 위해 오랜 터전을 쌓아왔다.
『나는 인종차별뿐 아니라 탄압과 야만적 대우를 보면서 자라났다. 흑인들이 몹쓸 몰매를 받고 「쿠 쿨룩스 클랑」의 만행을 당한 공포의 밤도 지냈다. 경찰의 무자비한 처사와 부당한 재판을 내 눈으로 보기도 했다. 이런 일이 나의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고있다』 이것은 그의 심정을 고백한 것이다. 1944년 「모어 하우스」 재학시절은 인생을 즐기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가 목사직을 택할 것 같지 않았다.
■ 그의 思想·非暴力
벤쟈민.메이스 박사, 샤뮤엘.윌리암스 박사 등의 영향을 받고 「소로」의 사상에 파고들면서 소위 비폭력 저항사상의 지성적 이론에 접촉해갔다. 1948년 목사직을 택하면서 「사회악(社會惡)의 제거」를 골돌히 생각하면서 사회철학에 들어섰다. 『인간의 영혼을 표방하는 어떤 종교라도 그 영혼에 상처를 주는 사회 및 경제상태에 무관심한다는 것은 다만 매장될날만 기다리는 영성적으로 빈사(빈死) 지경에 있는 종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의 확신에 도달했던 것이다.
『나는 깐디를 읽기 전에 그리스도의 윤리인 인간관계 및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깐디를 읽었을 때 이것만으로 안 도니다는 것을 알았다』 비폭력과 사랑을 강조하는 깐디에게서 그는 그토록 찾든 사회개혁의 방도를 찾아냈다는 뜻이다.
킹박사는 이런 바탕을 가지고 차별대우에 도전해갔다. 「파크」 체포 사건에서는 모든 흑인들은 동선로의 뻐스를 타지 않기로 했다. 일을 꾸며놓고도 막상 조바심이 앞서기도 했다. 그날 아침 첫 뻐스가 지나가기를 창가에서 보고있든 킹의 아내가 『여보 텅빈 뻐스가 가는군요!』 그것은 상오 6시 둘째 빈차 셋째 백인 2명 넷째 역시 흑인들은 행렬을 짓고 보행으로 쏟아지면서 지나치는 뻐스를 볼 때마다 야유를 올렸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항의를 벌렸지만 뻐스들은 경찰이 호위했을뿐 「파크」 부인은 시(市) 인종분리조례(條例)에 불복한 유죄판결을 내렸다. 물론 항고했다.
■ 行動하는 사람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들은 단결할 수 있었다. 킹박사는 이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민중대회를 열 때도 식은 기도와 성경을 봉송하면서 열었다. 『오늘 우리는 대우를 좀 바꿔달라고 모인 것이 아니라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정의(正義)에 무슨 등급이 있단 말입니까? 좀 얕은 자유와 정의에 인내하라는 것입니까?』 킹박사는 법률 및 도덕에 근거를 둔 논리만을 전개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 적을 사랑해야 하는거와 같이 백인들을 이렇게 축복해주고 있다』 참 눈물섞인 익살 같으면서 그러나 어떤 굉장한 군중대회에서도 거기 진실한 공기를 장만해갔다. 그의 인격을 수만 군중 위에 비출 수 있었다. 흥분한 환성을 울리는 사람들에게 『조용하십시요. 침착하십시요. 그러나 만일 용감히 항의하려거든 위엄과 그리스도적 사랑으로 일관해 갑시다. 그러면 훗날의 역사가들은 위대한 사람들, 흑인들이 새로운 의미(意味)와 존엄으로 문명의 혈관을 흐르게 했노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비폭력의 방법을 써나가는 그의 위력은 과연 어떠했던가 백인들은 킹의 집에 폭탄을 던졌다. 가옥이 거의 반파했지만 부인과 아기는 무사했다.
군중들이 몰려왔다. 시장과 경찰서장이 달려와서 유감의 뜻을 표했다. 킹박사는 『여러 분무기를 가졌으면 혹 가지려고 하거든 그것만은 단념하십시요 이렇게 우리는 무사합니다. 이보다 더 큰 승리는 없읍니다. 제발 여러분이 침착함으로써 승리로 끝나게 해주십시요』라고 했다.
그는 이미 영성생활에 들어선 것 같다.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들어내고 있다. 그의 철학 그의 비폭력방법이 과연 아메리카·흑인의 자유를 쟁취하는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에게는 이제는 감옥이 문제되지 않는듯 오직 그의 신념 그의 철학 그리고 비폭력을 앞장세워 인류적인 자유 인류적인 정의(正義)를 가장 힘있게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