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15) 오늘·來日(내일) 달라지는 沙漠(사막)길
장담기도 할 수 있는 死海물
발행일1963-05-26 [제376호, 3면]
「욜단」강을 하직하고 길 아닌 길을 따라 사해(死海)를 향해 달렸다. 길 아닌 길이라니 우수운 말 같지만 사실 사막이란 모래밭이어서 바람과 비가 지내간 뒤면 길은 없어지고 다시 모래밭이 되는 까닭에 우리내 고장처럼 잘 닦아둔 일정한 길이 없다는 뜻이다.
누가 하나 먼저 지나갔으면 다음부터는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르기로 마련이겠기에 우리도 그렇게 했단 말이다.
눈앞에 사해가 파란 자태를 드러내고었건만 차의 방향은 빗나가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매우 가풀막진 동산 앞에서 멈춘다. 산에 올라가니 그 언젠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폐허가 나타났다.
나는 이 폐허가 「창세기」 19장24절에 유황불로 멸망되었다고 기록된 「소도마」와 「고모라」의 폐허인줄 여겼더니 그것이 아니란다. 사실 그 때가 언제였기에 「고모라」와 「소도마」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겠는가?
여기는 그리스도 당시 오히려 그 전전부터 「바리세이」들 중에서도 아주 열성파인 일부 인사들이 모여 수도생활을 하던 곳이란다. 요안세자도 이 무리의 한 「멤버」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생활이 검소하고 계율이 엄했으며 특히 성경을, 원문 그대로 보존하는데 사력(死力)을 다했다는 것이다. 근래 여기에서도 구약의 중요한 자료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어 모자와 수단을 단속하기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별 신기하게 볼만한 것도 없건만 무엇을 모두 그렇게 이정되는지 근 한시간 이상이나 꾸물거리다가 사해로 나왔다.
사해란 물에 염분(鹽分)이 너무 많아 생물이라고는 없기에 「죽은 바다」라 한단다. 물을 한오금 입에 넣어보았더니 과연 짜다. 구역질이 날만큼 짜다. 장담이 하려고 풀어놓은 소금물보다 짠 것 같다. 수건으로 손을 닦아냈건만 손이 찍찍하기에 손을 비볐더니 국수가루처럼 때가 밀려나온다. 무지무지하게 염분이 많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기에 물에 들어가도 사람이 까라앉지 않고 뜬다는 것이 아니냐?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어 가서 시험을 해보곺으나 그러할 처지도 못되고 마침 하절(夏節)이 아니라 해수욕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실제 어느 정도 부력(浮力)이 있는지 시험해보지 못한 것이 서운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다 내 뜻대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니 참을 수밖에.
처음 오던 길을 다시 돌아 「에루살렘」으로 향했다. 먼저번에 말한 후미진 골작이를 돌고돌아 마지막 돌 무렵 차가 멈췄다. 그 부근은 다른 곳과 달라 피와같이 샛빨간 황토땅이다. 이곳이 이렇게 붉은 것은 강도맞은 사람의 피로 물들렀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전설의 가치조차 없는 말이다.
더욱 가관인것은 그 자리에서 루가 복음 10장23절부터 37절까지의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즉 예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실 때 강도맞은 사람의 비유가 나오는 구절이다.
이 성경구절은 어디까지나 비유요 실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심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실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멍청하게 성경을 읽어주는 것인가?고 비웃었다. 그러나 도리켜 생각해보면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인솔자가 이 성경구절을 읽은 것은 거기서 참으로 도적맞은 것이라 인정해서가 아니라 여기를 지나가는 기회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예수님 말씀을 다시 듣고 묵상해서 실천해보라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이러고보메 남의 말을 듣는대로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자세각도 여하에 따라 말의 효능이 크게 달라지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경솔하게 남을 마음 속으로나마 꾸짖은 것이 미안했다. 이것이 또한 이 기회에 내가 깨다른 유익한 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