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想(수상)] 시간도둑
발행일1963-05-26 [제376호, 4면]
남의 물건을 주인의 허락없이 불의하게 탈취하는 것을 도둑질이라 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을 도둑이라 한다. 세상에는 허다한 도둑들이 있다. 백주에 팔목 시계를 앗아가는 도둑이 있는가하면 귀염둥이 때때옷을 벗겨가는 도둑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도둑이 있는가하면 땅속 하수도 「파이프」를 파가는 도둑도 있다고 한다. 세상에는 각가지 도둑이 득실거리고 있다. 그중에 한 묘한 도둑이 있다.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것까지도 모르게 슬쩍 채가는 시간 도둑이다. 시간도둑인줄 알면서도 고스란히 시간을 빼앗기고 만다. 더구나 도둑의 죄명을 걸수도 없고 경찰에 고발할 수도 없는 기기 묘묘한 도둑이다. 도둑 한 시간을 변상할 수도 없고 손해청구도 할 수 없는 도둑이다. 그러나 확실히 도둑임에는 틀림없다. 아-니 도둑치고는 최고급 도둑이다.
옛말에 『시간은 황금이다』라고 했다. 시간이 황금을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요지음 「스피드」 세계에 와서는 시간의 값이 더 크게 평가되고 있다. 분을 다투고 초를 다투는 세상이 아닌가? 눈깜작할 사이에 땅덩이를 몇 바퀴나 도는 「스피드」 시대이다. 누가 먼저 달나라에 가느냐? 누가 먼저 총을 들었느냐? 누가 먼저 읽었느냐? 누가 먼저 썼느냐? 누가 먼저 말했느냐? 그야말로 오늘의 세계는 「시간」 앞에서 「누가 먼저냐」하는 순간을 다투는 세계이다. 인류 역사는 시간의 투쟁사이다.
그런데 보라! 저-기 팔장을 끼고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무리를!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하품만 하고 있는 저들을! 그리고 이웃집 안방에 둘러앉아 하루종일 남의 험담만을 하고 있는 아주머님들을! 그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되려는가?
윤리 원칙에 재산을 낭비하는 것도 죄라고 한다면 재산보다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고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그는 아직도 시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리이다. 남의 위한 시간을 앗아가는 것이 시간 도둑이라면 자기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또 하나 자신의 시간 도둑이라 한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겠는가? 재산을 낭비하여 주색에 떨어진 탕자에게 동정이 간다면 여기 시간을 낭비하는 탕자에게도 동정을 보내라! 우리는 「시간의 탕자」가 되지말자. 시간 탕자이거던 늦지 않다. 하루바삐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
『시간은 영생의 담보물이다』
『해가 있을 동안에 나 마땅히 나를 보내신 자의 일을 할지니 밤이 오매 그 때에는 아무도 능히 일하지 못하나니라』(요왕 9.4) 해가 있을 때 일해야 한다. 해가 지고 밤이 오면 그 때는 일할 수 없다. 천주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을 때 영생을 준비해야 한다. 우주의 시간을 영원에 비긴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천주님은 아무것도 아닌 이 시간속에 영원한 생명을 묻으놓으셨다. 하나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영원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짜르는 자살이 무엇 때문에 죄가 되는가 묻는다면 그 생명은 자기의 것이 아니고 천주님의 것이기에 주인의 허락 없이 임의로 처분하여 천주님께 크다란 모욕을 끼쳤으니까 죄가 된다고 한다.
옳다!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천주님께 잠간 빌린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만일 천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요리한다면 그는 「시간의 자살자!」 주인의 엄책을 면치 못하리라 빌려온 책을 주인 몰래 팔아먹었다. 그는 불의한 죄를 범했다. 주인의 뜻을 알아보지 않고 시간을 마음대로 처분했다면 그는 시간 주인 앞에 불의한 죄를 범했다. 역시 또 하나의 시간 도둑이다.
「시간도둑!」 천주님께 영생의 담보로 받은 시간을 도둑하다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큰 도둑이다. 염치 좋은 시간도둑은 『시간을 좀 빌립시다』하고 덤빈다. 빌리다니 그것을 언제 어떻게 갚겠다는 것인가? 실로 시간도둑은 가지 가지로 묘하다.
우리 주위에 웅성대는 시간 도둑을 볼 때 하루바삐 시간이 없는 세계로 가고픈 생각 간절하다. 시간이 없는 그 세계 그 분에게로 빨리 가야지! 이 세상에 시간 도둑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시간 도둑에게는 앙화로다. 그는 시간이 끝나는 그 때 후회함이 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