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을 아주 요약한다면 용서 하기를 사랑하는 덕에 있다고 하겠읍니다. 주께서는 공생활을 통해 당신을 따르는 자에 용서하는 교리를, 실천할 근본진리로 가르쳤읍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천주님은 우리 각자를 용서하시니, 우리도 마땅히 우리를 거스리는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저들을 박해하는 우리들에 좋게 해주리라고 하십니다. 용서하기에 한량(限量)이 없는 중좌로,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최후 순간에 『성부여, 저들이 할바를 모르오니 저들을 용서하십시요』고 외쳤읍니다. 자기 손에 못을 박은 자의 죄사함을 구했으며, 십자가에 둘러싸여 편태하고 조롱하던 그들이 죽기전에 통회케 했읍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주신 표양입니다. 당신을 따르며 배우려 하든 자들 가운데 성모님 만큼 이 용서의 교훈을 아는 자는 없었읍니다. 성모성심은 수난의 모든 고통을 악당들의 미움과 믿던 벗의 버림을 예수와 함께 받았읍니다.
그뿐 아니라 성모성심안에는 당신 성자와 같이 미소한 미움도 들어있지 않았읍니다. 조그마한 복수심도 없었읍니다. 온전히 용서하기를 잠간이라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종도들의 잘못으로 주께서 더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비겁한 그들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맞아주었읍니다.
이 자비와 용서의 큰 교리를 더욱 분명히 배우러 할진대,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 따른 많은 성인들을 볼 필요가 있었읍니다. 많은 치명자 중 성 스테파노는 말씀의 진리에 피 흘린 첫 영예를 차지했었읍니다. 그는 자기 강론의 힘으로 듣는 자들의 마음을 다잡지 못하자, 죽음으로 자기 사명을 다하고자 기구드렸던 것입니다.
악당들이 돌로 쳐 몸에서 피가 튕기자 스테파노는 더를 죽인 무리들의 죄를 용서한 위대한 모범인 예수님을 본받아 천주께 저들을 위해 빌었읍니다.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모님 및 첫 순교자 스테파노께서 준 본보기를 보면서 우리는 오늘 성경의 무자비한 종의 이야기의 한층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천주께서는 그토록 자주 우리를 용서하셨으나 우리 잘못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천주께서 베푸신 자비를 일일이 기억도 못합니다. 우리 어찌 우리를 해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겠읍니까?
한번 두번만 용서해주어서는 안됩니다. 성 베드루처럼 그리스도께 묻기를 『주여 나를 거스린 형제를 몇번 용서해줄 것입니까? 일곱번까지 입니까?』하고 어떤 번수를 정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루에게 하신대로 일곱번씩 70번을 곱하여 용서할 용의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마치 남을 거스리듯 그만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함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실천할 용서의 첫 성질이겠읍니다.
다음 첫째와 같은 용서의 둘째 성질은 그것이 무조건(無條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를 박해한 자에 아무 보류와 미소한 미움조차 없이 용서해주신거와 같이 거기 반(半)만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읍니다. 모든 미움, 털끝만한 복수심 분노의 온갖 뿌리를 우리 마음에서 일소해야 합니다. 그런 곳에 천주의 성총이 들게하고 우리를 거스린 자 앞에 우리 생명까지 받칠 마련을 함으로 마침내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구해주게 될 것입니다.
천주께 오늘 이 어렵고 그러나 높은 진리를 깨닫는 빛을 구합시다. 어떤 모양으로서나 고의로서나 고의 아닌 것으로서나 우리를 해친 그들 앞에 이 용서의 덕을 기르기로 노력합시다. 아멘.
柳 프레데릭 神父(淸州교구 北門路본당 주임 메리놀會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