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NC】 46년 전 성모의 「파띠마」 첫 발현날을 기념하는(5월12일 13일) 식전에 임석한 예부성성 장관 라로아나추기경은 약 50만명의 순례자들에게 성모님의 말씀은 실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띠마」는 보속과 기도의 정신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수련자와 수도회의 증가하는 수가 증명하는 바와같이 「파띠마는」 이제 신앙생활의 지도적 중심지가 되었다.
「파띠마」 성지는 복음의 말씀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동 추기경은 그 원래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랐다.
『1917년은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 결정적인 역사적 해였다. 1차 대전 동안 혁명사상이 전세계에 전파되어 새로운 분할전쟁을 가져오는 동안 천주께서는 당신의 영원하신 인자의 상징으로서 성모님의 모성적 심정(성모 성심)을 택하셨음을 우리에게 깨우치시고자 성모님이 이곳에 발현하셨다. 천주님은 「아비」만이 아니시다. 마리아를 통해 천주님은 당신의 무한하신 모성을 보이신다』
마리아의 영성적 모성은 「강생」과 「갈바리아의 희생」의 현의(玄義)로부터 생긴다고 동 추기경은 말했다.
동 추기경이 봉헌한 미사공문은 요안 23세 교황이 지은 미사전송 및 영성체 후송을 제외하고 하자없으신 성모성심 축일(8월2일)과 동일한 것이었다.
교황은 「베니스」 총주교 재임 중 1956년 5월12일 13일 「파띠마」를 방문한 것을 회상하면서 이번 순례자들에게 공의회의 성공을 위해 보속하고 기구하라는 서신을 「레이리아」의 베나치오 주교에게 보내왔다.
5월12일 밤 11시에 촛불행렬이 거행되었고 자정부터 성체가 노천제대 위에 현시되어 성시(聖時) 강론으로 밤을 새웠다.
고해자의 긴 줄이 대성당의 양편 처마밑 복도에 뻗쳐 있었으며 신부들은 각국 말로 고해를 들었다.
13일 아침 6시30분에 봉헌된 총영성체 미사에는 4만5천명이 수십명의 신부에게 영성체했다.
그러는 동안 발현소성당 및 대성당의 보조 제대에서 미사가 계속 봉헌되었다. 10시에 성모상을 발현 소성당에서 노천제대 위에 내어모시고 11시에 라라오나 추기경이 병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 다음 수백명의 병자들을 성체로 강복했다. 성모상이 발현소성당 안으로 들어모실 때 군중은 성가를 부르면서 손수건을 흔들어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