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 예수 그리스도 수난 전날 약속하신 바와 같이 우리들에게 성신을 보내주셨읍니다. 가톨릭 신앙생활의 근원이 되고 있는 연중 예절(年中禮節)은 성탄과 부활과 성신강림을 싸고 돌고 있읍니다. 성탄 때 친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신 천주 성부의 인자하심을 느끼지 않는 이 없고, 부활날 무덤에서 뛰어나와 승리를 거두신 천주 성자의 위엄을 모르는 이 없지만 성신강림날 세상만사를 완성하신 천주 성신의 오묘한 도리를 깨닫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허지만 가톨릭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이루어진 성신의 사업은 위대한 것이니 이날 교회는 넓디넓은 세계를 점령·지배하려고 일어섰고, 세상은 모든 것을 새로이하시는 성신에 끌리어 그리스도의 시대에 들어가기 시작했읍니다.
이 모든 것이 성신의 권능(權能)과 촉진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지니 성신은 교회의 영혼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혼이신 성신의 역할이 창세기(創世記)에 아름답게 실려 있읍니다. 천주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에 진흙을 빚어 인간 모양을 내어, 훌륭히 꾸며 주셨읍니다. 그러나 이 아담의 육체는 한낱 살덩어리요 움직이지 않고 차갑고 묵묵하였읍니다. 콧구멍에 생명의 넋을 불어 넣어 주셨으니 이에 아담은 눈을 뜨고 두루 살피고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읍니다.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교회를 창조하셨읍니다. 땅에서 진흙을 얻으시듯 종도들을 유데아 사회의 하류계급에서 뽑으시고 3년간 이끄시니, 마침내 적절한 교육을 받은 종도의 육체가 생겼읍니다. 이 육체가 교회의 몸이 되었읍니다만 아담의 육체처럼 겁이 많고 나약하고 움직이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성신을 보내신 것입니다. 성신은 종도들이 모여 있는 방을 큰 바람 불듯이 궤뚫어 들어가 그들 위에 불혀 모양으로 내림(來臨)하시니 종도들은 불빛에 비치어 진리에 눈이 뜨이고 사랑에 마음이 불타 그저 앉아 있을 수 없으매 굳게 닫고 있던 문을 박차고 길가에 나갔읍니다. 여기에 교회가 탄생하였으니 성신은 바로 그 영혼인 것입니다.
성신은 생명의 원리로서 교회 안에 언제나 머물러 계십니다. 성신 강림은 일시적인 것이 앙닙니다. 종도들은 한 번 얻었던 웅변(雄辯)을 다시는 잃지 않았고 그 후로는 도무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루고 가르치고 회개시켰으니 잠시간에 교회는 융성 발전하여 로마 제국의 핍박(逼迫)에 굴복치 않고 영구적임을 증명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니, 어떤 사회든지 일어섰다가는 꺼꾸러졌지만 교회만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성신이 영구히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신강림 때 나타난 불혀와 바람은 결코 속 없는 표적이 아니고 실로 그 안에 성신에 슬어 계셨으니 그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사명을 받아 교회의 영혼이 되어 머물러 계십니다. 교회 안에 세상 마칠 때까지 계신다고 그리스도는 명백히 말씀하셨읍니다. 성신이 우리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나타나신 적이 세 번이니 예수 영세하실 때와 「다볼」산에서와 강림 때였었는데 언제나 실제로 내림하셨읍니다.
성신의 내림은 교회와 교우(敎友)를 위대케 합니다. 교회가 위대함은 오로지 성신의 덕분입니다. 그는 다른 인간사회처럼 외적 조직체(外的組織體)를 갖추고 있고 또한 다른 종교와 같이 제사(祭祀)와 신공(神工)이 있으나 그들과는 다를뿐만 아니라 뛰어나고 훌륭합니다. 성신이 머물러서 교회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성신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고 있으니 제대로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신을 모르는 분들도 교회의 유일성(唯一性)이나 영구성(永久性)이나 발전성(發展性)을 본다면 성신의 위대함과 교회의 위대함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교우도 위대하니 그가 성신 안에 살고 성신이 또한 그의 영혼 안에 살고 계시는 까닭입니다. 성신은 교우 영혼의 영혼이요, 성총을 말미암아 양자(兩者)는 결합되어 잇읍니다. 성신은 우리 마음에 계시면서 형언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또 전구(傳球)하시며 진리를 찾으려는 우리 지혜를 밝히시며 선(善)을 행하려는 우리 의지를 굳게 해주십니다. 그러니 성신 받은 교우는 애당초 받지 못한 사람이나 받았다가 잃어버린 사람보다 위대하고, 또 많이 받을수록 위대하니, 더군다나 천주께 위대한 영광에 불리운 우리들은 꼭 위대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성신을 충만히 받아야 할 것이고, 받으려면 열렬히 기구해야 마땅하니, 성 바오로가 천당을 갈망하던 마음으로 『오소서 성신이여』라고 부르짖읍시다.
盧景三 神父(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회·대구 범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