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編小說(단편소설)] 僞悪者(위악자) (下)
발행일1962-11-04 [제349호, 4면]
(나는 잘못 돋아난 독버섯! 죄 많은 사람이야. 허니 남을 도와주어 죄를 갚아야 해. 그런데 내가 위선자라고?
풍선을 둥신 띄어 남에게 착한체 잘난체 보이려고 일부러 꾸며대는 희극배우란 말이지? 흥!)
『아저씨, 꽃 사세요 국화하고 코스모스 아주 이뻐요.』
영양실조를 보여주는 창백한 얼굴이 갈망하는 새카만 눈동자를 반찍이며 바싹 현수 턱 밑으로 다가든다.
찌잉! 가슴에 오는게 있다. 현수 술냄새를 풍기며 흥청거리는게 창백한 얼굴에게 부끄러웠다.
『오냐 그 꽃 다 사주지. 오죽 못낫으면 자식을 이짓을 시킨담.』
자기에게 타이르듯이 배알으며 백원 두장 주고 소녀의 꽃을 보조리 빼았았다. 고맙다고 숙여진 다박머리를 쓸어주며 꽃다발을 도로 소녀가슴에 안겨준다.
『어서 가서 팔어. 어서…』
토끼눈이 되어 말뚝같이 서버린 소녀이 시선을 등뒤에 느끼며 쓴 웃음 머금고 휘청휘청 걸음을 되푼다. 또한번 위선자가 되었군 그래. 풍선을 띄워 뭘 하자는거야? 잘난체 착한체가 뉘집 쓰레기냔 말이다. 허지만 나는 위선자인걸. 아내의 말대로 위선, 위선이 내 생활신조란 말이야. 헛허!)
이번에는 껌을 내민 소년이 현수의 팔소매를 잡는다.
『너 나에게 위선자를 강요하는구나. 좋아 사주구 말구.』
오십원 한장이 더 월급에서 줄었다.
집 방면으로 가는 뻐스에 올랐다.
퇴근후의 뻐스는 초밤까지 공나물 시루가 되기 십상이다.
시각을 다투어 무섭게 질주하는 차안에서 냉기 서린 살과 살이 맞부딪는 틈사리에 끼인 현수는 손잡이 하나에 몸의 중심을 맡기고 매몰찬 인간사를 더듬어 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로 하루 하루를 무사히 살아가는 것일까? 어딜로? 무엇 하먼서…)
살겠다는 발버둥! 울부짖는 아우성! 거리낌 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아귀다툼 하는 인간군상이 원시림의 맹수떼 같이만 느껴져서 고도(高度)의 지능을 자랑하는 대도시 · 기계 문명의 한 복판에 위치하고서도 현수 자기는 무인섬(孤島)에 나둥그러진 <로빈손 크루소>. 외로움과 사람 그리움에 몸부림 치는 날이 잦아졌다.
(내가 탄 것은 뻐스가 아니라 지구덩어리! 어느 지역으로 달려가는 우주열차! 밀도 짙게 줏어 담은 사람들을 송두리 칠 빚나락(奈落)으로 내동댕이 칠 영구차라면!)
방정맞은 공상을 뿌리치고 창밖을 보았다. 밖에도 사람이 많다. 어둠 빡빡이 몰려든 인생 암야! 헌출하게 사지를 뻗은 나목(裸木)들! 그 밑을 오가는 사람 사람 사람의 사태!
젊은 날의 추억인양 누렇게 오그러든 몇개 플라타나스 잎이 바람에 날리어 어디론지 사라진다.
(존재하는 것은 가고야 마는 것. 다들 가고야 마는 것. 산다는 것은 괴롭다는 것. 괴롭다는 것은 사랑에 굶주린 안간힘. 그 안간힘으로 하여 영원히 불행치 말자는 것이 또한 사람의 열망이리아. 무엇 때문에? 이승에서 괴롭고 저승마저 괴롭다면 그 무슨 저주로운 종말인가? 그렇다면 저승의 불행을 영복으로바꾸기 위해 이승 괴로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하여 지금 창밖을 총총히 걸어가는 저네들 영혼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욕심 같아서는 하루 아침에 삼십억을 모조리 천국의 길로 끌어오고 싶었다.
등뒤에서 『큰 일 났다!』는 커다란 소리에 현수의 공상은 깨어졌다. 돌아보니 건너편 걸상에 앉은 오십대 노파가 젖은 눈을 껌벅이며 넋두리를 한다.
『어이구 이를 어째나? 자식애 학비를 댈라고 양석(곡식) 팔아 가져온 돈을 앗아 갔으니…』
체면 없이 울부짖는 노파에게로 차내의 시신이 집중되었다.
현수 톳등이 시큰해진다.
예리한 칼날에 찢겨진 치마를 움키는 노파의 손에는 묵주가 히끗 보였다.
어느 약삭빠른 손이 묵주신공에 열중한 시골노파의 돈주머니를 끊어간 상 싶었다.
『우리 애 학교 다갔네. 세상도 야속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먹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자 현수 가슴 속에서는 두 마음이 암투를 벌린다.
(묵살하느냐? 아내가 꼬집는 이른바 위선자가 또 한번 되느냐? 어쩐담?)
노파의 울음소리가 폭음으로 변하여 귓속을 맴돌다가 온통 그의 머리를 점령하고 만다.
현수는 주섬주섬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월급봉투째 노파의 손에 쥐여주고는 뻐스 멎기가 바쁘게 뛰어내렸다. 밤바람이 차자. 뻐스값이 없다. 꽤 먼 길을 집까지 걸어야 했다. 상기된 얼굴을 들어 별하늘을 우러렀다. 별은 영원한 묵시를 속삭이는 벗!
더구나 남천의 <오리온> 별무리 아래 저 거인을 그려 돌아가기는 <시리우스>는 이 계절의 밤마다 그의 마음창을 두드리는 손님.
(사랑은 말에 있음이 아니요 행동에 있는 것 사랑은 감각이나 감정이 아니요 의지며 전투가 아니겠는가?)
허공에 수심띤 아내 얼굴이 떠오른다.
찔끔 못이 가슴에 박힌다. 조금전의 자기 행동을 변명하듯 아내의 환상에게 속삭인다.
『우리 불행한 사람끼리 따스한 입김 불어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지 않겠소?』
문득 사랑의 아가(雅歌)를 읋어주는 바오로 종도의 목청이 귓가에 울리며 현수 마음에 미소가 솟아온다.
『-사랑이 없을진대 울리는 구리나 소리나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으리까.』 (코린토 전서 13장)
(그렇다! 애덕은 타산이어서는 안될말, 본능화 되어야지.)
집에 드어선 현수는 손을 내미는 아내에게 월급봉투 대신 오늘밤의 일을 샅샅이 이야기하며 머리를 수그렸다.
성큼 일어선 아내는 옷장을 뒤져, 반년전까지 팔다 남은 비단포목들을 챙기며
『할 수 없군. 내일부터 내가 도로 보따리장사를 나서야지.』
심장이 닮도록 아끼며 받들어야 할 남편의 신념에 순응하려는 아내의 수긍에 현수 눈에는 뜨거운 것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