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데아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죄로 얽어매어,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고 바리서이들은 로마당국이 그의 가르침을 단죄(斷罪)하도록 만드는 기회를 장만하려 노력했읍니다.
그래서 무슨 대답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보내기로 햇읍니다. 저들은 묻기를 『세살에게 세납(稅納)함은 옳으냐? 그렇지 않느냐?』고 했읍니다. 이것은 만일 옳다고 하면 그들을 압제하는 로마에 편든다고 해서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하자는 것이요. 만일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당국이 반역자로 몰아 잡아가리라는 것을 알고서 꾸민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못된 마음을 아시고 유데인들이 쓰는 동전 한푼을 보이면서 이렇게 물었읍니다.
『이것은 누구의 초상이며 글이냐?』 그들은 대답하여 『세살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러니 세살의 것은 세살에게 천주의 것은 천주께 바치라』고 하셨읍니다.
당신을 얽으려들던 이 못된 무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주님의 얼마나 훌륭한 지혜의 증명이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이 대답으로 단 그자들을 몰아 쫓으려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행할 불변(不變)의 율(律)을 주신 것입니다.
항상 그리고 어느 경우에서나 사람에게 줄 것은 사람에게 천주께 바칠 것은 천주께 드려야하겠읍니다.
우리 이웃에 할 의무와 천주께 바칠 의무간에 혼돈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천주는 전지(全知)하실뿐 아니라 또한 전의(全義)하사 만사에 완전한 질서를 설정하십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이 천주의 질서는 전도(轉倒)되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本性)은 이성(理性)으로 우리의 창조자로 승인한 천주를 거부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읍니다.
천주께 드릴것은 천주께 사람에게 줄 것은 사람에게 돌린다는 것은 단순한 일같이 들립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라나 이 간단한 율(律)을 거스리고 있는 것이겠읍니까.
천주께서는 어떤 환경에 있어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당신 정한 계획대로 남을 위해 쓰히기를, 그리고 그렇게 쓰힘으로써 동시에 우리는 당신의 뜻을 순종하여 하여금 그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진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극단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읍니다.
가령 한 가정주부로서 종일을 이 성당안에서 기구만 하고 가정에의 할 일을 못한다면, 혹은 학생이 교리공부에 시간을 다쓰고 그 결과 학교공부에 실패한다면 혹은 어떤 사람이 엄재(嚴齋)를 지켜 건강을 해쳤다고 합시다. 이런 행동들이 천주를 기쁘게 할 줄 생각되십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받고자 하시는 것을 바치지 못함이 되며 제 생활의 의무르 ㄹ다해 천주의 명하심을 순종치 않은 것이 되며 그리고 자기 건강을 돌보지 안함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길로 범죄하는 일은 극히 드물겠읍니다만 그보다는 우리가 천주께 그릴 것을 바치지 않기가 일수입니다. 자기 모든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고 자기 보든 시간을 교리공부에만 쓰고 과도한 엄재를 지키는 것이 죄 될 수 있음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성체조배 한번 드릴 줄 모르고 하루 잠시 천주를 감사할 줄도 모르며 교리공부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 및 대소재를 지킬줄 모르는 신자들이 천주의 정하신 바를 훨씬 더 거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람들이 노상 범하는 조그마한 예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예수님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기로 그리고 천주 세우신 완전한 법규에 따라 살기를 항상 찾아가기로 결심합시다.
柳 프레데릭 神父(청주시 북문로본당 주임 · 메리놀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