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16)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 옛날 다위를 追想
발행일1963-06-02 [제377호, 3면]
오후에는 「예루살렘」성 밖에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유서있는 곳을 찾았다. 제일 먼저 닥치는 것이 「압살론」의 탑이다. 멀잖은 옛날 우리 농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질그릇으로된 목이 긴 술병 모양의 탑인데 돌로 쌓올린 것으로서 규모가 꽤 컸었다. 살론이라면 다위왕의 한 아들로서, (제2열왕기 13장부터-18장 참조) 제 동복(同腹) 누이 타말이 제 이복형 암몬한테 유린당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그 형을 죽였고 나중에는 왕권을 탐내어 한 때 부왕을 축출한 후 그 빈첩(嬪妾)들을 농간했다가 반격전이 벌어졌을 때 요압의 창에 찔려 죽은 불효불충불의 한자다.
고대 궁중 사화를 보면 이만한 것쯤 크게 놀라울 일도 아닐지 모르나 더욱 걸작인 것은 그 후 다위의 태도다. 반격전 중 『압살론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물론, 압살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론! 압살론 내 아들! 누가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도록 선심을 썼더라면…』하고 침식을 잃고 수순(數旬)을 통곡했다는 것이다. 구상유취(口尙乳臭)인 소년시절에 벌서 천하무적이라 뽐내던 장사 골리앝을 돌팔매로 거꾸러뜨린 다위 청소년 시절부터 천군만마가 엉클려 난투하는 적진 속에서 뼈가 굵어진 다위, 아무리 자식은 귀여운 것이라지만 부왕인 자기를 죽이려던 패륜 막심한 압살론을 이렇게 울었다는 것은 우습지 않을가? 그러나 다위의 사람됨을 보아 능히 그랬을 것이다.
과연 다위는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도록 무수한 전역을 치루었다. 따라서 무수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그토록 원하던 「에루살렘」 성전 건립을 『네 손에는 피가 많이 묻었으니 성전 건립은 내 다음 왕에게 맡겨라』라고 천주께서 거절하셨던 것이다. 이만큼 다위는 전쟁을 많이 했고 또 패배한 적이 없는 명장이었지만 천주께 대한 신심은 놀라웠으니 그가 사울왕에게 바친 충성을 보고도 알 수 있다.
다위는 청소년 때부터 생명을 내걸고 사울왕을 위해 싸와주었지만 사울은 자기를 시기질투해서 몇 번이나 죽이려는 것을 갖은 고생을 당해가면서 피해 다녔고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그는 왕을 죽이지 않았다. 마침내 「젤보에」산에서 필스때이와 싸우다가 부상을 당코 자절한 사울을 다위는 크게 울었다. 그 이유는 사울은 천주의 그리스도 즉 천주께서 간선하신 왕이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절대 나의 추측이 아니다. 제2열 왕기 1장16절을 보면 알 것이다.
『창에 질려 빈사상태에 있는 사울을 내가 죽였읍니다.』라고 보고한 아말랙인을 처단할 때 『내가 주의 그리스도를 죽였읍니다』라고 『네가 감히 말하느냐』한 말을 보고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위가 사울을 거역하지 않은 것은 사울이 왕이여서라기보다 천주께서 간선하신 자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의 생활은 천주 중심이었다. 그는 미희 벧사베 때문에 충복(忠僕)인 우리 아를 죽인 따위의 흉악무도한 짓도 했지만 즉시 통회하고 겸손히 눈물을 흘릴 줄로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