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70「미리」영화 「시네라마」 등 기술은 끊임 없이 향상하고 영화의 영향은 한없이 증가하고 있다. 많은 가톨릭신자도 이 강대한 표현수단의 발전에 힘을 쓰고 있고 「벤허」 「十戒」 「王中王」 「바라바」 등 거대한 영화가 사회적 종교문제에 관심을 두고 일반으로 그것을 존경을 가지고 취급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교훈을 주고 참된 즐거움을 주는 건전한 영화가 있는 반면에 얼마나 많은 저속하고 해로운 작품이 있는 것일까? 사실 추하고 비윤리적인 것이 너무나 많다. 여기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할까. 참신하고 때묻지 아니한 새 바람을 영화에 불어넣어야 하겠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영화가 가톨릭 신자 특히 가톨릭학교 가톨릭 가정의 부모에게 중대한 의무를 지워준다고 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오 11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영화관에서 청소년의 영혼에 미치는 파괴작용 또 종종 볼 수 있는 그들의 순진성의 사실을 생각할 때 예수께서 작은 자를 타락시키고 악화시키는 자에게 대하여 발하신 무서운 선언을 상기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 몇 가지 반성이 요망된다.
①덮어놓고 영화구경을 가고 더욱 자녀들에게 아무 것이나 보도록 버려두는 것은 결코 _해야 한다. 영화관에 _어가기 전에 그 영화의 도덕적 가치를 조사하_를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②오늘의 영화는 숱한 오락 심심풀이의 기회만이 아니고 종종 사상 선전의 수단이 되어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여기에도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숙고와 반성이 있어야겠다. 가족 동반으로 갈 때는 자녀들을 도덕적으로 바른 감상으로 인도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_가톨릭신자는 『__는 아니된다.』 딱지가 E급(가톨릭시보 영화소개) 속하는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아니한 단호한 결심을 가질 것을 양심상의 중대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종_의 작품은 예욍벗이 만인에게 건전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규칙을 무시하고 『나는 괜찮다』하는 경우는 스스로 즐거이__ 위협에 목을 던지는 여름밤에 불을 좋와하여 몸을 태우는 벌레와 같다해도 좋고 그것은 남에게 악한 표양을 주는 것이외 또 거기 가는 것은 요금을 지불하므로 해로운 영화 제작을 조장하는데 협력하는 것이 된다.
이와 거의 같은 정도로 위험하지는 아니하나 『주의를 요한다』고 표시된 D급에 속하는 것도 대부분의 어른에게 해롭다. 따라서 진지한 신자라면 중대한 이유 없이 그것을 보와도 아니된다.
④은 영화에 대한 가톨릭 신자의 태도는 적극적이라야 한다. 고도의 도덕적 가치와 기술을 가지는 영화의 제작에 소비된 직업적인 노력이 더 잘 효과를 보도록 지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오 11세의 영화에 관한 회칙이 말하는 바와같이 예술·학문 인간적 기술 상업은 이 모두 천주의 선물이기 때문에 천주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것을 사제적인 방법으로써 그리스도의 영적 세력의 확대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시급한 의무이다.
⑤가톨릭「악숀」은 이러한 지시를 엄히 지키도록 남에게 널리 선전해서 충분한 효과를 거두도록 힘쓰는 사람들의 앞장을 서야한다. 영화의 제작자 기업가 극작가 배우 성우인 가톨릭신자의 수가 많다. 그들의 행동이 항상 그 신앙과 이상에 일치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유감이 없도록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자각과 양심과 그 직업을 조화시키도록 하라고 어떤 나라에서는 교회 당국이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으로란 연맹을 만들어서 자연과 그리스도교적 도덕의 표준을 부흥하고저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의 영업에 방해를 주고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빙자하고 오락이 가지는 빛나는 이상과 원리와 그 사업을 퇴폐시키는 위험에서 영화를 구하고저 하였다.
신자들은 이 권고를 따랐다. 그리하여 가톨릭도덕의 규율 혹 바른 생활표준에 배반하는 영화는 일체 이것을 관람하지 아닐 것을 해마다 서약한다. 우리가 영세허원서약 레지오 마리에의 충성을 해마다 새롭게하듯 이런 서약을 새롭게하는 것도 뜻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위의 사정을 매우 중요하고 절박한 현실 문제라고 확신하고 특히 다섯가지 규칙을 지키기를 요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