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流(여류) 政治人(정치인) 루스 女史(여사)의 告白(고백)
政治人으로서 追窮한 眞正한 現實
改宗 動機를 解明
발행일1963-06-02 [제377호, 4면]
「타임」지 편집자 헨리.R.루스씨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한 작가(극작가)로서 또는 정치인으로서의 글라라.부트.루스 여사의 명성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가 1946년 감리교엥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때 웬만한 사람들의 입엔 오르내렸었다. 4년 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를 부라질 대사로 떠밀어 보내다싶이 했었는데 그것은 차라리 그에게 은둔자의 생활같은 조용한 시간을 준 것이었다. 미국회에서는 정치 생활의 실질적인 종식으로 정계(政界)의 한 모퉁이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타임」지 40주년 축하연에 나타나서 안주인의 솜씨를 보여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은 퍼지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결코 정계에서부터 얻은 것은 아니다. 1937년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그의 「힛트」작 「여성」을 내놓기까지 그는 먼저 작가로서의 수업을 쌓았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38년 39년 연달아 「힛트」판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 「죄과의 주변(周邊)」같은 것은 반 「나치즘」을 다룬 흔한 그것이었지만 극작으로서는 이것만이 성공했었다.
그는 처음 신문사 전속작가 그리고 편집자로부터 시작하여 독립적인 작가의 위에 섯다가 1940년 다시 「져날리즘」으로 복귀하여 「타임」 및 「리이프」지에 집필해갔다.
1942년 「컨네티커트」 제4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하고 1944년 같은 구에서 재선되었다. 그의 개종이 알려진 것은 1946년이다. 정계에 발들인 후였는지라 사람들은 별 억측을 달았지만, 그는 현재 「뉴욕」대교구 보좌주교이며 그 당시 몬시뇰이던 풀톤J.쉰주교로부터 교리를 배우고 영세받았다.
개종한 후 그는 선거전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정치보다 신앙을 몸에 배이도록 간직하고자 한다고 했었다.
그래도 왜 개종했는가 그 자신의 해명은 단순했지만 그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대단했다. 그 중 제일 그럴뜻하게 그의 개종 동기를 설명한 것은 그의 외딸 안클레어양을 교통사고로 죽인 후 흩어진 심경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실한 감리교인인 그가 그런 동기로 개종했을리 없다. 1947년 루스여사는 「막콜스」지에 3편으로 나누어 고백하는 글을 썼다. 그 제목은 『진정(眞正)한 이성(理性)』이라고 달았다. 『예수·그리스도 그 자신이 진정한 이성이다』 이렇게 분명한 말을 여러번 쓰고 있었다. 그는 작가에서 정치로 넘어가 개종하면서부터는 이렇게 사색(思索)에 잠겨들었다.
그의 연륜은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글을 쓰기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를 주(駐) 이태리대사로 임명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류대사였다. 그는 5년간 가장 무난히 원만히 중임을 수행해갔다. 1959년에는 다시 부라질 대사로 전임했다.
민주당에서 쏟아져나오는 그 개인에 대한 비난 사실 그런 것은 그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키지 못했다.
그는 명성을 뒤딸아다닌 사람이 아니다. 정치인이 자칫하면 범하기 쉬운 명성의 희생물이 된 적은 없었다. 깊은 신앙에서 펴낼 수 있는 「비죤」을 가지고서 정계에 나서 가톨릭의 모범이며 자랑삼을 미국인으로 기억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