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 23世(세) 畧曆(약력)
발행일1963-06-09 [제378호, 3면]
▲1881.11.25 소농가 죠반니 바리스타 롱까르리와 그의 처 마리아나 사이에 13남매의 셋째 아들로서 북부 이타리 「베르가모」교구 「소토 일몬테」서 탄새이
▲1904.8.10 「로마」, 「몬테 산토」의 「산타 마리아」교회에서 사제 서품
▲1905.1.31 쟈코모 라디니-테데치 주교의 비서로서 「베르가모」에 도라와 교구 신학교의 교수를 겸하여 10년간 속근.
▲1915-1918 이타리 육군 의무대에서 상사로서 군대복무, 「베르가모」에서 종군 사제(소위).
▲1921.3.12 베네딕트 15세애게서 이타리 신앙흥포회장 피명.
「」1921.5.7 비오 11세에게서 고등성직자(몬시뇰)로 승진.
▲1925.3.3 「아에로풀리스」의 명의대주교 사함(賜啣).
▲1925.3.19 주불가리아 교황 순찰사 피명.
▲1934.11.30 「메멤부리아」의 명의대주교로 전임 토이기 및 희랍 주제 교황사절겸 「이스탄불」의 라띤교구장 피명.
▲1944.12.22 비오 12세 교황에게서 주불 교황대사로 피명.
▲1953.1.12 비오 12세 교황에게서 추기경 피명.
▲1953.1.15 「베니스」 총주교로 피명.
▲1958.10.28 추기경 봉쇄선거에서 제11차 투표로 최고 통치자 교황으로 피선.
▲1958.11.4 성 베드루 대성전에서 장엄히 대관.
▲1958.11.17 1944년 말리오네 추기경 서거 이래 공석이던 국무성성 장관으로 따르디니 추기경을 임명.
▲1958.12.23 최초의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모든 선의의 인간에게 세계 평화를 위한 노력에 참가를 촉구.
▲1959.1.25 1869-1870년 제1차 바티깐 공의회 이래 처음으로 공의회 소집을 예고.
▲1959.2.22 영화·라디오·텔레비죤 교황직속 위원회를 규정하여 성청의 상설 기관으로 하는 「모드 뿌로뿌리오」(보니 빠스또레스) 반포.
▲1959.3.28 세계평화를 재호소하고 발칸 제국민의 친선을 제안하는 최초의 부활절 「메시지」.
▲1959.4. 이타리 프란치스칸 「세체」의 갸오로 성인(1613-70) 및 갈멜애덕회의 창립자 「마스」의 베드루나의 요아키나 성녀의 시성식 집전.
▲1959.6.27 프랑스의 드.골 내통령을 단독 얄현으로 접견.
▲1959.6.29 갈려간 크리스찬ㄴ들에게 「로마」와 재일치를 호소하는 최초의 회칙 「아드 뻬뜨리 까떼드람」 반포.
▲1959.8.1 재속사제의 주보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안 비안네 성인 백주년을 기념하는 회칙 「사체르도띠 노스뜨리 뿌리모르디아」 반포
▲1959.11.16 추기원에 최초로 임명된 스코드란드인을 포함한 8위 추기경 임명
▲1959.11.28 모든 전교국가에서 본방인 성직자와 교계 발전을 최고 목표로 하라는 회칙 「뿌리쳅스 빠스또룸」 반포
▲1959.12.6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단독 알현 접견
▲1960.3.3 추기원에 최초로 승진하는 일본인 필립핀인 흑인을 포함한 7위 추기경 임명
▲1960.4.24 아동 청년 보호단체 세계 연맹(WUOPCY) 참석대표들의 알현에서 UN의 아동 권리 선언을 칭찬
▲1960.5.26 자기 고향의 주교(1625-97) 바라ㅡ비고 성인에게 시성.
▲1960.6.5 「모뚜·뿌로뿌리오」(스빼르노 데이누뚜)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준비위원회를 설치. 동시에 그리스도교도 재일치 사무국 설립
▲1960.6.12 스페인 귀족주교 후안데 리베라(1532-1611) 성인을 시성
▲1960.7.25 미사 집전 성무일도 염송 첨례 지킴에 관하여 1961년 1월1일부터 발효할 변경을 예고하는 「모뚜·뿌로뿌리오」 발령.
▲1960.10. 보혈도문을 첨가하는 예부성성의 특령을 재가
▲1960.11.23 라띤.아메리카 사회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소집된 제1차 범남미 마리아 대회에서 「메시지」.
▲1960.11.23 영국의 맥미란수상·외상·내상 및 서「베르린」의 부탄트 시장을 특별 알현으로 접견.
▲1960.12.2 「칸타베리」대주교 제오프레이 프란씨스 핏셔박사에게 한시간의 장시간 알현을 허락. 영국 교회와 교황 사이에 4백년 이래 최초의 개인적 상봉.
▲1960.12. 19위 신인주교 중 17위가 본방인 성직자인 베트남 새 교계의 설정.
▲1961.1. 6개 대교구 및 12개 교구의 교계를 인도네시아에 설정.
▲1961.1.26 구라파 국회 위원대회의 대표들에게의 담화에서 국가 사이의 경제적 합작을 칭찬.
▲1961.5.5 영국의 에리사베스 2세 여왕 및 에담버러 공작 필립공을 특별 알현으로 접견. 영국의 재위 여왕의 최초의 바티깐 방문.
▲1961.5.11 1922년에 승천한 이타리 수녀 보스까르딘 성녀에게 시성.
▲1961.5.30 체코스로바키아 「푸라구」의 베란대주교의 사제서품 50주년을 축하하고 공산정권에 의한 동 주교의 투옥을 슬퍼하는 서한 발송.
▲1961.6.14 교회의 사회 교훈발전에 대한 역사적 공헌으로서 찬양된 2만자의 사회회칙 「마떼르 엩 마지스뜨라」의 발표.
▲1962.9.10 전세계를 향한 「라디오 메시지」에서 폭력보다 이성(理性)에 입각한 정의와 평화를 강력히 호소.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가 교황이 『상식을 말하고 있다』라고 전례 없이 평론하고 교황의 호소를 『좋은 징조』라고 일컬었음.
▲1961.9.20 쿠바에 종교자유가 없음과 카스트로 정권의 사제 추방을 슬퍼함.
▲1961.10.21 가정에 있는 병자에게의 봉성체 규정을 간소화하는 검사성성령을 재가
▲1961.11.6 아프리카에 대한 매일 방송을 위한 「바티깐 라디오」 중계 방송국 낙성.
▲1961.11.11 성좌 수위권의 탁월한 수호자 대 레오 교황의 업적을 찬양하는 회칙 「애떼르나 데이」 반포.
▲1961.11.12 성 치따자매회(성신 수도회)의 창설자 엘레나 궤라 복녀 및 성심의 회색 수녀회의 가라다인 창설자 마리 마르게리트 듀비유 복녀 및 이타리 카푸친회원 베르촉의 이노센트 복자에게 시복.
▲1961.11.15 미국 「프로테스탄」 「에피스코팔」 교회의 아서리히텐버거 총 감독의 방문을 접견.
▲1961.12.8 교황직속 성악(聖樂) 연구원에게 보내는 서한으로 「라띤」어가 장엄전례의 언어로 지속되어야 함을 주장.
▲1961.12.25 후마네 살루띠스 교황령으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소집을 예고하고 그 의정을 약설(略說).
▲1962.2.19 10위 추기경을 새로 임명 추기원을 32개국을 대표하는 87위로 구성.
▲1962.2.22 교회의 공용어로서 라띤어의 수위권과 신학교에서 라띤어의 필수 사용을 재확인하는 교황령.
▲1962.3.20 제1차 국제 선교사대회(프랑스 리용)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선교사들은 정치적인 유대를 떠나 교회의 목적만을 완수하라고 경고.
▲1962.4.9 영국 「사우스와크」의 성공회 주교 머빈 스토크우드 박사를 단독 알현으로 접견.
▲1962.5.6 인종간 정의의 주보로 오랫동안 승인된 17세기 반흑(半黑) 페루인 평수사 포레스의 말징성인에게 시성.
▲1962.5.22 희랍 「볼로소」의 「올토독스」 메트로폴리탄 다마스키노소를 30분간 단독 알현으로 접견.
▲1962.6.26 「프로테스탄」 「에피스코팔」 교회 안의 앙글로-가톨릭파인 아메리카교회 연맹의 행정장 「뉴욕」의 알버트 J 드 보아카논에게 알현을 허락.
▲1962.7.1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위한 유효한 준비로서 보속할 것을 가톨릭 신자들에게 촉구하는 회칙 「빼니뗄시움 아세레」 반포.
▲1962.7.17 「스트라부르구」에 소집된 제49차 프랑스 사회주간에게 보내는 특별 「메시지」에서 구라파 연합 외 이념을 찬성하고 이 『탁월하게 평화적인 사업』의 전선에 설것을 가톨릭 신자들에게 촉구
▲1962.8.6 피난민에 대한 물질적 및 정신적 원조에 있어 개인적 및 단체적 연락을 호소. 타국에서 새 가정을 구하는 사람들의 생활 향상에 관한 교회의 관심을 다룬 비오 12세 교황령 「액술·파밀리아」 10주년의 특별기념식에서.
▲1962.8.8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소집된 국제 가톨릭 단체회의(CICO)의 총회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국가 대 국가로만이 아니라 대륙 대 대륙으로 가톨릭 운동의 보다 광범한 연락을 호소.
▲1962.9.5 교황선거를 위한 추기경의 봉쇄선거에 관한 규정의 변경을 지시하는 「모뚜·뿌로뿌리오」 발령.
▲1962.9.7 미국 부통령 린든 B.죤손씨에게 40분간 단독 알현을 허락.
▲1962.10.4 중부 이타리 「로레또」의 성모성지 및 「아씨지」의 프란치스꼬 성인의 유적에서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성공을 빌기 위한 4백「마일」의 장거리 기차여행. 연도의 정거장마다 환호한 군중의 수가 약 2백만. 「로레또」에 참배한 재임 교황은 1백년 이래 처음.
▲1962.10.11 2천6백명의 공의회의 교부들이 출석한 가운데 성 베드루 대성전에서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정식 개막. 동 공의회의 목표는 『진리와 사랑과 영원한 평화로서』 모든 인류의 당결을 지향한 『길을 다짐』.
▲1962.10.13 바티깐공의회에 출석한 39명의 「프로테스탄」과 동방교회의 참관대의원을 특별 알현으로 접견.
▲1962.10.15 바티깐공의회의 참관대의원인 전세계 감리교회장 「피라델피아」의 감리교 감독 프레드 피이스 코손박사를 단독 알현으로 접견.
▲1962.10.25 바티깐방송국을 통한 방송으로 모든 국가 원수들이 평화유지를 위해 또 그 목적을 위한 협상 계속에 전력을 다하라는 호소로써 큐바의 위기를 암시. 소련이 큐바에 설비한 핵유도탄 기지를 철폐하기까지 미국이 해상봉쇄를 가한 뒤에 이 호소가 있었음
▲1962.10.31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의 바티깐관 기지 개토(開土)식을 기념하는 「메시지」에서 동 박람회의 성공을 위한 축사를 전함.
▲1962.11.13 미사의 「까논」에 성모축일과 같이 성요셉의 이름 삽입을 명령. 이 통고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제18차 회의에서 행해짐.
▲1962.11.19 28명의 일본인 불교 승려들의 알현을 받음. 『불교도와 가톨릭 쌍방은 천주를 높이고 인류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라고 말하심.
▲1962.11.24 공산 폴란드의 내상 제르지 차베이스키의 단독 알현을 허락.
▲1962.11.28 병환-빈혈과 위 장애로 진단됨-관례적인 주중(週中) 단체 알현을 중지.
▲1962.12.2 병환 후 처음으로 거실(居室)의 창에 나타나 성 베드루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강복. 12월7일에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예고없이 방문하여 굉장한 환호의 인사를 받으심.
▲1962.12.8 바티깐공의회의 제1차 총회의 폐회식을 거행.
▲1962.12.9 성체수도회의 프랑스인 창립자 베드루 유리안 에이마리 및 두 이타리인 카푸친수사 「캄포롯소」의 프란시스 마리아 크로에세 성인 및 서바이트 사사제 안토니 마리아 풋치 성인에게 시성.
▲1962.12.23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자연법을 기초로 한 국제법의 존중이 평화 유지를 위해 필요함을 선언.
▲1963.1.21 가톨릭종도회의 창립자 원선시오 팔로티 성인에게 시성.
▲1963.2.8 영국 감리교총회장 레스리 대이비손 목사의 방문을 받으심.
▲1963.2.11 「우크라이나」예절 「루우」의 요셉 슬리피이대주교와 장시간 단독 면담. 공산당 감옥에서 18년만에 석방되어 「로마」에 도착한 71세의 교회수장으로서 가톨릭교회의 『가장 위대한 살아 있는 순교자』로서 유명함.
▲1963.3.1 「발잔」국제기금의 1963년 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됨.
▲1963.3.7 소련수상 후루시초프의 사위 무신론자 알레세이-. 아주베이의 단독 알현을 허락. 교황을 발잔상 수상자로 공식으로 지명하는 예식이 바티깐도서관에서 마친다음에 허락된 알현.
▲1963.3.14 과학자 및 사회학자에게 하신 담화에서 세계에서 기아를 없애기 위한 노력에 서로 연락할 것을 촉구. (UN의 FAO가 「로마」에서 주최한 기아해방의 인권 회합의 기회에서)
▲1963.3.17 미국 애덕회의 창립자 애리자베스 안배일리 시튼 도모(道母)의 최초의 공식 공경예식에 참가. 시튼 도모는 최초로 시복된 미국시민.
▲1963.3.29 교황직속 교회법 수정위원회 창립을 발표.
▲1963.4.10 2만2천자의 역사적 평화회칙 「빠쳄·인·떼리스」 반포. 가톨릭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 향한 최초의 교황회칙. 동 회칙의 찬양에 공산 세계와 자유 세계 쌍방의 해설가가 함께 참가하는 전례가 없는 세계적 반응을 일으킴.
▲1963.4.18 가톨릭이 주최한 아동권리 세게 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가톨릭은 『오늘날 1959년 UN에서 채택한 아동권리선언의 원칙을 각국의 입법 제도에 구체화하는 임무가 있다』라고 선언.
▲1963.5.7 제2차로 중태에 빠지셨다가 회복.
▲1963.5.10 다수의 정치가·과학자·고위 성직자가 모인 바티깐 식전에서 「발잔」평화상을 받으심.
▲1963.5.14 「로마·퀴리날」궁으로 이타리대통령 안토니오세니에게 전례없는 방문.
▲1963.5.14 「보스톤」대주교 쿠싱추기경에게 보내신 서한에서 라띤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 가톨릭의 후덕을 칭찬.
▲1963.5.14 스라브인의 사도 시릴 성인과 메토디우스성인의 「모라비아」 토착 1천1백년을 기념하는 교황 서한에 서명
▲1963.5.21 「허약」 때문에 성신강림 축일까지 일체의 단독 알현을 정지.
▲1963.5.26 내부 출혈 때문에 수혈하셨다는 통지에 뒤따라 전세계의 가톨릭이 교황의 쾌차를 위해 기도. (이상 RNS 특신)
▲1963.5.31 교황성하의 중태와 회복가망이 없음이 발표. 종부 성사 받으심.
▲1963.6.4 상오 3시49분 서거(한국시간). 동일새벽(현지시간 3일밤) 수의를 입히심. 동일 하오(현지시간 4일) 유해를 베드루 대성당에 안치. 전세계 추기경 교황청은 전세계 교회에 「레귀엠」을 지낼 것을 명령(이상 AP·로이타 同和通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