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17) "철렁철렁" 맑은 「실로에」 우물
客窓의 비도 웬지 貴치 않아
발행일1963-06-09 [제378호, 5면]
「베들렘」에서 팔리스띤들과 싸울 때 날씨는 몹시 덥고 피로해 목이말라 탈 지경이었다. 『베틀렘 우물의 시원한 물을 한 그릇 마셨으면…』 하는 말을 무심코 했을 때 옆에 있던 세 명의 군졸이 생명을 내걸고 혈로(血路)를 타개해서 왕의 소원대로 물을 떠다 바쳤을 때 『이는 피의 대가니 내 어찌 마시리오』하고 그 물을 쏟아 천주께 제헌했다는 것이다. 이만큼 그는 자아희생(自我犧牲)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상(上)을 섬길 줄 아는 점에서나 부하를 아낄 줄 아는 점에서나 자아희생을 할 줄 아는 점에서 보아 다위는 그 유덕(遺德)이 천추(千秋)에 빛날 우리 이순신 장군 충무공과 통하는 일면이 있지 않는가?
무릇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할수록 그 지위와 책임에 맞갖은 의무를 다하려면 자아희생이 더욱 크게 요구되는 법이다. 이 요구도 말로만 충족시킬 것이 아니요 입으로만 떠벌릴 것이 아니라 실행으로써 생활로써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주위와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고!
다위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더 있지만 이 정도로 끝인다. 우리는 거기서 떠나 「실로에」 우물에 이르렀다. 요왕복음 9장11절에 기록된대로 예수께서 태생소경눈에 춤으로 만드신 진흙을 바르사고 이(실로에 우물) 우물에 가서 씻으라 하시메 태생소경이 그 말씀대로 해서 눈을 뜬 곳이다. 맑은 물이 철렁철렁 흐르고 있다.
「엘리세」의 우물과 함께 이곳에 와서는 처음보는 시원한 물이다. 여기서 위에 말한 요왕복음 9장과 10장을 읽고 묵상했다. 서운한 것은 이곳을 회회교(回回敎)서 점령하고 그들의 당(堂)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실로에」 우물을 떠나 수난 전날 베드루 그 종도가 주(主)를 세 번 배반하던 가이파의 집뜰로 갔다. 여기에는 소규모(小規模)의 가톨릭 경당(敬堂)이 아담하게 건립되어 있다. 가이파의 집은 성 안에 있었을 것이니 이곳이 아니라고 줒아하는 사람도 있다 한다. 여하간 최근에 돌층대를 발견했다는데 그 솜씨는 로마시대의 것이라 한다. 고색이 창연한 돌움(石室)과 돌그릇(石器)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조용하여 이만한 정원쯤 아무라도 하나 가졌으면 싶다. 「체드론·실로·히논」 셋 골짝을 합해서 「제핸나」라 불렀다 한다. 여기선 날씨도 궂고 모두 꾸물거린 탓으로 하첼다마(유다스가 예수를 팔고 양심의 가책에 못이겨 던지고 간 삼십은전으로 옹기굽는 밭을 사서 나그네를 장사지내던 곳)까지는 못 가고 「빠뜨리알카·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다지 호화롭지는 못해도 꾀 넓은 객실인데 보좌주교님이 두 분이나 옹위하고 계셨다. 빗방울은 자꾸 그 세(勢)를 가했으나 다행이 우리가 머무는 「노바·까싸」는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달믐박질쳐 돌아왔다. 바람소리는 꾀 요란하고 빗방울은 창을 친다. 객지에서 그리 좋은 기분으 ㄴ아니다.
더우기 제 시메온 신부님은 고단하다 하시면서 저녁도 안 자시고 누워버리신다. 이 분은 구라파 일주를 함께 할 때 나 때문에 무척 고생하신 분이다. 나도 이 기회에 그 분에게 도움이 되여 드리겠다는 마음은 간절하나 길도 낯선대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수수무책(袖手無策)으로 쩔ㅉ러매야 할 판에 다행히 빅토리오.윤신부님이 옆방에 계셔 그의 도움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