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5) 禁斷(금단)의 世界(세계) ③
발행일1963-06-09 [제378호, 6면]
여름 방학으로 접어든 며칠 후, 나는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의 친정인 충남 S군으로 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오빠인 외숙부가 중환이라 하였으나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이고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일시도피행을 하는 것이었다. 전에도 가끔 아버지와 다툰 뒤에 어머니는 시골에 가서 열흘이고 보름이고 있다가 돌아왔다. 어머니는 혼자 가겠다는걸 식물채집도 할겸 따라가겠다고 졸랐다.
『아버지한테 물어봐라-』
어머니는 내 귀에 속삭였다. 데리고 가고픈 표정이었다. 사랑방에 먹글씨를 쓰고 있는 아버지한테 가서 나는 시골에 가겠다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대답을 안했다.
『…건성 놀러가는게 아니고 저는 식물 채집이 목적이야요』
『…뒷동산에 가도 식물 채집은 할 수 있잖냐?』
약간 벗어진 아버지의 머리는 글씨에 집중한채로 대답한다.
『…이번 숙제는 해안지대의 식물채집이니, 꼭 갈 필요가 있어요.』
사실은 해안지대의 식물을 채집하라는 숙제는 없었다. 어머니의 시골이 서해안 가까운 곳이기에 거짓말을 보탰다.
『……』
아버지는 글씨를 보고 가는 고개를 갸웃등 했을뿐, 내 말에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 이상 아버지한테 묻지 않고, 어머니가 있는 안방으로 돌아왔다.
『뭐래시든?』
『가도 좋다나봐-』
『가고 싶거든 가라 그러든?』
『가지 말란 말은 없으니, 가도 좋은 거지 뭐!』
『나종에 야단 맞지 않겠니?』
『나 준비할테야!』
소풍용 포스톤 빽에 옷가지와 일용품과 숙제거리들을 챙겼다. 아버지 앞에 늘 기가 죽어지내는 어머니에게 나는 훨씬 동정이 갔었다. 아버지가 붙들가바 나는 미리 빽을 들고 한걸음 먼저 집을 나와 합승 타는 거리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머니와 함께 합승을 탔을 때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어쩐지 나는 아버지 옆에서는 무언지 중압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왜 어머니를 구박해?』
기차칸에서 나는 물었다.
『어머니가 못났다고 그러나봐!』
나는 어머니의 까마작한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보면 어딘지 촌티가 가시지 않은 용모이다.
『어머니가 왜 못났서 더 못난 사람도 쌨던데?』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변호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함께 보호하고 싶었다.
나는 내 얼굴이 남보다 훤하고 잘생긴 것을 알고 있다. 그 어머니가 못만났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미운 축으로 몰기는 싫었다.
『어머니는 왜 얼굴이 까말까 난 흰데?』
내 가슴에 아픈데를 스스로 찔러물었다.
『… 시골서 오래 있어서 그런가봐!』
『………』
나는 그 변명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머니도 처녀 때는 너모양 살결이 희었다.』
『………』
어머니의 말을 더 기대했으나 그 뿐이었다.
『처녀 때 하얗든 얼굴이 왜 까매졌어?』
『…그건…저어 속이 상해서 이렇게 됐나보다 훗훗…』
어색한 웃음으로 말꼬리를 맺는 어머니를 나는 아직도 말끔이 바라보았다.
『아버지때메?』
『음…』
어머니의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나는 속상하고 고민이 있어도 얼굴이 어머니같이 까매지지 않던데?』
『너희들은 어리니까 그렇지!』
나는 어머니 말을 신용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야워지고 기미가 생기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지만 피부의 색소가 변한다는 것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는 이 기차칸에서 내 출생에 관한 의혹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와는 연애 결혼이였수?』
『연애결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너의 아버지는 옛날에 우리 집에 하숙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단다. 그때 어머니 집은 부자로 살았거든!』
나의 귀에 새로운 사실이며 전날의 아버지의 위치에 흥미도 갔었지만 그보다는 내 출생의 실마리를 캐내는데 관심이 갔다. 나는 조심스러히 또 물었다.
『오빠는 어서 낫수?』
『어머니 친정 시골에서 낫지』
『그때도 아버지와의 사이가 이랬수?』
『그 때는 지금같지 않았다. …어머니 집의 재산이 없어진 뒤로부터 너의 아버지와 나 사이가 좀 나빠졌다.』
『아버지는 어머니하고 결혼하지 않고 돈하고 결혼했군!』
『쉬이 아버지나 남한테 그런말 하지마라 내가 괘니 그런 얘기를 했구나…』
『난 어머니 편이니까 다 얘기하세요』
『이젠 나순이 너도 컸으니 얘긴데 어머니는 얼마나 속을 썩히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돈 있을 때는 어머니를 위하시더니 돈 떨어지자 구박하지 뭐니…』
『아버지는 비굴하군?』
『제발 남한테는 그런말 하지마라!』
어머니는 큰 비밀을 얘기했다는듯이 목소리를 낮춘다.
『사이다나 먹을테니?』
마침 강생회 판매원이 우리 앞을 지나자 어머니는 그를 불렀다.
사이다를 사고, 그밖에도 먹고픈걸 집으라고 한다. 나는 수르매를 한마리 집으면서, (다른건 몰라도 어머니만은 진정 내 어머닐꺼야!)하고 스스로 타일렀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 친어머니 아닌 것을 의심할 틈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미심한 것은 우리 두 사람간의 피부색이었다.
『오빠를 낳고는 누구를 낳았수?』
나는 될 수 있는대로 예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구는 딸 하나 낳았는데 홍역하다 죽었다…… 너의 언니다』
『…나는 어서 낳았수?』
『너는 서울이다.』
『서울 어느 동리 어느 집에서?』
『…병원에서 낳다』
『어느 병원?』
나는 어머니의 표정을 주시했다.
『서대문에 있는 적십자 병원이다.』
『몇호실?』
연거푸 질문의 화살을 던졌다.
『이십육호실이었다』
『왜, 병원에서 낳았서?』
『…그건… 병원에서 낳는게 안전하기 때문이지…』
말은 순순히 나왔으나 이때 어머니의 얼굴을 스친 그림자가 있는듯이 보인다.
『어머니 몇호실이라고 했지?』
『26호실!』
어머니의 발음은 명확했다.
『한번 적십자병원에 찾아가 볼까봐! 내가 낳은 사실이 어떠한가?』
『해방 직후니까, 그때 모습과는 다른거다! 병실 번호도 달라졌는지 모르지!』
『그래도 어머니 그 방 보며 아시겠지』
『알구 말구』
『그 방에 커텐이 있었에요?』
『없었다』
『벽은?』
『흰색갈이었다. 누가 갖다 놨는지 사이다 병에 꽃이 있었다.』
『무슨 꽃이었수?』
『목란 같기도 하고 국화 같기도 하고, 노랑 색갈의 꽃이 많았었다.』
『그 꽃은 누가 가져온거유?』
『…글세, 그건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간호부 중에 누가 병에 꽂아논 것 같았다』
나는 바늘끝 같았던 신경을 늦추고 마음과 몸을 내던지고 차안에서 푹 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시골에 도착했을 때 다시 나를 이단시 하는 여러 눈초리에 부딪쳤다.
마을 꼬마들이 오케이 오케이 하고 내 뒤를 딸아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외숙부 집에 드나드는 외가쪽 친척들도 나를 두고 자기네끼리 속삭이는듯한 기미가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