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 예수 그리스도 만민을 천당에 초대하심을 마치 한 부자(富者)가 저녁잔치를 크게 배설(配設)하여 많은 손을 청함과 같다고 하셨읍니다. 이 청을 승락하면 영생을 얻고 거절하면 영복을 잃고마는 것입니다. 이 잔치에는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으며 절차 시기(時期)가 있으니 하나는 초대의 시기며 둘은 거절의 시기며 셋은 복수의 시기며 넷은 처벌의 시기올시다.
▲초대의 시기=잔치 때가 되자 자기 종을 보내어 청한 자들에게 이르되 『모든 것을 다 예비하였으니 오라』고 천주께서 교회를 세워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데아 민족을 부르십니다.
▲거절의 시기=모든 이가 한결같이 핑계하기를 하나는 종에게 이르되 『나 농장을 사서 불가불가 살펴보겠으니 청컨데 너는 나를 용서하라.』하고 또 다른 이는 이르되 『나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니 나를 용서하라.』하고 또 다른 이는 이르되 『나 갓 장가든 고로 가지 못하노라』하면서 모처럼 청하시는 그리스도께 어리석고 가공(可恐)할 핑꼐를 댑니다.
▲복수의 시기=종이 돌아와 그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집주인이 크게 분노하여 그 종에게 말하기를 『바삐옵내 거리와 골목에 나가서 빈궁한 자와 잔약한 자와 소경한 앉은뱅이를 다 이리롸 데려오라』 종이 아뢰되 『주인이여 명하신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남아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가라되 『큰 길과 울타리에 가서 들어오기를 강권하여 하여금 내 집을 채우게 하라』 이리하여 천주께선 먼저 읍내에 있는 유데아 동족 중에서 마테오, 막달레나, 자케오 같은 병신, 죄인들을 부르시고 다음에 큰 길과 울타리 건너 살고 있는 이방인(異邦人)을 초대하심으로써 처음에 초대받았던 유데아인들의 자리를 빼앗았읍니다.
▲처벌의 시기=『너희에게 이르노니 먼저 청하였던 자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처단(處斷)을 내리사 자기들은 간선자(간選者)들을 도리어 거절하십니다.
이 비유는 글자 그대로는 벌써 역사적으로 실현되었읍니다. 글자 뒤에 감추어져 있는 내용은 굽어 보기에는 너무나 깊고 두루 살피기에는 너무나 넓으므로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성총으로써 천당에 이끄시는 천주와 지상애착(地上愛着)이나 자기 욕심 때문에 그를 거절하는 인간 사이에서 빚어지는 끝없는 알력(軋轢)입니다. 우리 쪽에서 이 알력을 잘 조정해야만 구령(救靈)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께 대한 본분이 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욕구(欲求)가 있읍니다. 이 본분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거절할 수 없으며 욕구도 인간 본성에서 우러난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것이니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말이지 저희들이 내세운 거절의 이유가 죄 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정당하다고 허락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 양자(兩者 本分과 欲求)는 별다른 절대성(絶對性)을 지닌 것이 아니요 꼭 같은 절대성을 가진 유일한 절대물(絶對物)이니 하나이신 천주께로부터 나오는 까닭입니다. 천주께서는 이 인간의 필요사(必要事)를 마련하셨고 거룩하게 하셨읍니다.
농장을 샀으니 불가불가 봐야 되겠다는 것은 그가 사회에서 지주(地主(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니 천주께서는 누구에게나 사회적 지위를 마련해 주십니다.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겠다는 것은 일하러 간다는 말이니 천주께서 이마에 땀을 흘려 일하라는 분부를 쫓는다는 뜻뿐입니다. 갓 장가들었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사나이 혼자 있음이 좋지 않다고 여기시어 여인을 마련해 주신 천주를 따른다는 말이니 모두 천주께서 안배(按排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비록 몰락했기는 하나 영광스러웠던 왕가(王家)에서 태어남으로써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거룩케 하셨읍니다. 30년 동안 목수 일에 부지런함으로써 우리의 노동을 거룩케 하셨읍니다. 성 요셉께 순종하시며 성모 마리아께 효도를 다 함으로써 가정을 거룩케 하셨으니 이 모든 것이 천주께로부터 나오고 천주께서 거룩케 하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께 대한 우리의 본분과 우리 자신의 욕구 사이에 알력이 생길 수 없지마는 슬프게도 그런 알력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조정을 잘 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그 알력의 원인과 해결은 지면관계상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그 성서 귀절을 자세히 읽으시면 저절로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盧景三 神父(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회 대구 범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