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 禁斷(금단)의 世界(세계) ④
발행일1963-06-16 [제379호, 4면]
시골서 한 보름 지내는 동안 나에게는 두 가지의 자극이 있었다. 하나는 자연에 대한 감탄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출생에 관한 의혹이 한층 짙어진 점이었다.
어머니의 시골은 서북으로 숲이 울창한 산줄기가 뻗고 동남으로는 평야가 지평선까지 퍼진 고아할한 전망을 가진 곳이었다. 푸른 생명을 안고 있는 넓은 평야는 아름답고 선선했다. 그 위를 지나는 흰 구름짱은 나에게 대화를 건니는 듯이 다정스러웠다. 불룩한 가슴의 중량에 맘껏 대기를 마시겨 나는 발길 내키는대로 산야를 헤맸다.
임자 없는 들꽃을 꺾고 커다란 공작 무늬 나비의 뒤를 쫓기도 했다.
그늘이 짙은 숲속에서 재재거리는 꽁지가 붉은 산새들의 밀어(密語)에도 귀를 기울였다.
어느듯 나는 이끼에 덮인 침침한 연못가에 와 있었다. 못가에는 봉선화꽃닢 비슷한 자주색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꽃에는 이상한 광채가 서리어 있었다. 그리고 잔잔한 연못에는 이따금 소리도 없이 둥근 파문이 그어졌다. 고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표면은 고요하면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생명을 느끼게 하는 그 우중충한 연못이 점점 나에게 공포감을 준다. 나는 급히 연못가를 떠나 밝은 곳으로 뛰어 나왔다. 돌뿌리에 채여 넘어졌을 때 일미터 내 앞에 동아줄만한 굵기의 커다란 뱀이 꿈틀했다. 뱀이 싫은 나는 새파랗게 질리어 고함을 지르며 뛰었다.
햇빛에 안겨있는 밝은 언덕바지까지와서 뒤를 돌아보니 그늘진 숲은 오로지 조용했다.
『핫핫핫…』
나는 커다랗게 웃었다. 내 웃음은 내가 뛰쳐나온 숲속 저편에서 『핫핫핫…』하고 메아리를 친다. 산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물건같이 느껴진다. (이 대자연은 누가 만든 것일까? 정말 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비봉에 등산갔을 때, 김진호가 목에 걸고 있던 까만 묵주생각이 났다. 진호에게 이러한 내 느낌을 편지로 써서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의미의 답이 왔다.
(숲 속의 꽃이나, 뱀들도 다 신의 자애(慈愛)로서 생명을 얻고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이며, 미스 윤은 신의 위댛나 사랑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문전에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김진호의 말을 내 맘속에서 내쫓고 말았다. 그 날 이른 저녁밥을 먹고 황혼의 들판을 산책하다가 집에 돌아오니 눈알이 개구리같이 툭 티어나온 칠촌 아즈머니 벌 된다는 여자가 마당 모퉁이에서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걔가 의심하는 기색은 없던가? 거울에 제 얼굴을 빛어보고는 깨달을텐데?』
『그러지 않아도 자꾸 묻지 뭐야! 차 안에서도 꼬치꼬치 묻는걸 겨우 안심을 시켰어!』
『잘 키워서 서양가서 돈이나 벌어다 주었으면 좋겠군 헷헷…』
개구리 눈 아즈마의 웃음은 야비스러웠다. 나를 보자 개구리 눈은 더 툭 튀어나왔고 어머니는 웃으며 어디갔더랬느냐고 묻는다.
『지금 누구 얘기 했수?』
『으음, 저-기 딴 사람 얘기다…』
어머니는 시침을 땠으나, 나는 「걔」라는 대명사가 다름 아닌 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심도 많지. 제 얘기 했을까바 그러나! 아니지요?』
개구리눈 아즈마는 턱을 불숙 내밀고 어머니의 맞장구를 기다린다.
나는 그 아즈마의 턱도 싫었다.
두드러기 같은 것이 벌겋게 솟아난 뾰죽한 턱은 여우 주둥이같았다.
나는 그날 밤 늦도록 잠을 자지 않고, 어머니와 개구리눈 아즈마의 얘기를 생각했다.
그 이튿날은 아침에 냇가에 나가서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있자니 조그만 돌이 하나 날라와서 내 잔등이를 쳤다. 돌아보니 윗입술까지 흘러내린 누런 콧물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대갈장군인 땅꼬마 하나가 서 있다.
『네가 돌을 던졌니?』
『오케이다! 오케이다! 애! 애!』하고 내뺀다.
『요놈의 자식 오케이가 뭐야!』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쏜살같이 도망치다가 돌아보더니 돌을 하나 집어 또 던진다. 거리가 멀어서 돌은 절반도 못 와서 떨어졌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이번에는 내가 돌을 들어 땅꼬마를 향해 던졌다. 너무 힘껏 던져서 돌은 땅꼬마 머리 위를 넘어 갔다.
『오캐이다! 오캐이다!』
땅 꼬마는 손구락만큼 조그맣게 멀어진 뒤에도 소리를 질렀다.
그날밤 어머니의 숨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잠자리에서 신을 저주했다.
『신은 어째서 나에게 미움으로 대하는가? 출생을 어둡게 하고 나의 성장을 부끄럽게 하는가?』
나는 신의 사랑을 의심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한 사오일 더 있고싶어하는걸 가자고 졸랐다. 시골의 자연은 신비스러웠으나 시골의 인심은 서울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찔렀다.
어머니는 서울 집에 도착하자 시골서 가져온 과일과 야채들을 일부러 아버지 보는데서 끌렀다. 과일을 씻어 쟁반에 담아서 아버지 앞에 갖다놓은 심부름은 내가 했다. 아버지는 힐긋 옆눈으로 걷_ 보았을 뿐 얼핏 손을 대지는 않았다.
『아버지 잡수세요?』
『식물 채집 많이 했냐?』
『네에 굉장히 많이 했어요』
나는 약간 채집한 식물들을 심란하여 내던지고 왔지만 대답은 그렇게 했다.
나는 곧 내 방으로 돌아와서 김진호에게 편지를 썼다.
어쩐지 김진호가 그리웠다. 그는 한번도 나에게 출생에 대한 것을 물은 적이 없었다. 그의 눈만은 아무런 의혹의 그림자가 빛이지 않았다.
며칠 후 우리는 종로의 「케크」점에서 만났다. 그 날은 마침 토요일인데
『내일 XX성당에 나오세요』하며 조그만 주첩판 책을 하나 준다.
표제를 한글로 「교리문답」이라고 쓰여있다.
『나 이런거 싫어!』하며 나는 그의 품에 던져버렸다.
『그러지 말고 한 번 읽어 보아!』
그는 오빠같은 위험을 갖추고 조용히 말한다. 겉으로는 일단 받았지만 속으로는 이까짓거하고 밀어제쳤다.
이튿날 아침은 맑게 개인 하늘이었다.
시간을 보니 9시반 그가 오라는 시간은 열시였다.
나는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교리문답 책을 들추어 보았다. 그 책에서도 나는 나프탈린 냄새같은 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책이니?』
화초에 물을 주러 나왔던 아버지가 보고 묻는다.
『가톨릭의 교리문답이란 책이야요.』
『어디 보자?』
아버지는 몇 장 들추어보더니 마루로 픽 던져버린다.
『그따위 책 읽지 마라!』
나는 마루턱에 엎어져 떨어진 책을 주었다.
『예순지 성당인지 교 믿는 놈 처 놓고 맘 좋은 놈 없더라!』
『아버지가 싫으시면 싫었지 책을 왜 내던지세요?』
『뭐? 그까짓책 내던지면 어때?』
『난 오늘부터 성당에 좀 가볼까 해요』
『미친 수작 마라! 하느님이 어디있고, 신이 다 어디 있니? 이 세상에 믿을건 저 하나뿐이다.』
『누가 아버지보고 가시래요 제가 간댓지요.』
『가지 마라! 못 간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핏대가 섰다.
『애미가 그런데 가라고 시키더냐?』
그는 어머니에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던지며 말한다.
『난 시키지도 안했어요?』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변명했다. 나는 아무말 않고 책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어디 가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덜미에 쫓아온다.
『놀러가!』
『근데 그 책은 왜 들고가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콤파스」를 _게 돌려 집앞 골목을 빠져나왔다.
내 걸음에는 확실히 목표가 있었다. 아버지가 핏대를 올리고 금하기 때문에 나프탈린 냄새는 싫었지만 성당을 향하여 걸어갔다. 무언지 나는 반항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