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召(성소)] (18) 마리아니스트(S·M)
聖主(성주)의 聖母(성모)께의 孝誠(효성) 본받아
階級(계급) 區別(구별)없이 才質(재질)에 따라 奉任(봉임)
발행일1962-11-25 [제352호, 3면]
마리아회(마리아니스트)는 1817년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 주교가 불란서 「볼도」에서 창립하였다.
1839년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그들의 사명을 칭찬하시고 회로 추천하였다. 비오 9세께서 1865년에 그것을 수도단으로 인증하였다가 마침내 1891년 그 회가 다른 수도회와 현저히 다른 특색을 면밀히 조사한 후 네오 13세께서 수도회로서의 정식 인가를 내렸다.
그 훈령(訓令)에 따라 마리아회는 가난 정결 순명의 보통 허원을 말하고 마지막 서원을 할 때 성모께 대한 봉사를 위해 넷째 정주(定住)허원을 하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되는 수도회이다.
회원들은 교황청에서 임명된다. 신부로서의 제한되 임무와 회칙에의해 지정된 임무 이외에 모든 회원들은 재질에 따라 계급의 구별없이 회를 위한 여러가지 일을 하게된다.
사제와 평신도의 힘의 결합으로 창설자는 다른이의 협력 없이 각가지 종류의 일이 예속되어야 할 필요성의 제한을 없이 할려고 노력하였다. 회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모범중 특히 성모께 대한 효성을 본받는데 있다. 그리스도가 성모의 아들로서 그 생명을 받은 것처럼 회원도 성모를 통하여 영적 생명을 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회원들은 한 형제이란 신념을 가지고 그리스도 자신이 성모께 드린 효성을 본받기를 힘쓴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성모의 아들이 되셨으므로 외원의 성모께 대한 효성이란 특히 사람의 구령 포교에 노력하는 데 있다.
회원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가 『너희게 무엇이든지 분부하시는 것을 행하라』를 표어로 하고 각 종교교육사업에 종사하고 국민학교 고등학교 고아원 농업학교 기예학교 직업학교를 경영하고 사정에 따라 사복 포교 피정신공도 지도한다. 형제들은 수도원내 일 · 농사를 짓기 위하여 수공도 한다. 이 회는 1960년 9월 17일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광주의 현 대주교의 초청으로 목포에서 남자기술중고등학교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