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청첩장이야』
『결혼도 좋지만 이러단 살림 동나겠는걸』
그르면서도 월급봉투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을 쪼개서라도 부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구호금이다. 무엇에 대한 기부금이다 하고 학생, 우지, 부인단체 등이 광주리에 기금 목적을 써붙이고 거리나 집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기리의 한 풍경이다.
으젓한 신사 숙녀들이 외면을 하고 지나는가 하면 되려 허절한 차림이나 어린 꼬마들이 몇푼을 마음 속의 정성과 같이 바구니에 집어 넣는다.
어느 성당 주일 애긍이 4혹은 5만원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단돈 50원이 안되는 본당도 있으니 수표뭉치와 함께 1시간을 너머 애긍돈을 정리하는 본당신부와 겨우 50원돈으로 매만지는 신부의 감회는 희(喜)와 한숨으로 표시할 수 있으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김장에다 월동준비니 하고 주머니에 손이 바쁘게 더나들 이 무렵이면 「교무금」으로 이맛살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것이 일수다.
딸의 「피아노」다 「라이카 카메라」를 마음놓고 사면서도 『아니 애들 겨울 옷도 제대로 못사주는데 이것은 내게 과함니다.』 입으로만 『주여 나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니이다』의 신자들은 성당의 붉은 종탑만 쳐다보기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구라파의 신자들은 나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몇시간을 꿍꿍 데며 이마를 맞대고 앉아 생활비의 어느 용도를 절약하면 얼마를 더 교우금으로 바칠 수 있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있다.
어떤 본당의 복사의 이야기다.
『그 사람은 가세(家勢)가 넉넉하던 부친때보다 오히려 교무금을 더 많이 바치고 있어요.』
『식구가 무려 10명인데 말이야 해마다 ○백원씩을 언제나 교무금 통지서가 가면 불과 몇일이면 갖다 냅니다.』
『자기생활수준에 비겨 약 갑절은 더 내거던요』
자기 구령을 위해 가견적(可見的) 보답이 물질적 정성이나 희생없이는 벅찬 본당경영이 제대로 할 수 없음은 불과 몇식구의 가정생활과 비기면 알 수 있다.
평균 1천명이 넘는 신자들의 구령사업을 위해 우리의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영생(永生) 문제를 돌보고 지존(至尊)하신 천주님을 섬기는데…
성당유지 수리비 선교사업 제식(祭式)비 물건 인건(物件 人件)비와 신부생활비 교구운영비 등 이 막중한 성업을 도우려는 한 구호대상자인 70이 넘은 정(丁) 마리아 할머니의 정성은 눈물겹다.
경상북도 학무과의 문정계장이던 아들내외가 불타 죽자 의지할 곳 없이 맡겨진 손자 하나와 손녀 둘을 데리고 대구시 대명동 극빈자수용소에서 죽을 얻어먹으면서, 게다가 화상으로 왼편 손과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의 몸으로 푼푼히 모은 던 50원씩을 언제나 교무금으로 갖다 바친다.
영세한 뒤 지난 10년을 한번도 빼놓치 않고. 부주돈이 없어 은인의 회갑잔치에도 인사를 가지 못했다는 이 할머니 10년을 하루같이 매일미사에 참례하며 남부럽지 않던 생활에서 쫓겨난 그 귀여운 손자들에 사주고 싶은 과자 한푼 두푼 값이 진정코 후세의 억만금의 상(賞)이 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