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19) 마지막 聖路善功(성로선공)하고
市場거리가 된 14處들
발행일1963-06-23 [제380호, 3면]
오늘은 오전 중으로 짐을 꾸려놓고 대기하고 있다가 이스라엘 편에서 들어올 순례자들이 오면 같이 합동으로 주 그리스도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던 길을 따라 성로선공을 하고 이스라엘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넘어올 시간이 지났어도 넘어오지 않기에 우리 일행만 성로선공하러 떠났다. 그곳 수도원에 마련되어 있는 그리 크지 않는 십자가를 한 주교님이 앞서 메고 가시고 우리들은 그 뒤를 따랐다. 제일처(第一處)나 제이처(第二處)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第三處(제삼처)부터는 남의 집 벽 앞도 되고 문 앞도 되고 시장복판도 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번잡도 번잡이거니와 시뻘건 양(羊) 다리를 내어걸고 파는 대도 있고 구수한 요리냄새를 풍기는 곳과도 맞부딪친다. 될 수 있는한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그리 큰 열심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아무래도 환경과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성로신공을 하며 가는 동안 아무도 우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는 것은 벌써 이곳에 여러번 여러번 이런 행사가 있었다는 증좌일 것이다. 성로선공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예수 묻히셨던 곳에 친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짐은 이미 꾸려놓은 집, 점심만 먹고 이스라엘편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욜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선에 와서 차에서 내려 인원수를 점검(点檢)당한 후 걸어서 이스라엘 땅에 들어섰다. 국경선이랬자 집에서 사람이 철거되고 담이 가로막혔을뿐 무슨 철조망을 쳤다든가 무슨 다른 어마어마한 장치를 해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경계선을 넘는 곳에 2·3인의 욜단군인이 앉아있을 뿐 이스라엘 쪽에는 그나마도 보이지 않는다. 한 십분가량 기다리니 이스라엘 쪽에서 우리를 태우려 뻐스가 왔다. 우리는 두 대의 뻐스에 분승하고 「아인카렘」으로 향했다. 도중 「헤브레아」대학에 들렀는데 아직까지 완공되지 않아 그 규모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건설 사업을 보는 것은 남의 나라 일이지만 마음 흐뭇한 일이었다. 한 부인이 나와서 안내를 하는데 도서관에 가서는 새로 발견되었다는 양피지(羊皮紙)에 쓰인 성경 조각들을 제시하면서 오래도록 설명한다. 이스라엘과 성경! 무시 못할 관계이겠지! 운동장 한 어귀에 큼직하니 아주 얕아 수영을 제대로 할상싶지 않는 「풀」이 있는데 동전을 수없이 던져 놓았다. 무슨 까닭일까? 물 속에 재주부리는 곰이 있을 턱도 없고 물개도 보이지않으며 다른 무슨 기념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종의 기부금 모집일까? 기부금 모집이라면 의연금통(義捐金桶)을 마련해 해두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만일 도둑만 덤비지 않는다면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이렇게 공개 방식으로 의연금을 모집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를 일이다. 입만 벌리고 묵묵히 있는 의연금통보다는 물밑에 흔근히 널려 반짝이고 있는 백동(白銅)을 볼 때 『남들이 다 저만큼 애쓰는 사업이니 나도 협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법도 하다. 단 이것도 도둑이 없다는 조건하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만일 도둑이 훔쳐간다면 도둑놈에게 차반해 바치는 격이 아니겠느냐? 이렇고보면 도둑놈은 도둑질한 것만큼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연쇄작용(連鎖作用)으로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