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 聖下(성하), 아우에게 보낸 마지막 私信(사신)
가난한 家族들 보람은 이것뿐 가난한 편지
聖 비오10世 같은 淸貧 「내게도 不足지 않아」
발행일1963-06-23 [제380호, 4면]
요안 23세 성하께서 가족 앞으로 보낸 마지막 사신이 알려졌다. 성청 일간신문 「옷세르바또레·로마노」지는 성하의 서거 후 몇일만에 1961년 12월3일부 선 교황의 아우 사베리오.론깔리에게 부쳤던 줄줄이 감회에 넘친 편지를 실었는데 가난을 자랑삼은 그 위대한 정신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동서한은 가족사이에 돌려 읽게된 것이었다.
깊은 영성(靈性) 그런데서만 펴낼 수 있는 풍부한 「유모어」 이런 것이 여실이 풍겨진 글이다. 『알다싶이 내가 좋아하는 「타이프」를 3년만에야 쳐보는 구나, 오늘은 내 나이 80 고개를 넘기면서 한 번 써보기로 결심한거야. 이 「타이프」는 내 것이란다.』 이렇게 써나갔다.
『나는 아직 이같이 몸은 건강한데 그래 내 나이 60이니 50이 아니고 80이란데 아찔하는구나.』고 하면서 천주님께서는 「브루시꼬」와 「꼴름배라」(이곳은 교황 소년 시절을 살던 집 이름)같은 산골짝 두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地上) 대리자인 교황을 뽑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도 애쓰고 있듯이 겸손해서 세상의 「까십」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자』라고.
아우 「사베리오」를 별명인 「세베로」라 부르면서 아래같이 적었다.
『세베르야! 오늘은 성 프란치스꼬·사베리오』 첨례, 너의 본명 축일이구나. 나의 조카 바르바도 사베리오였지. 알다싶이 내가 좋아하는 「타이프」를 3년만에 쳐보는구나. 오늘은 내 나이 80고개를 넘기면서 한 번 써보기로 결심한거야. 이 「타이프」는 내 것이란다. 80고개를 넘는 내 건강은 아직 60이나 50이 아니고 80이란데 저윽이 아찔 하는구나. 그래도 천주님과 성교회에 봉사하는 일에 적어도 계속은 해가야 되지 않겠느냐. 세베로 네 앞으로 한 이 편지를 알프레도·쥬셉빼·아순따·계수씨·마리아·비르지노와 기슬레니 그리고 우리 온집안에 돌려다오. 나는 항상 젊었을 때 정렬로 또 그렇게만 말하구 싶다.
내게 한 번도 사신을 보내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내 비서 까뽀빌라 몬시뇰은 너를 참 좋아 하든구나. 그와 무슨 말이건 내게 하듯 전할 수 있을거다.
교황위에 오른 후 내 집안에 보내는 편지로서는 이것이 아마 몇 통 중 단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내 혈통을 앞에 자주 써보내지 못한 것을 동정해다고.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친척들간에 놓여진 이 희생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존경과 사랑을 쌓아 올릴 것이다.
지금 교황에게 보내는 그 큰 존경과 애정의 시위는 80에 다다르면서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나는 더욱 다만 사람들의 뜻을 찬양하면서 나를 간택하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서만 내 생명의 끝까지 나를 지탱해 갈 뿐이다.
나의 타고난 침착성 이런 것이 세상에 많은 감명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신앙을 가지고 있듯이 언제 죽음이 나를 천국으로 부르든 그 시간같은 것을 넘어서 하루도 더 살고자 바라거나 그것을 위해 기구하지 않고 거기 순종한다는데 있는 것이다.
천주님은 「브루시꼬」와 「꼴롬베라」같은 산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를 간택하셨구나. 내가 힘쓰고 있듯, 너도 겸손해라. 세상의 웃음꺼리가 되지 않도록.
왜냐하면 롱깔리의 이름은 온 세상에 동정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돈을 벌기 위한 일밖에 모르고 생을 즐기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슨 댓가라도 치르며 만일 그것이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다.
사랑하는 세베르야! 80순에 다가선 내게 있어서나 네게 있어서나 우리 온 집안이 그럭저럭 살아왔다. 우리를 돌보시고 또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주님의 착하심만을 굳이 믿으면서. 내가 진정 사랑하는 세베로야! 이렇게 우리 모든 「꼴롬베라」 「제룰레」 「보나떼」와 「메들로아고」 또 어디 내가 모르는 고장에 살고 있는 우리 친척들에게 나의 진심을 빠짐 없이 전해다오. 엔리카와 바티스따 신부가 너를 잘 보살펴주고 있겠지.
롱깔리 집안들 새로 태어난 식구들까지 서로 사랑하고 내 일일이 가족들 앞에 편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주려무나. 우리 작은 요셉이 나보고 『사치의 죄수! 당신은 자기 하고픈대로 하지 못한다』한 그 말이 참 옳은 말이야. 바로 그렇단다.
우리 중에 제일 고통을 받는 너의 아내 마리아, 고생만 하는 베네데따와 착한 리따 꼭 천당복을 받을 것이 아니냐 내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사촌 기다리나 또 천당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을 우리 죠반니 이렇게 그들의 이름이라도 불러보자. 「미라노」로 가버린 우리 친척들도.
네가 어떤 자기 편태를 하고 있는지 아무도 보통 상식으론 알 수 없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이런게 교황을 내놓은 집안인데 그 친척들이 부유하게 살리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교황은 겸손의 아들이면서 인민의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 아니냐. 서로 필요한 것은 그 정도에 따라 그 만큼만 서로 도와야지. 그것은 부유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어제까지라도 교황 요안과 그의 롱까릴 집안의 가장 아름답고 보람 있는 가풍(家風)인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가난히 자라 가난히 죽은 저 성 비오 10세께 드린 명예 그것보다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80이 되고보면 뭉서이 뒤로 자꾸 처지는 것 같구나. 용기! 용기! 나의 착한 동반자들이며, 우리의 죽은 이들 안젤로 하라버지 어머니 아버지 죠반니 형님 데레사 안칠라 마리아와 엔리까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쓴 사진들을 침실에 걸어두고 있다.
이 얼마나 우리들을 기다려주고 기구해주는 영혼들의 합창이겠느냐? 난 그들의 생각을 잊을 수가 없구나. 내게 용기를 주시도록 드거운 신앙에 불타게 해주십사고 기구 중에 잊지 말아 다오.
나는 혼배해서 우리 롱깔리 집안을 불게 한 그들과 출가해서 남의 이름을 달고 있는 그들을 다함께 똑같이 축복한다. 오 아기들 얼마나 많아졌느냐. 얼마나 복된 일이겠느냐.
요안23세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