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 抗辯(항변) ①
발행일1963-06-23 [제380호, 4면]
교회에 나가 보았지만 마음에 절실한 요구가 있어 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만큼 그저 서먹할 뿐이었다.
우뚝 솟은 뾰죽지붕 안은 외관보다 안이 넓고 무언지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니 여기서도 나프탈린 냄새를 느꼈다. 미사의 절차도 졸음이 왔다. 남들은 일어섰다. 앉았다 무릎을 꿇고 혹은 두손을 모두었지만 나는 원숭이가 되기는 싫어서 앉은 자리에 그대로 가만이 있었다. 유리창의 채색 그림을 보고 그리스도 수난의 벽화를 두루 보았다. 진호는 내가 교회에 나온 것을 퍽 반가와했다.
『미스윤이 교외에 나온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해…』
『나오고 싶어 온 건 아니야요.』
『내가 권했기 때문에 구경삼아 나와보았군!』
『그것도 아니야요』
『그럼?』
『우리 아버지가 이 문답책을 내동댕이 쳤기 때문에 이 책과 이 책을 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야요.』
『교회에 와본 감상에 어때요?』
『똑같애요.』
『똑같다니?』
『진호씨의 목에서 묵주를 보았을 때와 말이야요!』
『나프탈린 냄새가 난단 말이군!』
『헐 수 없어요. 내 코가 나쁜지!』
『다음 주일도 오겠지요?』
『그건 몰라요.』
다음 주일에는 가지 않았다.
그 다음 주일은 진호씨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갈 준비를 하였는데 어머니도 같이 가겠다고 옷을 입는다.
그날은 아버지가 일찌기 외출하였기 때문에 방해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부석하니 않는 사람 같았다.
『어머니 어제 밤에 울었지요?』
간밤에 새로 두시쯤 자다가 무슨 소리에 문득 잠이 깼는데 도라누으며 보니 어머니가 벽쪽으로 모로누워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머니 왜 안자?』
물었더니.
『어서 자라!』하며, 어머니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목소리에 울음이 맺혀 있었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있었다. 아버지와의 싸움에서 얻은 정신적인 고통이 분명했다. 싸움이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학대였다. 어렸을 적에는 싸움이 잦은줄을 미처 몰랐는데, 근자에 와서는 그들의 이상야릇한 암투를 몇번이고 훔쳐볼 기회가 있었다.
어제 저녁 식사 후, 건넌방에서, 혼자 숙제를 하고 있자니 안방에서, 어머니의 비명 비슷한 외마디 소리가 들린듯 했다. 나는 직각적으로 또 뭐가 일어났구나 생각했다. 그들이 싸울 때의 음향은 어머니의 그와 같은 외마디 소리로써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었다. 나는 열린 건넌방 문턱을 건너 소리 안나게 대청을 지나, 닫힌 안방 미닫이 틈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니는 아랫목 발치 구석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돌아 앉았고. 아버지는 그 앞에 반신을 일으키고 때릴듯한 자세로 어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년 어디 가서 뒤어지든지 해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머니만 들을 수 있게 여느때보다 훨씬 저음(低音)이었다. 어머니는 손등으로 코를 씻는데 손등에 피가 묻어나온다.
옆에 있는 신문지를 찢어 코피를 닦으면서.
『내가 빨리 죽어야지!』하고 제법 대항적인 말이 튀어 나왔다.
『이년, 큰소리 내지 말아!』
아버지는 여전히 나직한 소리로 다시 때릴듯이 상반신이 들먹거렸다.
『당신한테 맞아 소리도 없이 죽을테니, 걱정 말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컸다.
『이년이 그래도 큰 소리를 내네!』
어머니는 돌아앉아서 벽만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시골에 가기 전에도 두어번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물었다.
『음.』
『누가 권했우?』
『아무의 권도 받지 않았다.』
『그럼 왜?』
『네가 다니니까 나도 가보고어 싶어진거다』
『어제밤에 코피나셨지요?』
『……』
어머니는 비밀이라도 발견당한 사람같이 얼굴이 벌개진다.
『아버지는 왜 어머니를 그렇게 때려?』
『그런말 딴데 가서 하지마라!』
『이유가 뭐야?』
『……』
어머니는 무슨 말을 하듯 하더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웃의 소문을 꺼려 소리 안 나게 어머니를 학대하는 아버지는 비굴하고도 위선자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치솟는 한편 어머니가 불쌍했다. 건넌방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기다렸으니 좀처럼 나오지를 않았고 나는 고단해서 먼저 잠이 들고 말았다.
『운 얼굴 같으니?』
어머니는 손거울을 집어 비춰보면서 묻는다.
『눈 있는데에 분을 좀 바르세요?』
나는 콤팩트를 집어 어머니의 눈 가장자리를 두들겨 주었다.
『어머니 지금부터 죽 교회에 다니실라구?』
교회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남이 하는대로 딸아 일어서고 앉는다. 그리고 때때로 손을 모두어 무언지 빌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드커니 앉아있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혼자 비는 것이었다.
『어머니, 지금 비는 시간 아니야!』
나는 옆구리를 찔렀다.
어머니는 내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딘지 그 태도가 진지해 보여 더 이상 나는 말리지를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서 받은 문답책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진호는 바로 우리가 앉은 여자석 옆에 줄에 앉았는데 그는 아는 척을 안했다. 미사가 끝나고 밖에 나오자 그는 곧 우리 앞으로 왔다.
어머니에게 나는 그를 소개했다.
진호의 인상은 어머니의 맘에 들었다.
『참한 청년이구나! 그 사람하고라면 교제해도 좋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 후 우리는 일요일이면 아버지 앞에서는 딴 데 볼일이 있는듯이 꾸미고 꼭꼭 교회로 갔다. 나는 가끔 꾀가 났지만 어머니를 위하여 동행했다. 어머니는 여니날도 새벽미사에 가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의 눈이 두려워 못갔다. 밤이고 낮이고 짬만 있으면 문답책을 외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얻은 정신상의 괴로움을 신의 제단에서 풀고싶어 하는듯 했다.
그러나 한달이 채 못되어 어머니의 이 한가닥 위로의 길도 막히게 되어버렸다.
비오는 날 일요일인데 내가 먼저 나가고 어머니는 나중에 나와서 길에서 만나 교회로 갔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험한 눈초리로 마루에 앉아있었다.
『둘이 어디 갔더랬어?』
『나는 이웃집에 좀 갔다오고 나순이는 어디 갔더랬니? 동무네 집에 갔더랬니?』
『음』
『둘이서 잘논다…. 어디간 걸 내가 댈까?』
아버지의 눈에는 노기가 서리었다.
『비러먹게 교회는 뭣하러 가는거야…』
『교회에 가면 어때요?』
나는 어머니를 위해 항변했다.
『넌 가만이 있어』
『내가 어머니를 가시자고 한거야요』
『저리가 있으라니까?』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머니를 압박할 때와 비슷한 저음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안방으로 들어오게 하고, 한동안 예의 나직한 목소리의 대화 아닌 대화가 계속되었다.
『…청승맞게 천주학쟁이 노릇을 또 한 번 해봐라』
이 한마디만 크게 밖에 들렸다.
그후부터 일요일이면 우리는 감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 감시망을 나는 혼자 뚫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나 혼자 다녀올께. 어머니가 뭘 기구하고 싶우 내가 대신하고 올테니까?』
『대문 잠궈놓고 열쇠를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걸 어떻게 나갈테니!』
『나가는 수가 있어오?』
『어머니가 빌고 싶은 것은…』
어머니는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공부 잘해서 좋은데 시집가도록 빌어다오!』
『내 얘기 말구, 어머니 자신의 일을 말해요!』
『딴건 빌게 없다. 그걸 빌어다오-』
『그럼 난 가서 어머니를 위해서 빌겠어!』
하며 나는 옆집과의 경계가 된 담장을 넘어 옆집을 지나 밖으로 뛰처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