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NC】 계시(啓示)의 원천에 관한 제한이 공의회에서 장기간 그리고 곤란한 토의에 들어갈 위험에 직면하여 교황 요한 23세의 개입이 있었다.
교황의 간섭은 제24차 총회의 동 문제에 대한 제6차 토의중 취해졌다. 동 총회 벽두에 공의회 사무총장 뻬리꿀레 펠리치 대주교는 전일의 토의계속 동의(動議)는 공의회 규칙에 의한 다수가결을 얻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공의회 특별사항 위원장 알벨또 치꼬냐니 추기경의 명령을 전달하고 토의 계속에 앞서 더욱 수락될 수 있는 형태의 제안을 작성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을 교황의 뜻이라고 밝혔다.
동 제안이 재작성(再作成)되는 동안 공의회는 다음 의제인 대중전달(大衆傳達) 문제를 토의한다고 했다.
계시의 원천에 관한 토의는 그 각 부분의 토의에 들어갈 징조도 보이지 않은채 5일간을 소요했다.
5일간 각종 반대 및 옹호가 전개되었었다. 반대는 동 제안은 그 서술(敍述)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진리의 선언에 있어 과도히 엄밀하며 장황하고 반복된 것이라고 했다. 그 표현은 혼돈과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고, 그 엄격한 어세(語勢)는 공격적이며 갈려진 그리스도교도들의 재일치에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했다.
옹호측은 동 제안이 많은 공인된 신학자들에 의해 작성되었고 대부분 추기경들로 구성된 공의회 중앙준비위원회의 최후의 문서로 채택 결정을 본 것이라고 응수했다. 갈려진 그리스도교도들도 진리를 추궁하고 있으니 만큼 진리는 아무에게도 거역될 수 없다고 말했다.
동 제안은 각종 신학파간에 아직 논의중에 있으므로 반대되었었다. 옹호자들은 동 퇴의는 신학자 간에 지도원리를 준다고 대답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의장은 동 제안 자체의 계속 토의 여부를 물었다. (11월 20일). 동 동의안(動議案)은 5개국 및 이태리어로 반복했으나 그 정확한 의미에 혼란이 있었다.
동 제안의 토의무기연기를 묻는 투표에서 동 토의를 진행시켜 제안된 전5장(章) 토의를 착수하도록 가결되었다. 그러나 동 5장은 일반토의에서 현격한 의견 차이를 보여준 것이 그대로 포함된 것이다. 이대로 나가면 각 장 토의에서 동일한 의견차이가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팰리체 대주교는 교황의 뜻을 발표하는 가운데서 『수일간의 연설에서의 의견은 이것이 힘들고 연장된 퇴의가 있어야 하겠음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교황의 공의회에 대한 첫번 간섭은 11월 6일 전례에 관한 토의때 공의회 의장은 토의종결(討議終結)에 기립표결(起立票決)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었다.
11월 21이 취한 두 차례의 행동은 공의회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권한을 행사한 것이었다.
【로마=NC】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聖傳) 간의 관계에 관한 토의결과 두 견해 중 하나를 채택해야 한다고 공의회 공식 관변이 말했다.
미국 「피츠버그」교구 죠지 타바드 신부는 미국 주교단 수행기자회견에서 그 두 견해는
①성서와 성전에 신앙의 2원천(源泉)이 있다. (또는 계시의 2원천) ②그 성서와 성전은 서로 병립(竝立)한 2천원이 아니라 성전은 교회에 의한 성서의 설명이다.
타바드 신부는 또한 공의회의 입장은 그리스도교도 일치운동에 영향을 준다고 부연했다. 동 신부는 공의회 개회 이전 그리스도교도 일치 추진사무국의 상담역이며 교황 요안 23세에 의해 임명된 공의회 전문 의원이다.
타바드 신부의 첫 견해는 성전에 성서의 동일한 진리가 더욱 명백한 방법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이 견해는 개혁후 프로테스탄트와의 논쟁 중 그리고 일종의 『변론적 내포(內包)』로서 가톨릭신학자 간에 성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둘째 견해는 프로테스탄트들이 훨씬 더 이해할 수 있는 보다 오래된 그것이라 주장했다.
『만일 우리가 이보다 새로운 견해를 채택한다면 우리는 이 호교적(護敎的) 또는 변론적 신학을 영구화 할 위험에 빠진다」고 하면서 그러나 두 견해는 근본적으로 비교적인 것으로 하나를 채택한다는 것이 다른 편을 단죄(斷罪)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타바드 신부는 개혁 후기의 견해는 때로는 성전에는 성서의 동일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진리들도 그와같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보다 오래된 견해는 『신앙의 전부는 성서 안에 있고 성전으로 해결했으며 그리고 전 신앙은 성전안에 있으나 훨씬 명백한 길을 취하고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고 했다.
과거 10년간 프로테스탄트 및 올스독스가 주동한 교회들의 세계회의는 성전의 개념을 회복하려는 인상적인 운동을 해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만일 우리가 성전에서 보는 그 어떤 성서와 완전히 분리된 신학을 채택한다면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달한 지점에서 동떨어진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런 견지의 채택은 가톨릭 신자에 성서방면의 감소를 주면서 신심 및 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서 및 성전 간의 구별임을 강조했다.
교회의 공식 예배에 있어 성서에 대한 재신을 강조하면서 타바드 신부는 공의회가 만일 한편 성서적 전례의 신심을 강조하면서 한편 성서와 성전을 분리한다면 혼란에 들어설 수 밖에 없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보다 오래된 견해를 옹호하면서 성전은 교회에 의한 성서의 설명이며 전 신앙은 성전에 의해 해설되면서 성서 안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약간의 신학자들은 성모몽소승천의 교리를 성서 안에 기초를 둘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러나 비오 12세의 정의문서는 성모몽소승천교리의 최후의 근거는 성서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기초는 성서를 연구하는 언어학자에 의해 발견될 수 없고 「성소에 대한 교회의 묵상」에 의해 발견된다고 했다.
그런 진리가 성사 안에 함축(含蓄)되었다고 말할 때 그 함축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서해석은 적지 않게 불분명하나 논리적 연역법(演繹法)에 의해 표준화 할 수 잇다. 운운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교리는 말쓰의 사람되심(INCARNATIO) 즉 구속(救贖)의 중심교리에 포함된 구속의 중요 부분의 계시 및 신앙의 그 유추(類推)를 통해 유의(有意)하게 관련될 수 있는 의미에 있어서 성서 안에 교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유추(類推)는 교회의 다른 교의(敎義)의 가르침과 비교되어 정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