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까지 (5) 念願(염원) ②
발행일1962-12-09 [제354호, 4면]
수련이는 미남이의 손목을 잡고 밭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바로 그 옆을 따랐다. 밤나무에 가렸던 성당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수련이가 작만한 밭은 바로 성당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언덕 아래에 있다.
밭에는 밭곡식이 한창 무성했다.
『엄마! 내년엔 옥수수하고 도마도 좀 많이 심어 응』
미남이가 수련이의 손목을 흔들었다.
『엄마가 얼마나 애를 써서 이 밭을 샀다구 그런 군것질꺼리를 심어 미남이 먹을 도마도 옥수수는 집울 안에 심어놓치 않았어』
『그깟 쪼끔 더 많아야지 복만네 좀 가봐!』
『복남네는 부자집이지 우리는 겨우 이 밭 한떼기 뿐이야』
『넘마, 나 옥수수, 도마도 심어서 실컷 먹을 밭 하나 더 사주어 응』
미남이는 숫제 엄마 손목에 매달렸다. 아마 꼭 그렇기를 바라느니 보다는 오래간만에 엄마에게 졸라보려는 생각인가보다.
『그래, 이번 가을 밭거지 끝나거든 한떼기 더 살께.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부족해.』
수련이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이천평짜리 밭과 열마지기 논 가지고는 세식구의 생계는 아직도 든든치 못하다. 그것이나마 남에게 부탁해서 품값을 지불하는 농사이고 보니 일년 수입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는다. 더우기 금년에는 가뭄이 심해서 논에 물을 퍼붓느라고 품값이 한목 더 나갔다. 그래도 마침 논에 퍼부을 물길이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농사는 시작만 해놓으면 꼭 어린것 기르는 부모의 정과도 같아서 이해득실은 아랑곳 없이 열매를 맺기까지 정성껏 가꾸어 주게 마련이다.
『금년 농사는 따지고 보면 밑지는 장사야』
어머니의 탄식같은 소리가 수련이 귓전에 들렸다.
『어쨌든 금년 가을에는 밭을 더 사서 착실한 농사를 하십시다. 여기서 나는 것 가지고 우리 세식구 먹고 쓰게만 되면 나두 안양으로 내려오겠어요.』
『그러려면 또 돈이 얼마나 많이 든다구. 그렇게 돈이 들겠니.』
어머니는 딸이 혼자 서울에 살면서 돈을 갖다 주는 것이 몹시 애서했다. 뿐만 아니라 어쩐지 불안했다.
도대체 보통 월급장이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수입이 있는 것이 궁금했다.
(혹시나… 타락한 것이나 아닐까.)
이런 의심이 가슴에서 들끓건만 막상 딸을 만나고 보면 차마 따져서 묻지를 못하고 만다. 수련이도 이 눈치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늙은 어머니와 어린 자식. 세 식구가 살아가려면 우선 살림밑천을 작만해야 되는 것이다.
학교도 겨우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수련이로서 어머니와 아들의 생계까지 담당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큰 짐이 아니다. 게다가 미남이의 교육비를 바라본다면 대학까지는 까마득한 세월이다.
수련이는 이것을 내다보고 살아야 했다.
수련이가 「빠」 「남령」에 나아가게 된 것도 이때문이다. 보통 월급 가지고는 그저 그날 그날 겨우 살아갈 뿐이지 미남이의 교육비는 가망도 없다.
어떻게든지 미남인 대학까지 보내야지 혹시나 미남이 아버지가 나타나더라도 여엿하게 길러놓은 아들을 보여야 해.
이것이 수련이의 오직 하나의 염원인 것이다.
밤마다 뭇 사나이들에게 가지가지의 시달림을 견디어 참는 것도 다 이 까닭이다.
『수련아 이왕 술집에 몸을 잠겄거던, 그저 눈 딱감고 한목 잡어. 돈 잘쓰는 주정뱅이말야. 악몽(惡夢)같은 이놈의 짓 재빨리 걷어 치우려면 그저 눈까뒤집고 돈 잘주는 손님을 붙드는거야.』
이것은 옆방에 들어있는 순옥(順玉)이가 입버릇 같이 일러주는 비결이다. 그러나 수련이로서는 차마 못할 일이다. 처음에는 손님 앞에 가는 것도 매스꺼웠다.
『아가씨 이리 좀 와!』
손님의 크고 억센 손이 팔목을 잡아 끌 때 수련이는 아찔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동료들은 깔깔대고 웃을뿐 아무도 수련이를 두둔해주지는 않았다. 숫제들 비웃었다.
『온 저렇게 순진해서 어째.』
『언제나 제 구실을 하지.』
여기서 제 구실이라는 것은 손님 여페 바짝 붙어 앉아서 아양을 떠는 것을 의미한다. 손목을 잡든 어깨를 끼든 그저 드대로 받아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쁜이랴 때로는 손님을 밖에서까지 만나야 했다. 수련이가 인천 송도에서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야만 얼른 한몫 큰 돈을 잡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는 죽어도 그런 짓은 못해! 아니 못하는게 아니라 안할래』
수련이는 몇번이고 혼자 다짐을 하며 살아왔다. 어떻게든지 안양에다가 전답(田畓)을 작만해놓고 흙에 파뭍혀 살며 미남이 교육비나 꿀리지 않고 살자는게 유일한 염원인 까닭이다.
수련이는 밭고랑에 들어서서 우거진 숲을 해치고 싱싱한 풀냄새를 맡았다.
구수했다. 비릿했다.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를듯 했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마음이 턱 놓인다. 서야할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이 흐뭇했다.
어떻게든지 밭은 더 사서 이곳에 자리를 잡으리라.
수련이는 거듭 다짐을 했다.
『아니 수련씨! 언제 오셨어요』
굵은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렸다. 돌아다보니 원인상(元仁常)이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수련이는 가볍게 응수했다.
『아니 몰래 다녀가시면 돼요』
『몰래가 다 뭐야요 누가 뭐 숨어 살아요』
『하…하… 뭐 시비를 하는 것 아닙니다. 하도 반가워서-』
『그래 재미 좋으셔요』
『재미라니… 촌에선 농사 짓는게 재미죠』
『염소들 잘 커요』
『한번 봐주세요 많이 늘었읍니다.』
『글쎄요 시간이 있을지』
『공일인데… 워 그리 바쁘세요. 자 이왕 나오신 길에… 잠깐 가보실가요』
인상이는 수련이를 잡아끌다시피 졸랐다.
수련이는 잠시 망설였으나 인상이의 뒤를 따랐다.
『엄마… 나두 가』
미남이가 따라서는 것을 손을 저어 제지했다.
『미남아 할머니하고 집에 가 있어 내 곧 다녀갈게.』
인상이가 손소 이룩한 목장(牧場)은 작은 등성이 너머에 있다. 그는 아버지가 남겨놓고 돌아간 산판을 이요아여 목장을 이룩한 착실한 젊은이다.
6·25때 안양에서 심한 폭격이 있어 주민들에게 피해가 클 때 인상의 일족은 거의 다 죽고 인상이만이 살아남아서 오늘의 목장을 작만한 것이다.
인상이는 한날 한시에 폭탄에 맞아 죽은 부모의 산소를 야지바른 노적봉 기슭에 안장하고 그 아래 벌판을 터잡아 농막을 짓고 목장을 만든 것이다.
수련이는 인상의 뒤를 서서 그의 발자국대로 따라갔다. 인상의 뒷모습은 마치 장승같이 억세기만 했다. 흡사 흙속에서 솟아난 사나이 같기도 했다. 서울서 이런 사나이를 보면 거러지나 노동자로 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그의 초라한 몸차림과는 달리 그의 한걸음 한걸음은 땅에 파묻힐듯 든든했다. 자고새면 불안히 지내는 도시에 사는 사나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안정된 표정이다. 그러나 인상이는 이부락에서는 으뜸가는 지주(地主)요 목장 주인이다. 아무 꾸밈새도 거리낌도 모르는 자연 ㅡ대로의 자세이다.
『자! 저것 좀 보셔요』
인상이는 언덕 마루에 오르자 마자 남쪽 벌판을 가리켰다. 밤나무가 우거진 산비탈 그 아래로는 금잔디 밭이 아름다웠다.
『어머… 작년보다 더 좋아졌네요.』
푸른 잔디밭에 무리를 지어 뛰노는 염소떼. 하얀 철을 한 농막에는 새빨간 장미꽃이 한창 우거졌다. 마치 딴세상 같았다. 등성이 하나를 격해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한 목장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어느틈에 바둑개가 꼬리를 치며 달려왔다. 주인을 반기는 표정이 보기에도 대견했다.
『점심은 집에서 잡수셔요. 닭 한마리 잡죠.』
『닭은 잡으면 알은 누가 낳지요.』
『닭 한마리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장 풍경에 취한듯 수련이는 인상아의 점심초대를 거부할 여지가 없었다.
(나두 이렇게 차리고 살아 봤으면…)
수련이는 부러운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수련이는 길이 먼 것을 느꼈다.
『저 집엔 누구하고 살고 계세요.』
수련이는 인상이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아는지라 이렇게 물었다.
『나하고 개하고 염소 닭 비둘기… 식구야 쎄구버렸죠. 하하하…』 내뱉듯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