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動者(노동자) 主敎(주교)」였던 聖下(성하)
1日4時間만 就寢, 終日 일, 일……
발행일1963-07-07 [제382호, 2면]
【미라노=RNS】 만일 전통을 고수하면 바오로 6세는 교황에 피선되기 전 8년반을 시무하던 「미라노」로 돌아오지 않는다. 교황선출 추기경회의에 출발한 날이 최후의 인상을 남긴날이다. 그와같이 일하던 성직자 평신자들은 그의 놀랄만한 사무능률을 경탄해왔다.
그는 4시간 더 수면을 취하는 일은 드물다. 상오 2시까지 일하고 6시30분에 미사를 드려왔다. 그의 한 측근자는 『몬띠니.추기경은 그가 말한 「수면의 공허」보다 만일 일과 묵상에 더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가치하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는 매일 50통의 편지를 쓰고있다. 그러면서 보다 빠른 회답을 주장한다. 대교구 참사들의 방문 각종 회의 참석으로 늦게 서실로 돌아와서는 보고서를 처리하고 묵상에 잠긴다. 끝으로 「미라노」TV의 마지막 뉴스방송을 보고 「하이·파이」로 고전음악 한 곡을 들어왔다.
「미라노」대주교 때 자전거 경기장에 나갔다가 자전거 경주 선수모를 쓰고 응원단 틈에 끼어 유명한 화제와 사진을 남겼다.
비오12세에 의해 국무성 차관으로부터 「미라노」로 전출된 그는 「노동자의 주교」란 별칭을 받아왔다. 그는 34년간 성청에 근속해왔었다. 『교황 성부여 제가 그 자리를 맡을만큼 자라났다고 생각하십니까?』고 반문하는 그를 비오12세는 이태리 최대의 교구 「미라노」대주교로 임명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