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21) 客窓(객창) 제라늄 香氣(향기)로와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발행일1963-07-07 [제382호, 3면]
6·25 동란 때 일이다. 그날 밤도 오늘 밤처럼 음침하고 비까지 치적거리던 밤이었다. 불안한 마음이나마 이미 잠이 들었는데 「피휴-펑!」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틀림 없는 포탄 소리다.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틀림없이 적탄이다. 『어쩔 것이냐?』하는 겨를도 없이 제2탄이 또 떨어진다. 나는 생각했다. 포탄에 맞으면 죽는 것이요 죽으면 심판이다. 내 양심에 걸릴 것은 없느냐? 직행 천당은 고소원(固所願)이나 불감청(不敢請)이요 지옥에 떨어질 자신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연옥인데 이는 내가 무어라 예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방공호도 마련되여 있지 않는 이상 어디가 더 안전하다는 곳도 없다.
또 달리 무슨 수를 부려봐야 될 일이 아니다. 그러면 어쩔 것이냐? 자든 잠을 계속 잘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포탄아 너는 피휴-펑 하려므나 나는 쿨쿨 하련다』하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겁도 가셔진다. 마침내 잠도 들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하나 생각해보자. 처음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경이 곤두서던 것이 약도 쓰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았다. 사리를 따져 마음 하나 침착하게 가짐으로써 모든 것이 원상복구 되었다. 우리의 모든 희노애락이 그 정도야 다르겠지만 마음 하나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된다. 이러한 경험은 나처럼 우둔한 사람일지라도 망사(望四) 망오(望五)의 연령이라면 이미 다 겪었을 것이다.
정신의 작용을 깨달았다만 정신의 존재도 깨달았어야 할 것이요 정신의 존재도 깨달았다면 인간의 영혼의 존재도 깨달았어야 할 것이 아니더냐? 그럼에도 사람의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부인하지는 않더라도 깨닫지 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소위 글 배웠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있으니 실로 이상한 일이다.
아침에는 고단해서 일어나기 싫었지만 아니 일어날 수 없는 일! 미사를 끝마치고 보니 모두들 아침식사를 하러간 모양인데 식당이 어디인지 몰라 이구석 저구석 쫓아다니면서 한참 분산거리다가 겨우 식당을 찾아 허둥지둥 요기하고 늦을새라 달려왔더니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나 혼자만 바빠했구나』 생각하니 절로 실소(失笑)가 나온다.
그러나 『나 때문에 남에게 누(累)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생각하니 적윽히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버스에 올라 성부(聖婦) 엘리사벹이 사셨다는 곳으로 갔다. 경당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뜰에는 지금이 12월이건만 우리 고장에서는 보기 드물만큼 무성히 자란 제라니움이 샛빨간 남국의 정열을 토하고 있다. 여기에는 천주경 성당에서처럼 「망니피깥」(聖母讚天主歌)이 각국나라 말로 들에 새겨 벽에 다 땜해 붙였다. 개수는 근 50개. 여기 역시 우리나라 것은 없다.
여기서도 역시 우리나라의 인재(人才) 빈곤의 서러움을 슬퍼해야 했다. 나 역시 그 중에 한놈이지만 우리들은 어쩌자고 국내에서만 서로 찌지고 볶고 싸우기에만 영일(寧日)이었느냐? 좀 더 시야를 넓히고, 좀 더 관대하고, 좀 더 대국적일 수는 없느냐? 실로 한심하다.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아니 남을 나무라기 전 내 자신부터가 먼저 노력하며는 좋아질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