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NC】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바오로6세 성하와 회견한 것은 이것으로 미국 대통령이 교황과 회견한 세 번째인 것이다. 그 첫째는 1919년 우드로.윌손대통령이 교황 분도15세와 회견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요안23세와 회견한 것이었다. 세 번의 방문은 같은 절차였었다.
덮개 없는 차에 탄 케네디 대통령은 9시45분(7월2일) 성 베드루 대성당 광장에 도착하자 군중의 환영 환성은 절정에 도달했다. 대통령 승용차가 종탑 「아취」를 통과할 때 무장한 스위스 교황근위병 일개분대가 열을 지어 성 베드루 대성당을 돌아서 「산·다마소」 궁전정원으로 안내했다. 이때 위장대가 「차렸」을 취하자 대통령 일행은 하차했다. 의장대 「밴드」가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일행은 경의를 표하면서 멈추어 섰었다.
의장대 사열을 잠간에 끝낸 케네디 대통령은 교황궁에 들어서면서 「엘레베터」 앞에서 성청 의전성성 발레리노 대주교 및 미국출신 성청 근무 고위성직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대통령은 3층 교황궁전으로 안내되고 다른 일행은 2층으로 안내되었다. 대통령은 교황궁 각급 성직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이윽고 성청 국무장관실로 안내되어 동 장관 아멜또 치꼬냐니 추기경의 영접을 받고 교황과 대통령의 회견장소로 마련된 두 개의 안락의자 앞에 도달했다. 교황은 대통령에게 영어로 말했다.
약 30분간의 두 사람만의 회견이 끝나자 대통령 일행이 들어섰고 교황은 정식 영접연설을 영어로 읽었다.
교황과 작별하고 내려온 케네디 대통령은 25년간 「워싱톤」 주재 교황사절로 케네디가와 친숙한 성청국무장관 치꼬냐니 추기경을 예방했다. 케네디 대통령 일행이 정원으로 나왔을 때 의장대와 「밴드」는 교황가를 연주하면서 맞이했다.
「바티깐」을 떠난 대통령 일행은 북미(北美) 신학교로 직행하여 상오 11시 직전 동 신학교장 말틴 J.오코너 대주교의 영접을 받았다.
관례(慣例)대로 치꼬냐니 추기경은 이곳 북미신학교로 대통령을 예방하고 답례를 했다. 이동안 대통령은 쿳씽 추기경의 환영을 받았다. 동 신학교 교수단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 쿳씽 추기경은 간단한 환영 연설을 끝내고 요안23세의 사회회칙(社會回勅) 「빠쳄·인·떼리스」의 두툼한 책을 증정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동 신학교 건물을 돌아보면서 승차하기까지 열지은 학생들의 환호갈채에 답하면서 이태리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향발했는데 시각은 정오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