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1】 AD354년 2월에 난 요왕 금구주교 학자께선 당시 습관에 의하여 18세 때 영세하였다는데 왜 그런 습관이 있었나요?
【질의2】 아리오파(派)란 이단은?
【질의3】 요한칼빈은 「프로테스탄」에서는 위대한 지도자라하고 가톨릭에서는 거짓증거자, 이단자라 하는데 그 차이는.
【질의4】 릴케의 「말테의 수기」(P. 160)에 보면 리니백작의 아들 삐엘.드.룩상불은 11세에 추기경이 되었고 18세에 별세하였다고 쓰여있는데 실제 인물입니까? 실제라면 어떤 분입니까? (서울 麻浦區 孔德洞·韓마리아·막다레나)
【답1】 네 과연 교회사를 읽어보면 요왕 금구성인께서 20세경에 영세하셨다고 전하고 있읍니다. 그 당시 영세를 지연시키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은 시정되어야 할 습관이었읍니다. 그 대표적 인물은 콘스땅띤 황제였읍니다. 그는 일생을 그리스도교 보호에 바쳤으나 죽을 임시에야 세례를 받았읍니다.
첫째는 아직도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이교도의 신하의 체면을 본 때문이요 다음은 영세 후 죄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영세직후 깨끗한 상태로 천국에 가고싶은 희망을 품고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나쁜 풍습을 한 때 만들었읍니다.
예컨대 성 바실리오.「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성 암브로시오 그의 제자 사띠루스 또 발렌띠니아 황제 2세 「놀라」의 빠울리노, 루피노, 성 예로니모 등이 늦게, 영세했읍니다. 하여간 천당을 공짜로 얻고저한 나쁜 습관이었읍니다.
【답2】 아리오파란 336년에 죽은 「알렉산델」의 신부 아리우스가 주장한 이단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는 천주처럼 영원하지 않고 없는 가운데로조차 천주께 창조된 자라고 주장하는 이단이었읍니다. 니체노 공의회에서 부정되었읍니다.
아리오파는 양 극단의 두 가지 설과 절충파로 나누어졌읍니다. 과격파는 그리스도는 성부를 닮지 아니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파는 닮았다고 주장했읍니다. 절충파는 본질이 닮았다고 주장했읍니다.
「니체노」공의회는 성부와 성자가 본질이 같다고 했기 때문에 절충파는 이 공의회 결정에 가깝습니다. 테오도시오 1세 때 「니체노」 신경이 기준이 되었고 381년의 「꼰스땅띠노뿔」 공의회가 문제를 최후적으로 처리했읍니다.
【답3】 「프로테스탄」에서 볼 때 칼빈은 종교개혁자 중에 천재적 정치가 입법자 조직가 이론가 체계가요 「쥬네브」에서 신정국가(神政國家)-모든 국가적 사회적 활동이 동시에 종교적 의의를 가지도록 하는 정치, 칼빈이 「쥬네브」 시정(市政)을 이런 식으로 했음-)의 창립자로 보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라 불립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볼 때 그는 절대적 예정설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이단자로 취급합니다. 종래 이단은 교리의 한 두 가지에 관하여 반대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나 칼빈이 일으킨 종교개혁은 그 당시의 그리스도교 전체계의 양상(樣相)을 반대했읍니다.
【답4】 예컨대 가톨릭에 호감을 보이지 않는 G·H·WELLS 서양사대계(西洋史大系)에도 전혀 없읍니다. 한 지방적 또 야사적(野史)인 민간 야화에 불과합니다. 릴케의 한 예술적 또 서술상의 허구(虛構)로 인정합니다.
申相祚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