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추수하게 마련이다. 1962년이 두루마리를 마감하며 돌이켜 어둠의 세력을_ 하늘___를 이___는 기도의__아울러__탄(彈)을 한국가톨릭은 이 한해 동안 개인마다 쏘았으며 또한 얼마큼의 수확을 거두었는가를 더듬어 봄도 뜻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가톨릭 정기간행물은 그 종류수나 내용면이나 겉모양들이 에년이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하겠고 기념스러운 일은 『경향잡지』가 소설을 현상모집한 일과 유 노렌조(柳洪烈) 교수의 10여년간 고심의 결실인 『한국천주교회사』의 출판사 마 프란치스꼬(馬海松) 선생의 동화집 세권 및 수필집이 간행을 보았으며 자비출판으로 김바오로(金正鎭) 신부께서 아동물을 네권씩이나 이 해안에 내신 일은 특기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槪觀
우리 교회 출판사로서 중앙에 「가톨릭출판사」를 비롯하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와 「성바오로출판사」 「갑진문화사」 「청라출판사」가 있고 대구에 「대건출판사」 왜관에 「분도출판사」가 있어 모두 7개 출판사에서 단행본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기간행물 발행소로서는 「가톨릭청년사」 「가톨릭소년사」 「경향잡지사」 「경향신문사」가 서울에 있고 「가톨릭시보사」가 대구에 있어서 모두 3개 신문이 나오고 있는 중 「경향신문」과 「매일신문」은 가톨릭신문이 아니라 일반 시민 상대의 신문이다.
定期物 現況
이땅의 가톨릭 정기간행물로는 월간 잡지에 반세기의 역사(1907년 창간)를 지닌 『경향잡지』와 30년전(1933년)에 창간된 『가톨릭청년』 일제시대 중국 간도에서 나온 『가톨릭소년』이 오랜 시일동안 중단 되었었는데 3년전에 서울교구에서 동명의 아동잡지를 창간하여 그 지령(誌齡)이 통권 36호를 내고 있다.
주간신문으로 『가톨릭시보』가 일제시대부터 이땅의 유일한 가톨릭신문으로 「뉴우스」면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교회재단으로 운영되기는 하지만 세속신문이 둘 『경향신문』(서울)과 『매일신문』(대구)-
이상이 이 땅 가톨릭에 의하여 발행되고 있는 정기간행물의 전부라 하겠다.
다른 하나 잊어서는 아니될 월간 「팜플렛」이 있으니 1년반절에 해군 군종인 김 바오로(金銀植) 신부께서 주머니 돈을 털어 창간한 이래 해군장병을 위시한 육 · 공 · 해병대 까지 널리 보급되어 지금은 뚜렷한 자국을 남기면서 애독자 수를 늘이고 있는 『PAX』지의 존재이다.
한편 「팜플랫」으로나마 매달 구령사업의 한 모서리를 맡고 있는 CCK의 『통신교리』도 잊을 수 없는 지탄(紙彈)이라 하겠다.
定期物 總評
한 민족의 지식욕과 문화수준은 그 나라에서 해마다 인쇄용으로 소모되는 종이의 분량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톨릭 출판물에 소비되는 종이의 부피를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이라 먼저 정기간행물의 편집면에 촛점(焦点)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경향잡지」
예전보다 꽤 현대적인 내용을 실어 주고 있으나 교회 기관지로서의 지도성이 희박해진 느낌을 준다. 잡지다와지려고 얼마안되는 지면이나마 잘 살려서 다채롭게 꾸며내려는 편집진의 고심은 살만하다. 또 새로운 시도(試圖)로서 50년간의 전례를 깨뜨리고 지난 여름 중편과 단편소설의 현상모집을 감행한 것은 그 의의가 매우 컸었다.
그때 심사위원의 말석을 차지했던 필자가 아무리 추려보아도 응모작품 중 아끼고 싶은 갖가을 별로 발견할 수 없어 서운했지만 그같은 거사는 이 나라 가톨릭문단에 뿐 아니라 독서계에도 큰 자극제가 되었다는 뜻에서 교회사상 한 자국을 남길만한 행사였다고 본다.
이 잡지가 과거보다 지도성이 희박해졌다고 지적했는데 전국 교우가정마다 들어가는 기관지라면 강력한 지도 이념을 매호 실어서 그 달 한달동안 교우들의 신심생활에 정신적 지주(支柱)가 되어야만 하겠다고 생각되므로 그만한 무게있는 논설을 기대해본다. 농어촌 산간벽지에까지 샅샅이 스며들어가는 잡지이니 내용이 쉽고 재미있어야 하겠고 그러면서도 기관지의 성격을 잘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가톨릭청년」
읽을거리가 부족한 이땅의 가톨릭 독서계에서 남녀학생들과 청년 · 장년 지식층을 대상으로 꾸며지는 유일한 잡지이다. 따라서 이 잡지의 숙명스런 난제(難題)는 불과 120여면의 아주 얇은 부피의 잡지 하나가 순수 지성지(知性誌)이면서 문화인의 건전한 대중지(大衆誌)의 양면 충당을 감당해야 하므로 자연히 엉거주춤 성격이 뚜렷하지 못한 편집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이 잡지의 약점(?)은 집필진이 소범위로 한정된 점이라 하겠는데 따라서 동인지(同人誌) 같은 인상을 주기 쉽다. 원인은 각 분야의 가톨릭문필인들의 다각적인 집필협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고 편집진의 인원부족에서 오는 애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욕심을 보탠다면 고도한 가톨릭 지성지와 문화인의 대중지의 두개 잡지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현재의 형편상 이상론에 불과하고 앞으로는 가톨릭 학계와 문화계 각 분야에 널리 필자를 발굴 포섭하면 보다 다채롭고 광범위한 지적(知的) 영양소를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잡지의 부피도 배이상으로 늘였으면 싶으나 독서열이 약한 이 땅의 교우들 상대로 나오고 있는 이 집자에게 그 이상의 출혈을 강요할 수는 없을 일이겠다.
▲「가톨릭 소년」
자기비판이 되어 쑥스러운 일이나 냉정히 따져보면 몇가지 두드러진 맹점(盲点)을 자인(自認)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물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으면서 건전해야 한다. 건전한 지식에 곁들여 드높은 꿈과 푸진 정서를 안겨주고 또한 영혼을 곧게 길러주자는 것이 『가톨릭 소년』이 자처하는 바 소임이라 하겠다.
그런데 문인들 간에서 마치 흔히 경시되고 무시되기 쉬운 아동문학- 더구나 다섯 손가락에도 찰까 말까한 가톨릭 아동문학가이고 보니 숫적으로 월등히 열세인 집필자를 가진 이 잡지가 자연히 필진의 빈곤을 교외(敎外) 아동문학가들의 지원(支援)을 얻어 메꿀 수 밖에 없으므로 순수한 뜻에서의 가톨릭 아동잡지로서 자칫 금이 가기 쉽고 또 교내(敎內) 집필자들이 글도 싣고 있으나 아동용 문장이라는 것이 쉬울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매우 어려워서 시패를 보는 수가 일수이다. 편집진의 인적자원 부족으로 자칫하면 편집장 개인의 취미나 주관적 편집방침에 치우쳐 편협된 경향에 흐르기 쉬우며 또한 이 잡지의 독자 대상이 너무 넓어서 국민학교 1년생으로부터 중학3년생 까지를 독자로 삼고 편집하고 있는 점이(가톨릭 미성년용 잡지가 따로 없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무리스러운 욕심이라 하겠다. 최근에는 그 내용이나 활자의 크기 및 체제 등이 중학생 용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엿보이는데 이 점을 지양(止揚)해서 국민학교 3·4학년 중심의 잡지로 정도를 낮추어야 하겠고 「슬럼프」를 타개하고 참신하고 재치있는 편집계획을 세우는 한편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주는 잡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시보」
군내는 물론 해외의 교계(敎界) 소식을 가장 빨리 전해주고 해외논설과 국내 성직자들의 시기(時期) 강론 등을 실어주는 점에서 독보(獨步)를 가는 「뉴우스」지이다. 이런 점들은 이 신문의 특징이겠고 구태여 허물을 들추자면 불안정(不安定)한 편집인상을 가끔 준다. 인적자원(人的資源)의 숫적 부족의 탓인지 4개면의 각 면마다의 성격상 특색이 어떤 때는 뚜렷하지 못한 감이 들곤한다. 내가 보기에는 시보가 1면은 내외의 중요기사들을 다루었고 2면에는 주로 논진(論陣)을 등장시키고 3면은 국내 「뉴우스」와 「루포르따쥬」를 실었으며 4면은 문화란으로 삼고 있는 줄로 아는데 가끔 가다가는 그것이 범벅이 된 인상을 주곤 하는 것은 유기적인 취재, 연락, 편집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 보여지는 일시적 현상인가 한다. 그같이 시간에 쫓기어서 즉흥적으로 땜질(?)하는 경우는 편집인원의 손이 모자람으로 해서 (시간을 다투는 신문의 성질상) 급격한 업무량 과중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인바 이 점 가능하면 충원(充員)하는 방향으로 나가주었으면 싶다. 내용면에서 볼 때에는 명실공히 가톨릭신문 다와지려는 열의와 부단한 노력이 뚜렷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고 이 신문이 갖는 독특한 성격 등으로 미루어 크게 시정할 점을 발견 못하겠다. 좀더 널리 여론을 반영하고 또한 건설적인 여론을 조장하고 조성(造成)하면서 이끌어 나가는 목탁 역할에 더욱 힘써주기를 바라고 싶고 끝으로 노파심스런 사족(蛇足)을 보탠다면 교정(校正)면에 좀더 표준말과 철자법을 철저화 시켜서 사투리와 오자(誤字) 전멸에 분발 있기를…
▲日刊紙
『경향신문』과 『매일신문』을 말함인데 이 신문들은 교회 측에서 운앵한다 뿐이고 그 편집진용에 교우기자나 간부가 극소수(別無하다시피)인 점이 이해할 수 없는 특색으로 되어있다. 신문이 세속신문이기에 기사 전체가 가톨릭 일색의 신문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반(反) 가톨릭이거나 비윤리적이어서는 안될 것이 아닌가? 전투원(論陣 編輯陣 一線記者들)이 전투목적이나 투쟁이념조차 모르고 총을 잡앗으니 싸운대서야 어찌 완전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회에서 내고 있는 신문사의 기자 자신이 가톨릭 이념은 고사하고 「가」자 조차 제대로 이해못하고 있다면 어찌 그네들에게 가톨릭을 대변하고 「휴매니티」의 가톨릭성(普遍性)을 옹호하고 가톨릭의 구원(久遠)한 인류구제의 숭고한 사명실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심한 예는 편집진의 총사령관을 (교우중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런론계 중진들을 제쳐놓고) 엉뚱한 교파측 인물을 앉혀놓고는 아톨릭을 대변하고 옹오하고 「프로파간다」하라고 바란다면?
그래가지고서야 어찌 사회여론을 이끌어 나가며 사회악을 가차 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뜯어고치는(叱正) 정의와 인권과 진리의 방파제인 가톨리시즘을 바탕으로 삼는 신문이 될 수 있겠는가?
「휴매니즘」이 오롯한 「휴매니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사회를 ,문화를, 법질서와 정치제도를 인간사를 관찰하고, 비판하고 개선(改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면 그 역시 가톨릭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서 교회가 경영하는 이 신문들이 어째서 유능하고 전투적인 가톨릭 언론인들을 다량으로 흡수하고 (한편 육성하여서) 임전태세를 갖추어 가지고 떳떳하고 자신있는 가톨릭의 국민신문을 꾸며볼 꿈을 꾸지 않는지 모르겟다. 정치문제를 비롯한 노동문제 인권문제 제도와 법률 질서 유행성에서 시대풍조(風潮)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분야의 사회문제들- 그리고 개신문제와 가정문제여 사회악과 사상문제 등 얼마든지 가톨릭적 사고방식으로 관찰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설파 하여서 사악과 암흑의 사탄의 침투세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며 민중을 수호하여 진리에로 정의에로 나아가서는 인생의 참 목적인 천성(天城)에까지 길잡아주고 이끌어나가는 「리이더쉽」을 장악하는 드높은 꿈을 어째 실현해 보려고 아니하는지 모르겠다. 이같은 숭고한 이념으로 국데 뭉쳐진 보다 강력하고 보람다운 신문이라면 천주의 강복을 풍성히 받을 것이며 민주거점(民主據点)이 되는 뜻에서 국민대중의 지지도 받을 것이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아마 『경향신문』이나 『매일신문』이 생겨난 후로 가톨릭 세계에서는 최대의 세기적 대행사인 공의회 진행에 따라 여러 안건이며 연구토론문제 및 전망 등 몇차례에 걸쳐 문화면에 대대적인 특집을 낼만한 가치있는 큰 사건이고 또한 냈어야 했는데 고작해야 「뉴우스」 보도 정도에서 그쳤음은 매우 서운한 일이엇으며 가끔 교회관계 소식을 보도함에 있어서도 용어를 틀리고 고유명사를 틀리고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오보를 하는 수도 있는가 하면 교회가 경영하는 신문으로서 마땅히 크게 취급해야 만할 중요문제를 한편 구석지에 1단기사로 작게 깔거나 아주 묵살 혹은 모르고 지나는 수도 간혹 있음은 편집국에 외인기자만 득실거리는 현실이고 보니 당연한 귀추라 하겠고 논진에 역시 가톨릭 입장에서 읽을 때에 빈축을 살만한 사설이나 「까십」이 나오는 일이 없지 않다. 비가톨릭(門外漢)인 그네들 편집국원들이 가톨릭 이해는 커녕 가톨릭에 대하여 호감이나 관심조차 품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교회운영의 신문이라면 광고면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다하여 반(反) 교리적인 광고는 (결손을 각고하고서라도) 절대로 싣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너무 「에로틱」한 광고나 피임 산아제한을 장려하는 약광고 등이 그렇고 반신(反神)적인 책자의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기왕에 교회재정을 들여서 천주를 위한 사업으로 신문을 낼 바에는 교우 언론인들이 중심이 되어가지고 철저한 「가톨리시즘」에 입각해서 신문을 만들어 내야만 할 줄로 안다. 그래야만 민중의 의탁이며 양심과 양식(良識)의 수호자 및 정의의 대변자는 가톨릭 언론에서 비로소 찾아볼 수 있게될 것이다. 가톨릭의 언론정책 역시 사람들을 천주의 품으로 안아들임으로써 인류구속(救贖)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대한 가톨릭 「액숀」의 한 부분이겠기에 말이다.
끝으로 이 땅의 가톨릭 정기간행물계에 바라고 싶은 것은 『가톨릭시보』가 하루 속히 일간지가 되었으면 싶고, 교우 부인층과 처녀들을 위한 가톨릭 가정생활지도용 여성잡지와 학생(中高生) 잡지가 나왔으면 좋겠고 순수 학술 · 지성잡지로서 『갈대』지나 『세기』(日書) 『사상계』와 견줄만한 두툼한 권위지가 계간(季刊)으로라도 좋으니 새해에는 나와서 이 나라 지식층을 천주의 잔치상에 초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單行本鳥瞰
▲ 가톨릭出版社
작년에 『동서의 피안』(金益鎭 譯)으로 「힛트」를 올린 동사에서는 금년들어 유교수의 『한국천주교회사』를 비롯하여 『예수전』(曹元煥 譯) 『성심과 사제』(李在現 編) 『가톨릭 사회정책』(金昌洙 譯) 『라띤어 문장론』(許昌德 著) 『교리실화』(吳基先 編著) 등 중량급 도서를 내놓았으며 그밖에도 『二부 성가』 『나는 믿는다. 왜?』 (鄭鎭奭 譯) 『온전한 이야기』(奇厚根 譯) 『답중의 답』(孫泰燮 譯) 『사랑에서 사랑에로』(姜大亭 著) 『프란치스꼬 제3회 세칙』(프란치스꼬會 編) 『예수회』(예수會 編) 등이 동 출판사에서(혹은 筆者들의 自費로) 출판되었고 또한 동사 명의로 나온 김정진 신부께서 자비출판한 아동물들 -『성인이야기』②와 『교리이야기』①② 『가톨릭동화집』들은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이라 하겠고 성가수녀원에서도 성가족 시화전(詩畵展)인 『나자렛 집』을 성탄에 내놓았다.
▲경향잡지사 (CCK)
월간 『경향잡지』를 내는 한편 주로 「판플랫』들을 많이 내고 있는데 부피 있는 것으로 『신앙해설』(⑤에서 ⑩까지)과 『가족계획…』을 들 수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그림성경』, 『시련된 사람』(鄭鎭奭 譯) 『천주교란 어떤 종교인가?』 (金洪燮 編著) 등을 제작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역자의 사정으로 지연되는 가운데 『구약성서』의 각 편들이 조속한 시일내에 속속 출간되기를 고대하고 싶다.
▲성바오로出版社
『四성경』을 시간순서대 하나로 엮은 『가정의 복음서』와 성모께 대한 신심과 성성(成聖)의 길을 깨우쳐 주는 『나의 이상』(韓공烈 譯)과 어린이 그림 이야기책 『빛들아! 하늘을 꾸며라』 및 동화 기도서를 금년에 내었다.
▲甲辰文化社
학생들 상대의 종교 교재를 금년에는 꽤 많이 내고 있다. 바르바로 시부의 저서 넷을 번역해 냇는데 종교강의 「씨리즈」로 『①신앙』 『②윤리』 『③성총』 『④천주와 인간』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金昌洙 著) 『신앙생활 입문』 (J 바울 編) 소설로 『멋들어진 신부』(金起永 譯) 『그림교리』 ② 등이 금년의 수확이다.
▲靑羅出版社
체스터톤의 『성토마스론』(朴甲成 譯)을 낸 이 출판사는 새해부터 본격적인 교외(敎外) 지식층 상대의 가톨릭 서적들을 줄기차게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大建出版社
대구에 자리잡은 동사는 금년에 『아들과 딸』(하인리히 윌렘 作)과 『벨라뎃트의 노래』(李孝祥 譯)를 내었는데 새해에는 『가톨릭사회윤리 요강』을 준비중에 있다하는데 과문한 탓으로 그밖에 무엇이 나왔는지 모르고 있다.
▲가톨릭시보사
프랑스의 아기자기한 동화집 『어린이극장』(申相祚 譯)을 성탄선물로 내놓았다.
▲분도出版社
왜관에 자리잡은 분도출판사는 수년간에 걸친 인쇄설비 등의 완비를 보아 알쭌한 책을 내기 시작하였다.
먼저 동 회의 기도서를 위시해서 『나는 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張勉 譯)가 나왔고 방대한 『예수의 생애』(프란시쯔 월람 作)와 『사랑이 익기까지』(뢰드라인트너 作), 『신은 참으로 존재하는가?』(張炳華 譯) 등이 나왔고 성서 가운데서 중요하고 자주 인용되는 것을 추려 「앞축성경」(?)을 준비중이다.
그밖에 교우지성인들이 외부 출판사를 통하여 낸 책을 아는대로 추려보면 『마해송 아동문학독본』(馬海松 編-乙酉文化社) 『한국아동문학전집』(馬海松 童話集- 民衆書館) 장편동화 『비둘기가 돌아오면』(馬海松 著-學園社) 마해송수필집 『오후의 좌석』(語文閣) 『자연법개론』(李太載 著-法文社), 『무엇하는 사람들인가?』(朴道植 著) 등을 꼽을 수 있고 또 시인 이 안드레아(李容相)씨가 오래간만에 시집을 내놓았다.
교우중 아주 드문 여류동화작가인 주미(크리스티나) 여사의 동화집 『푸른 꿈은 하늘 높이』가 금년초에 나와서 이미 맺진되었다.
맺음
가톨릭 문필가들의 활동이 금년에는 눈에 뜨이게 저조(低調)함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교우들은 대체로 독서 안하기로 습성화된 상 싶다.
52만을 넘는 교우수에 정기간행물의 소비량이 형편없이 소수이고 단행본들도 나가는 부수가 시원치 않다.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문화면에서 후진성을 탈피(脫皮)할 수 있겠으며 아직도 미개지를 면치 못한채 있는 가톨릭출판문화를 육성해서 고도의 세계수준에 올려놓을 수 있겠는지 감감하다.
우리의 신심생활에 기도와 더불어 없지 못할 소중한 영양소인 교회서적을 많이 소비시키는 계몽운동을 전국적으로 계속 전개하여 독서열 앙양과 성서소화 「붐」을 일으켰으면 싶다. 해매다 한번씩 있는 「출판물보급주일」만 가지고는 별 효과를 못보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출판물 종류를 훑어보아도 교리해설 기도서 신심서적에만 치중한 경향이 짙은데 앞으로는 구색(具色)을 갖추어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한 출판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어야만 이땅의 일반 출판문화와 어깨를 겨룰 수 있겠고 또한 앞질러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妄言多謝)
李錫鉉(가톨릭소년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