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성탄첨례날은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에게 또 교우들과 외인들에게 모두 다 기쁜 날이 되겠읍늬다.
성당에서는 구유를 아름답게 꾸며 놓고 예수님의 첫번 탄생하심을 기념하고 조배하며 기쁜 노래와 여러가지 강론말씀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성탄날의 참된 기쁨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 성탄의 기쁨을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천주님께서만이 그런 훌륭한 계획을 세우실 수 있었고 이해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 천번 성탄날이야 말로 정말 「천상 사물이 지상 사물과」 결합하게 되는 날이었읍니다. 그리고 천주께서는 「하늘에서 선을 베푸시고」 즉 다른 「선」보다도 가장 착하신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베푸시고 또 우리땅이 제 열매를 내줍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땅이 하나의 인성을 천주성과 결합시키기 위하여 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천주성부께서는 그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누어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고 정말로 『너는 나의 아들이라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고 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 밤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인 영광은 없었고 성모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은 다른 가난한 얘기와 조금도 다름없이 꼭 같은 애기를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애기는 다른 애기들과 천지차이가 있읍니다. 그 애기는 어머니 뱃속 어두움 중에서도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가지신 아기이시고 태아되시면서 끊임없이 천주님의 얼굴을 보고 계셨읍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그이의 작은 손은 이 세상을 만드신 손이시고 그의 마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마음입니다. 그 아기야말로 『나는 천주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그 깊은 뜻을 다 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탄날에 과거의 것만 생각하면 안되겠읍니다. 과거의 그 성탄 신비는 현재의 신비인 것입니다. 성세성사를 거행하게 될 때마다 그 천상 사물과 지상사물의 결합이 다시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천주성의 한 몫이 된 성총이 한 영세자의 인성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천주성부께서는 각 영세자들을 보시고 다시 한번 『너는 나의 아들(딸)이라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영세로써 예수님과 똑같은 친 아들 되는 것이 아니지만 깊은 관계로 천주님의 양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바오로께서는 『만기가 되매 천주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며 법률에 속한 당신 아들을 보내셨으니 이는 법률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사 우리를 천주의 의자로 삼으시기를 위하심이었나니라 이리하여 너희는 이제 천주의 자녀들이매 천주께서는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으시는 당신 아들의 신을 우리 마음에 보내시니라. 그런즉 너희는 이미 노예가 아니라 오직 아들이니라』 (갈라타서 4,4-7)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런데 우리 생활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첫번 성탄날에 예수님의 천주성이 외적으로 하나도 나타나지 않으셨음과 같이 미사성제때에 하얀 밀떡과 빨간 포도주만을 볼 수 있는데도 그 형상안에 살아계시는 천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 계시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읍니다. 또한 영세할 때에 외적인 효과는 하나도 볼 수 없지만 그 영세자는 『새로된 조물』(로마서 8,18-25)이며 영세하기 전의 그 사람과는 천지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영세하는 것은 새로 창조됨으로써 자연적 생명보다도 초자연적 생명으로 살게되고 아담의 자손인 인간인 동시에 그리스도화된 천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성탄첨례의 참되고 깊은 뜻인 것입니다. 그 참된 성탄의 기쁨을 우리들은 「크리스마스추리」나 노래나 길에서 전기장치에서 찾아 볼 수 없읍니다. 오히려 각자가 자기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때에 영세하는 이들과 벌써 영세한 우리가 다 이 거룩하고 고요한 성탄밤에 『나는 천주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참된 성탄 기쁨입니다. 성바오로의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심같이… 사랑안에 거닐을 지니라… 너희는 광명의 자식 다웁게 거닐을 지니라』(에페소서5)고 하신 말씀을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천주님을 섬기는 생활인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기뻐하라』고 하는 구절이 삼백번 이상이나 나옵니다. 이 세상에 억지로 슬프게 지내는 사랑관계가 어디 있겠읍니까? 이와같은 우리도 억지로 기쁨없이 무의미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것은 어리석고 우스운 일이 되겠읍니다. 이러한 헛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예수성탄의 참뜻을 이해치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성탄날에 새로 태어나게 되는 천주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기쁨 속에 사랑하기로 결심해야 하겠읍니다. 아멘.
宣 벨라도 神父(인천 답동본당 보좌 · 메리놀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