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者(복자)로 모셔야 할 26위 순교사기] (4) 軍門梟首(군문효수) 당한 28세의 白神父(백신부)
滯韓 1年이 못 가서
「나는 이 길을 榮光으로…」
발행일1963-07-14 [제383호, 3면]
「천주의 종」 백(DE BRETEN-ERES) 신부(1838-1866).
불란서 「디죵」 교구에 속하는 법관을 역임해 온 한 남작(男爵)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명문·재산, 뛰어난 재능 등 그에게 약속된 모든 행복을 멸시하고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862년에 신부가 되자 곧 한국을 향해 본국을 떠나 「홍콩」 「샹하이」를 거쳐 만주의 요동에까지 와서 장주교의 지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입국을 기다리는 동안 한겨울을 기구와 한문공부로써 그가 곧 맡게될 임무를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1865년 5월에 그 때 안주교의 전교구역이던 충청도 내포에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 이어 말 공부를 시작하여 박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상당한 진보를 보게되어 서울 근처에서 교우들의 해까지 듣게 되었다.
그는 남대문 밖 선동에 있는 회장 정말구 집에 거처하고 있었다. 포졸들이 정회장을 잡아가던 날 백신부도 거기 있는 줄을 그들은 몰랐었다. 그러나 후에 장주교의 복시이던 이선이한테서 백신부의 거처를 알게되자 그 즉시로 달려와서 그를 체포해 갔다. 그 날이 2월26일이었다.
백신부는 감옥에서 장주교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그의 주교와 더불어 문초 곤장 순교를 같이하는 기쁨과 영광을 갖게되었다.
장주교가 순교하던 같은 날이며 같은 장소인 즉 3월8일은 새남터에서 그는 주교 다음에 군문효수의 모습으로 참수치명하였다.
곁에서 있던 박 베드루는 백신부가 몹시 목이 말라하는 것을 보자 군인들에게 물을 좀 주라고 했다. 그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박 베드루는 자신이 물 한 잔을 구해서 백신부에게 물을 전해달라고 관장에게 청했다. 관장이 한 군졸에게 명하니 그는 신부 앞에 와서 물을 부으면서 『금시 죽을 사람한테 왜 너는 물을 주느냐』고 말했다. 백신부는 물을 마시지 않고 자기 얼굴 앞에 느려진 줄을 좀 깨물고 나서 침을 삼키고 한 번 숨을 내쉬었다.
구경군 중 한 사람이 백신부에게 『너는 네 나라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남의 나라에 왔으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 이제 후회가 안 되느냐?』고 물으니 백신부는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세 번 거듭 말하였다. 이어 세 번째 칼날에 그의 목이 잘리어 순교하니 이렇게 28세의 젊은 사도는 일년도 못 되는 짧은 세월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땀을 바칠 수 있기도 전에 그의 청춘의 피를 바치게 되었다. 또한 무한히 인자하신 천주는 전교 신부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상급인 순교의 영관을 이미 그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