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22) 「自我犧牲(자아희생)」을 배워
아랍·이스라엘, 天壤差
발행일1963-07-14 [제383호, 3면]
거기 드문드문 뽕나무가 몇그루 섰는데 우리내것 보다는 훨씬 굵고 크다. 토질이 우리 것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이곳이 아열대(亞熱帶) 지방이니 그런 모양이다. 사람이 능히 올라가고도 남을만큼 크고 튼튼해 보이는 나무다.
뽕나무를 보니 자케오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예수님을 뵈옵고자 뽕나무에 올라간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그는 그리스도의 강복을 받았다면 그리스도 밟으신 땅이 밟곺아 수만리를 날아온 나에게도 의당 주 그리스도의 강복하심이 계시리라. 그러나 주 그리스도의 강복하심을 자아희생으로써 달게 받아들였던 자케오처럼 나도 주의 강복하심을 나의 자아희생으로써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다.
자아희생! 이것 없이는 영신사고 육신사고간에 성공할 수 있는 일이란 천지간에 하나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자아희생! 인가닝 성공하는대는 불가결 조건이건만 인간은 성공은 바라면서도 자아희생은 하려들지 않으니 모든 것이 버그러지는 것이다. 오늘은 「삽바또」(토요일)이라 그런지 집집마다 문이 닫쳤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도 조무래기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열두시반 「갈릴레아」땅 「나자렡」을 향해 떠났다. 아직은 여기는 「예루살렘」 땅, 인가가 없는 언덕에는 십년생 가량 되어 보이는 키가 쪽 고른 소나무가 빽빽히 서있다. 그 굵이와 키가 고른 것으로 보아 자연생이 아니라 인력으로 심은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랍지경과 이스라엘 지경! 크게 보아 황소의 등 하나 차이밖에 없는대 가꾸어 둔 산야의 차가 이다지도 심할 수 있을까? 내가 자유구라파 일대를 돌 때 그 펑퍼짐하고 기름진 땅을 봤을 때 구라파인들은 머리가 두 개요 손발이 네 개라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조건이 잘 살 수 있게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사람이 잘 살려면 자연조건도 좋아야겠지만 우선 인간의 노력이 절대불가결하다는 것을 이스라엘과 욜단을 비겨보고 절실히 느꼈고 인간노력 여하에 따라 자연도 얼마든지 변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후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우리나라 땅! 때로는 한발이 심하고 때로는 홍수가 난다해도 이 모든 조건은 인력과 인지로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느냐?
우리 모두가 일심단결만 한다면 말이다. 만일 십년에 이루어질 수 없다면 백년을 잡자! 백년에 될 수 없다면 천 년을 잡자. 천년이 모자란다면 만년을 잡자.
우리의 겨레와 우리의 후손들은 백년 천년에 끄칠 것이 아니고 만년이 넘는다해도 공심판까지는 존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십년 백년이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사실 우리 강토가 수해와 한발의 피해를 피하기에는 잘만 가꾼다면 백년은 고사하고 오십년도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단 국민이 일치단결하고 정치만 올바르게 한다면! 그 실증은 여기 이스라엘이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