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지」 聖(성) 프란치스꼬의 平和曲(평화곡)
뭇 自然讚嘆한 太陽頌
발행일1963-07-14 [제383호, 4면]
자기를 평화의 연장으로 삼아주시라고 천주께 청하는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경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주 듣는다. 그러나 태양송(太陽頌)이 그와 마찬가지로 평화에 대한 프란치스꼬의 갈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깨닫는 이는 적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나 이 노래는 소규모의 전쟁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중세기 이태리의 도시들은 평화와 평정(平靜)의 예(例)로서 생각된 점이 없었다. 당시의 「아씨지」도 이 법칙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여러 달 동안 그곳의 시장관과 그 지방 주교는 서로 불목하고 있었다. 쌍방의 신경은 거치러워졌고 참을성은 없어졌고 말투는 날카로와졌다. 주교는 시장관을 파문하고 시장고나은 주교와의 거래를 불법화했을 때 분통은 터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쌍방의 원한은 악에서 최악으로 발전하여 아무도 어떠한 중재 수단을 발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쌍방은 기대고 앉아 상을 찌푸리고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만일 「아씨지」의 성자 프란치스꼬가 이 두 지도자에게 본 정신을 차리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이 노기 등등한 대치(對치)는 영원히 그대로 갔을 것이었다. 명민(明敏)한 통찰력을 가지고 프란치스꼬는 이 문제의 한 가운데로 풍덩 빠져들어갔다. 그의 해결은 그의 유명한 독창적인 바보짓의 하나였다. 수사 하나를 자기 곁으로 불러 그는 말했다. 『곧 가서 시장관과 주교님이 주교댁에서 만나도록 준비를 해라』 그 다음에 그는 수도 단체에 가입하기 전까지 가수 겸 시인으로 유명했던 빠치피꼬 수사를 불러왔다. 그날 저녁에 이 수사는 성 프란치스꼬의 계획대로 준비를 해 가지고 주교관의 뜰에 서 있었다. 주위가 고요해지자 함께 갔던 수사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존하시며 전능하시며 착하신 주여. 찬란 영광 경앙(景仰) 모든 축복을 바치나이다. 이 모든 것은 오! 지존이시어 오로지 당신께만 속하노니.
당신을 감히 말할 자 하나도 없나이다.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가장 특별히 「해 아우님」을 통해 찬탄을 받으소서. 「해」는 낮을 만들고 당신은 「해」를 통해 우리를 비치시나이다. 「해」는 아름답고도 굉장히 웅장하게 빛나나이다. 지존이시어 「해」는 당신의 상징이로소이다.
「달 누나」와 뭇별을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당신이 그들을 하늘에다 뚜렷하게 보배롭게 훤하게 만드셨나이다.
「바람 아우」를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그리고 「공기」 「구름」 「개인 하늘」과 모든 종류의 「기후」로 찬탄을 받으소서. 당신은 그 모든 「기후」를 통해 피조물에게 양분을 주시나이다.
「물 누나」를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물」은 쓸데가 많고 겸손하고 귀중하고 정결하기 때문에.
「불 아우」를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당신은 「불」로 밤을 밝히시나이다. 불은 환하고 명랑하고 힘있고 굳세기 때문에.
「땅 어미」 누나로 우리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땅」은 우리를 부양하고 유지하옵고 「땅」은 빛 고운 꽃들과 잎들과 함께 온갖 열매를 맺어 내나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푸란치스꼬는 이번 경우를 위해 특별히 지은 새 귀절을 자기의 수사들에게 지녀주었던 것이다. 은근히 암시하면서 그들은 노래를 계속했다.
당신 사랑을 위해 용서해주며 연약함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이를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만사를 평화로이 참는 이들은 강복을 받으라. 오 지존하신 천주여 그들은 장차 당신에게 상을받기 때문에.
이 귀절에 효과가 있었다! 그 수사의 순진성에 감동되어 그 두 성난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증오심은 교만이 근본이었음을 승인했다. 시장관과 주교는 그들의 논쟁을 취소하고 서로 얼싸안았다. 자기들의 지도자 두 분이 다시 완전히 화목하게 된 것을 보고있던 「아씨지」 백성의 군중 가운데서 기쁨의 환성이 치솟았다. 성 프란치스꼬의 노래가 주는 「메시지」는 오늘도 그 때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천주께와 동료 인간들에게와 모든 피조물에게 대한 관용하고 강력한 사랑을 통한 평화에의 호소다. 태양송은 진정한 평화는 정상회담이나 타협이나 조약이나 외교기술로써 세상에 오지 아니함을 우리 현대 세계에게 깨우치는 것이다. 오히려 평화는 성 프란치스꼬와 그의 초대 수사들과 같은 바보성-그와 동일한 복음의 오묘한 바보성을 통해서 온다. 평화는 역시 각 개인에게도 그와같이 온다. 성 프란치스꼬는 죽는 자리에서 그 육신이 고통에 못 견디면서도 기뻤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천주와 화목했었다. 그가 이 노래에 마지막 손질을 한 것은 바로 그러한 때였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도피할 수 없는 「육신 죽음」 누나를 통해 나의 주는 찬탄을 받으소서. 사죄(死罪) 가운데 죽는 이는 앙화로다! 그러나 당신의 지성(至聖)한 뜻 가운데 있는 이는 강복을 받으라. 제이의 죽음은 그들을 해로이 아니하기 때문에. 나의 주를 찬탄하고 축복하라. 당신께 감사하며 크나큰 겸손으로 당신을 섬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