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 抗辯(항변) ④
발행일1963-07-14 [제383호, 4면]
주먹이 당장에 날라올 줄만 알았던 것이 짐짓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 이년 미쳤니? 그 장죽이 얼마짜린 줄 아느냐?』
목소리는 잔잔했으나 아버지의 눈에는 노기가 차있었다.
『어머니 대신 날 때리세요. 장죽 불어뜨린 손해만큼도 때리세요….』
이렇게 말하며 똑바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여차 달려드는 기색만 있으면 내뺄 생각이었다.
『이년 너는 늬 엄마 생각만 하고 아버지의 기분은 모르냐?』
『장죽으로 담배나 태우시지 왜 어머니의 눈은 찌르세요?』
『어른의 장죽을 빼들어 꺾어던지는 버릇은 어서 배웠니?』
『…그 책임은 아버지한테 있어요』
『………』
아버지는 댓구를 못하고 멍하니 나를 노려볼 뿐이다.
더 이상 그 앞에 서 있다가는 아무래도 무사할 것 같지가 않아,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그 자리를 피했다.
『이댐에 내가 돈벌면 그보다 더 좋은 장죽 사드릴테야요!』
오빠는 그 광경을 자기방 문턱에서 허리춤을 짚고 내다보고 있었다.
『나순이 너 용감하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오빠는 어머니 아들 아냐 어머니가 그렇게 가엾이 되었는데도 남자로서 가만히 있게?』
나는 오빠에게도 불만이었다.
『……』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무언지 혼자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난 너가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을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찔린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으며 아직도 겁을 먹은 표정이다.
『나순아!』
사랑채에서 날카롭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 어떡해?』
나는 좀 겁이 났다.
『내뺄까?』
『…가봐라. 때리려고 하거든 내가 뛰어갈게!』
『오빠두?』
『그래!』
나는 두 응원부대를 믿고 고양이 앞에 불린 쥐의 심정으로 살금살금 사랑채로 발을 옮겼다. 멀찍막이 사랑채 마당에서 발을 멈추고 기색을 살폈다.
『더 가까이 왓!』
나는 반발자죽만 앞으로 나섰다.
『너도 인젠 절대 교회에 못 간다! 천주니, 하느님이니, 하는 게 어디있냐? 하늘에는… 잘 들어놔라. 구름하고 공기 뿐이다! 알았지?』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도 괜찮지 않아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내 입에서 술술 나왔다.
『그래. 넌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아직 몰라요』
『모르면서 뭣허러 가는거냐?』
『있는지 없는지 잘 알려구요!』
『있기는 개똥이 있어 가지마라』
『그래도 교회에 가서 아버지를 위해서 빌었어요』
『일 없다. 그만둬』
『오늘은 종이값 오르라고 빌었어요』
『빈 덕분에 종이값이 잘 올랐더라…』
『앞으로 오를지 알아요?』
『하여튼 명령이다. 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소리친다.
『그런건 내 의사로 할 일이지 명령받을 일인가?』
속으로 이렇게 반발했다. 진호를 만나 물으니. 여섯시 새벽미사가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대문에 쇠를 채우는 것은 아침 식사 후의 일이다. 여늬때 잠꾸러기인 내가 다섯시 반에 일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골탕먹일 흥미에 토요일 밤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다섯시었다. 세수하고는 머리를 대강 쓰다듬어 올리고 어머니에게는 귓듬을 하고 살풋이 중문을 나섰다. 사랑채에서 기침소리가 난다. 될 수 있는대로 작은 소리로 대문의 빗장을 열고 몸을 밖으로 빼냈다.
다행히 누구냐고 소리치지는 않았다.
밖에 나오니 맑은 초가을 공기가 선선했다.
교회에 이르니, 사람도 적고, 조용했다.
장바닥같은 열시 미사와는 딴판으로 남의 어깨를 치고 들어가는 사람도 없고, 사분 사분 발끝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은 조용히 무엇이고 자기 맘속에 지닌 것을 기구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나는 사람이 뜸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날 종이값이 오르라고 빌지도 않았다.
어머니 생각도 잠시 잊고 오로지 내 자신의 일을 생각했다. 친부모가 따로 있다면 어떻게 할가 확실히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일꺼야. 아버지도 진정 나의 아버지시기를 빌었다.
집에 돌아오니 대문이 잠겨져 있었다. 어머니를 부르니 대신 아버지가 나왔다.
문이 열리고 문턱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아버지의 손이 내 뺨을 후려친다.
『아버지의 말을 개똥만치도 알지 않는 년?』
『……』
나는 갑작스러이 당한 일이라 몹시 얻어맞은 볼의 아픔도 미쳐 몰랐고 잠시는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면 어떻게 할테냐. 이년? 이만큼 길러준 은혜도 모르고 애비의 귀한 장죽을 꺾고 가지 말래는데는 한사코 가구 그 따위짓 하면 고아원에라도 보내 버릴테다!』
『………』
고아원이란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가지 말라는 교회는 왜 가는거냐?…』
『………』
그의 표정 속에는 교회보다는 지난번에 꺾어던진 장죽에 대한 분풀이가 더 큰 비중으로 담겨있는듯 했다.
『장죽은 이댐에 제가 돈벌면 사드릴텐데…뭘…그러세요?』
나는 겨우 이 한 마디를 떠듬떠듬 말했다. 맞은 뺨이 아파서가 아니다. 어쩐지 목이 메였다. 무언지 모르게, 외로움이 가슴속에 퍼진다.
『교회에 가지 말란 말이다….』
『…가고 싶을 때는 갈테야요…』
나는 아버지의 고무신발 옆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나직히 말했다.
『이년이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내 친아버지가 아닌지도 몰라. 아니 분명 그럴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일로 나를 구속하고 때릴 리가 만무해… 고아원 키워준 은덕? 그 속에 무엇이고 들은듯한 말이다. 나는 땅바닥 위에 이런 생각을 그리고 있었다. 땅에 시선을 준채로 아버지 옆을 떠났다. 중문에서
『나순아…』
하고 어머니가 부르는 것을 돌아보지도 않고 뒷뜰로 돌아갔다. 이때까지는 울지를 않았는데 뒷뜰 굴뚝 옆에 가서 이마를 대고는 울었다. 설움이 물결이 밀려오듯이 눈물이 딥다 쏟아졌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등에 닿는다.
『나순아 울지마아 아버지는 종이값 때문에 역정이 나신거지 네가 미워 그런건 아니다』
『종이값을 내가 떨어뜨렸나?』
『그러니 아버지도 딱하지』
『고아원에 보내겠다지 않아 고아원에 가라면 갈테야』
『쓸데없는 소리, 엄마가 여기 있는데 어딜가아? 쩟쩟쩟…』
헛소리가 어쩐지 다정스러워서 나보다 키가 작은 어머니의 작은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러나 곧 머리를 쳐들고 눈물을 씻었다. 슬픔보다는 배가 고팠다.
『어머니 밥먹어?』
『그래 먹자!』
밥을 먹고나니까 조금 전에 운 일이 싱겁기도 했다.
어머니가 사랑에 손님이 왔으니 홍차를 내가라고 한다. 나는 명랑한 얼굴로 차 쟁반을 들고 사랑채로 갔다.
손님은 전날의 그 배뚱보 사장이었다.
그는 사진기를 가지고 왔는데 나를 찍고싶다고 한다.
『나하고 나란히 앉은걸 찍어주세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내 옆에 바싹 다가앉아서 자애스런 미소를 입술에 담고 한 손을 다정스러이 내 어깨팔에 댄다.
『몹시 딸이 귀여우시나 보군요?』
사진을 몇장 찍고나서 뚱보 아저씨는 말한다.
『딸이라고는 이거 하나라 사달라는 것은 무엇이고 사줍니다. 지 하겠다는 것은 다 시켜주지요!』
나는 아버지의 뻔뻔스런 얼구을 바라다 보았다. 그 순간만은 정말 자애스러운 아버지같았다.
(그는 위대한 연극 배우다) 나는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