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게리 쿠퍼의 외딸이 가톨릭 수녀가 된다고 해서 대서특필할 까닭은 없다. 그런데 쿠퍼의 딸 마리 쿠퍼양이 「가리따스」회(愛德會)를 지원하기까지 거기에는 영혼에만 속삭여 주는 고요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쿠퍼양이 수녀가 되겠다는 그 인간적 동기는 어디었었는가? 만일 그것을 남이 들어 설명한다면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위험이 없지 않으리라.
그에게 무슨 애정의 갈등이 있었을까? 생활의 불만? 혹은 그를 수녀우너으로 이끌만한 극적인 사건이라도? 공포에 싸이게 할만한 가정의 분위기라도?
그는 아름답고 건강하며 발랄한 근육이 운동가이다. 부모들은 그를 자랑스리 여겼을 뿐 아니라 존경까지 했으며 거기다가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부호였다.
위대한 결과도 어느 간단한 원인에서 오는 수가 있다.
그에게 남이 가지지 않은 굉장한 미덕(美德)이 있은 것은 아니다. 한가지 남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양친을 깊이 사랑했다. 역설이겠지만 그는 부모들의 부모같았다. 사실 그의 열성은 종교에 무관심한 아머지 게리 쿠퍼를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한때 양친 사이가 벌어졌을 때 그는 아버지를 달래면서 세 식구는 구라파여행을 떠났다.
그때 비오 12세를 개인적으로 알현하여 화제를 던졌다.
아버지 게리 쿠퍼가 병상에 들자 그의 희생과 일치하는 애정은 발휘되었다. 이것이 아마 그에게 결정적인 시련기였는지 모른다. 마리아는 아버지의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눈붙일 시간마저 병실에서 보내면서 병고와 하늘의 행복을 비겨서 위로해 주었다.
이런 마리아 쿠퍼양을 고식적인 일종의 정신주의자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는 「로스안젤스」의 미술 · 아카데미에서 「데자인」을 배우고 승마 궁술(弓術) 수상스키를 즐겻다. 게리 쿠퍼가 죽은 뒤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배우라고 했다. 그의 최후의 영화에서도 강력한 매력을 잃지 않았다. 「할리욷」에서는 그를 곧잘 「할리욷」의 「쿠릿지」라고 했다. 쿠릿지는 미국대통령중 가장 말이 없는 간결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의 침묵은 그렇게 유명하다.
게리 쿠퍼는 말썽많은 배우들간의 허영심에 그만 폐쇄적(閉鎖的)인 사람이 되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딸의 말이 나오면 급자기 다변해지는 것이었다. 그의 내향적 성격을 버리고 안(內)에 쌓인 아버지의 사랑을 말로써 다 쏟아 놓는 것 같았다.
『우리집에는 신심에 넘치는 마리아가 있다. 나는 그와 생명의 레일(軌道)을 놓아주는 종교에 관해 말하는 것은 한없이 즐겁다. 내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수영 승마 「스키」 할 것 없이 그와 즐기고 그에게 교리공부를 할 때 나는 행복을 알았다.』라고 쿠퍼는 말했다.
『마리아는 제일 큰 박물관에서 찾은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딸 자랑을 아무데서나 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었다.
『나의 가장 친한 벗은 딸이야. 딸의 덕택으로 모든 것이 천주님의 뜻대로 된 것을 알았으니.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달콤한 생활에 무르익고 있는 「할리욷」의 거리 이혼과 위자료와 염문이 뒤덥고 있는 혼탁한 공기를 타고 죽음의 날개는 그림자를 스쳐갔다. 거기 생활의 거죽을 벗어제치고 또 하나의 생활의 가능을 보여주고자 한다. 마리아 쿠퍼 양에게 잇어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 수녀원 문으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인지.